서울에서 철강재와 관련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곳을 생각한다면 가장 먼저 문래동을 떠오르게 된다. 자전거로 도림천 주변 이곳저곳을 다니다가 우연히 들어선 문래동 철강단지, 적갈색으로 물들어진 정글로 들어서자 바닥에 놓인 크고 두꺼운 철판이 나를 맞이한다. 육중한 중장비와 트럭들이 수시로 오가니 아스팔트가 그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점차 바스러지고 그 길을 보전코자 중국산 철판으로 덮어버린 것이다. 길목 사이사이로 제품을 내리고 싣기 위한 트럭들이 쉴 새 없이 들어오고 동시에 가공장 내 작업장이 모자라서 길가에 나와서까지 작업자들이 구슬땀을 흘리며 제품을 가공하는 동네, 말 그대로 자연상태의 철광석에서 오랜 여정을 거친 끝에 최종 고객에게 전달하기 직전 그 마지막 과정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을지로와 성수동 일부 구역에 이러한 가공집들이 모여 있기는 하지만 이렇게 동네 자체가 비슷한 콘셉트로 유지되는 장소는 아마도 문래동이 유일할 것이다.
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수많은 양산품들은 공장을 통해 생산하므로 그 과정을 우리가 평소에 쉽게 볼 수 없지만 문래동은 그 자체가 거대한 공장이기 때문에 처음의 문래동을 방문했던 그때의 나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가도 최종적으로 제품이 탄생하는 그 순간을 옆에서 지켜볼 수 있다. 그리고 제품의 생산이 완료되자마자 부리나케 1톤 포터를 끌고 온 기사님이 잽싸게 간이 포장된 제품을 싣고 각지로 흩어진다.
이렇게 수십 년 동안 동네의 콘셉트를 유지한 문래동도 젠트리피케이션을 빗겨 날 수 없다. 이미 2010년대 중반부터 이런 신비한 분위기를 찾아 인스타와 블로거들이 문래동을 찾아오기 시작했고 일부 작업장에는 '사진촬영금지' , '무단침입금지'라는 푯말이 붙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공장은 빠지고 그 자리에 그 분위기를 살린 인더스트리얼 콘셉트의 빵집과 카페, 레스토랑이 점점 자리 잡기 시작했다.
가공집사장님 : 우리는 근근이 일감 받아서 가공해서 먹고살았는데 일해서 돈 번 거는 생활비 하고 애들 교육비로 다 쓰고 없는데 여기 공장 땅값이 올라서 돈을 벌었어
자재집사장님 : 어느 날 투자회사 다닌다는 사람들이 와서 내 옆에 있는 가게들까지 전부 해서 *아도 쳐주면 남은 설비들까지 전부 사준다고 하는데 거절할 사람이 있을까? 이제 다 늙어서 힘든데 잘됐지
*아도 : 판매 가능한 것들 전부 모아서 한 번에 거래를 하는 방식, 일본어에서 유래했다.
이렇게 넘겨진 공장들과 판매점은 약간의 리모델링을 거쳐 독특한 분위기의 인스타 핫플이 되었다. 오래된 콘크리트 벽과 녹이 슨 인테리어가 의외로 사진빨이 잘 받는다. 한때 나도 인스타에 맛들려서 점점 바뀌어가는 문래동을 다니며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이 업계에서 일하면서 업무적으로 문래동을 드나들기 시작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문래철강단지'는 '문래동창작촌'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게 되었다. 그즈음부터인가 문래동 거리에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조형물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으니 바로 문래동에 계신 공장 사장님들이 재능 기부를 통해서 만들어진 공공 조형물들이었다. 수십 년 전부터 금속 자재들을 떡 주무르듯 처리하신 분들이라 이런 정도의 작업물은 심심풀이 수준이었을 것이다. 아무튼 거리를 다니며 문래동 사장님들이 보여주는 미적 감각에 무릎을 탁하고 치며 감탄해 본다.
문래동의 공공조형물, 인근 사장님들의 재능기부로 제작되었다.
나도 이런 분위기에 편승하고자 어느 날 문래동 철강 콘셉트에 맞는 전시품을 접수받는다는 공모전을 보고 내 나름대로의 특기를 살려 실용적인 공예품 몇 개를 만들어 보기로 하였다. 스케치업으로 디자인한 뒤 자재 수급과 제작은 외주를 하기로 했는데 거래처 사장님들께서 재미있어 보인다고 시제품 제작은 무료로 협찬해 주셨다. 첫 번째 작품은 휴대폰 거치대, 두 번째 작품은 책꽂이, 세 번째 작품은 와인병 꽂이를 만들었는데 휴대폰 거치대는 만들고 나니 생각과 달리 너무 외형이 초라해서 탈락, 와인병 꽂이는 설계를 잘못해서 크기가 너무 커지는 바람에 출품을 못하고 두 개다 지금 일하는 사무실에 보관하고 있다. 그런데 책꽂이는 좋은 반응을 얻어서 전시도 되고 아이디어스에 판매도 하여 지금까지 한 30여 개 정도 팔은 거 같다.
출품 못한 휴대폰 거치대와 와인병 꽂이(좌) / 출품 후 판매가 이루어진 철근 책꽂이(우)
이후 전시회 주최 측에서 나보고 제품을 한두 개 정도 더 만들어보는 건 어떻겠냐고 문의를 하였고 평소에 부피가 큰 플라스틱 재질의 우산 거치대가 클레임이 종종 들어오는 것에 착안하여 철근, 볼트, 화스너, U앙카를 용접하여 우산 보관대를 제작하여 출품하였다. 의외로 디자인이 참신하면서도 실용적이라는 호평을 받았고 철강 회사나 건설사에도 선물로 제공하자 대표님이나 담당자가 매우 흡족해하였다. 이런 조형물을 회사 내부에 배치해서 회사의 정체성이 더 부각되었다는 의견도 받았다.
제일 반응이 좋았던 우산꽂이
문래동을 드나들며 거스를 수 없는 세월의 흐름을 느낀다. 예전의 거래처들의 공간은 작업복 차림에 도면을 가지고 온 공장과 건설 관계자들이 드나들었는데 지금은 아이폰, 인스타 함께 변화한 트렌드를 즐기는 젊은 감각의 공간으로 재탄생하였다. 누구를 탓할 것도 아니고 과거를 무조건 그리워할 것도 아니다. 비록 시대는 변화하지만 그 재능은 어디 가지를 않는다. 기계와 건물 속 깊숙이 박혀있던 장인들의 산물은 이제 우리 대중 앞에 창작과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드러나있다. 어느 누구는 분명 슬퍼할 수도 있고 나 또한 이곳의 변화하는 흐름이 아쉬운 부분이 있지만 또한 다른 생각으로는 앞으로의 문래동의 미래가 어떻게 그려질지에 대해서 기대도 한다. 나는 변화를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