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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길길 3시간전

가을이 오면

난 이곳을 가지

온난화의 영향으로 비교적 길어진 가을 날씨, 많은 사람들이 남산, 종묘, 성균관 등 대표적인 가을의 명소를 찾지만 비교적 발길이 닿기 힘든 몇 군데 장소를 소개한다. 물론 모든 사람들을 다 만족시킬 수는 없겠지만 함께 갔던 사람들의 전반적인 평가도 꽤 괜찮았던 곳이다. 당연히 이곳들은 많이 알려진 곳보다는 대중교통이 다소 불편할 수 있지만  하루정도는 어느 정도의 불편함을 감수하고 가도 충분히 감동적인 장소라고 생각한다.


1. 길상사 : 서울 성북구 선잠로5길 68 길상사


성북구의 오르막길을 꽤 올라가다 보면 과거 군사정권 시기 밀실(密室) 정치의 산실이었던 대원각을 개조한 길상사가 나온다. 그래서 그런지 절의 규모와 구조가 보통의 절과는 많이 다른데 과거 권력자들을 접대하기 위한 요정이 자리 잡던 곳이라 절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미로와도 같은 길이 이어지며 사이사이에 작은 건물들이 배치된다. 절의 역사에 대해서 모르고 간다면 스님들이 수행하는 곳으로 알 지도 모른다.



사람과의 만남을 은밀하게 이루어지게 하는 곳이라 각 건물을 가리듯 잎사귀 달린 나무들이 절묘하게 보호색을 만든다. 봄과 여름 그리고 겨울에는 건물과 자연이 비슷한 색감을 풍기며 한 몸이 된 것처럼 존재하지만 가을이 되면 단풍색이 도드라져 비로소 절을 품고 있는 계곡의 전경을 구분할 수 있다. 깊은 산속 분간하기 힘든 공간으로 나아갈 때 각각의 존재들을 구분짓게 하는 가을 단풍의 채색은 본래 요정이었던 이 절의 미학을 정의해 주는 장치이다.


길상사 반가사유상, 최종태 作


길상사에 가면 꼭 보는 석불이 있다. 대원각을 기부받아 길상사를 창건한 법정스님이 종교 간 화합을 기원하고자 천주교를 믿는 조각가에게 부탁하여 제작한 '길상사 관세음보살'이다. 우리가 흔히 보는 간다라 양식의 불상과는 매우 다르다. 본래 이 불상을 조각한 분은 성당에서 성모마리아를 조각하는데 익숙한 분이라고 한다. 이 작품과 비슷한 작품이 혜화동 성당에 있다. 눈을 지그시 감고 있는 이 밋밋한 표정에서 자비로움을 느낀다. 다들 잠깐 살다 가는 인생 서로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다가 가라고 말하는 듯싶다. 이 불상 앞에 있으면 기본 10분은 아무 말 없이 쳐다보다 간다.




2. 항동철길 : 서울 구로구 오리로 1189


지하철 1호선 오류동역에서 온수역으로 가는 길에서 살짝 빠져나온 오류선의 남아있는 철길인데 지금은 기차가 다니지 않는 폐선이다. 하지만 철길 따라 볼 수 있는 독특한 풍경을 찾아 교통이 다소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종종 찾는 곳이다.



군데군데 이렇게 폐선의 감성을 그대로 담고 있는 공간이 많다.


항동저수지와 수목원이 가까워질 때면 철길 주변은 정비가 되고 사람들이 찾는 장소로 변모한다. 부식된 레일의 색깔과 단풍의 색깔이 비슷해질수록 사진이 감각적으로 잘 나온다. 내가 찍어서 보여준 사진 때문에 몇 명 정도 이곳을 찾았다고 했는데 공통된 의견은 다음과 같았다.


서울인데 서울에서 너무 멀다.

자갈돌 때문에 걷기가 힘들다.

생각보다 꽤 길다.


경제성이 없어서 폐선된 철길이기 때문에 당연히 주변 대중교통 인프라가 약할 것이고 철로를 지지하기 위한 자갈을 깔았기 때문에 길바닥이 고르지 못하다. 그리고 꽤 많은 부분을 남겨놔서 잠깐만 걸어어야지 했는데 기본 한 시간을 넘어가곤 한다. 이와 같은 단점에도 불구하고 처음 갔던 사람은 다음에 기회 될 때 또 가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철길을 따라서 한참을 걷다 보면 철길 중간에 글자가 새겨진 녹슨 철판이 보인다. 무엇이라고 썼을까? 다가가서 낙엽이 앉은 철판 위로 바람을 훅 불자 다음과 같은 글자가 나온다.


" 혼자라고 생각말기 "


혼자서 저 먼 길을 갈 경우 딱 알맞은 말이라 생각하여 나는 갈 때마다 저 위치에서 사진을 찍어놓는다. 다시 원위치로 되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생길 때즈음 적절한 위치에 새겨진 메시지, 인생은 혼자라고 하지만 저 짧은 말 하나가 울림이 상당하다. 한참을 뭔가 해석해 보려다가 내가 가진 생각으로는 도저히 무리라고 생각하여 일단 사진 찍는 걸로 만족하는 편이다. 그리고 바로 옆에 펼쳐진 항동저수지와 산책길을 걷는다. 길게 이어진 철길과 달리 저수지 공원은 넓은 장소에 갖가지 동, 식물들이 살고 있다.



복잡한 우리의 하루와 인생이 어떻게 흘러갈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루를 마감하며 잠을 잘 시간, 잠들기 직전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들이 이런 사진들만 깔린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혼자여도 좋고 친구, 연인, 가족끼리도 좋다. 마음에 맞는 누군가 또는 혼자의 시간을 가지고 싶을 때는 한 번쯤은 꼭 반드시 눈을 감고 있을 때 행복해지는 장소를 찾아가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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