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하늘에서 파도를 본다_수필
보트 위의 염소. 지난 열흘 정도는 그림을 그리는 데에 집중했다(2023.1.10-2023.1.22). 운율을 따라 지어진 이 시리즈 작업은, 대학교 4학년 과정을 맞이할 무렵 졸업 전시를 위해 구상하고 시작하게 되었던 프로젝트다. 어린이 동화를 읽다 문장들이 운율에 따라 유쾌하게 흐르는 것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어 나도 재밌는 문장을 생각해 보려다 시작한 시리즈 작업인 만큼, 큰 의미나 작가의 견해 등을 담고 있지는 않다.
다만,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생각하지 않았음이 아니다. 고민하지 않았음이 아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 나에게 "염소의 의미가 뭔가요? 염소는 왜 배를 타고 있나요? 지금 땅 위에 배가 있는 건가요?" 등을 질문한다면, 나로서는 어떻게 답하는 것이 최선인지 모르겠다. 왜냐하면 그림 속 많은 요소 중 '염소'라 불리는 한 종류의 동물을 두고서도 내가 할 수 없는 과학적, 철학적, 논리적, 관념적 이야기 등을 그럴싸하게 흉내 내거나 추상적인 이야기로 무마할 수는 있겠지만, 결국 내가 실제적인 답을 낼 수 있는 것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자연은 무엇인가? 사람은 자연적인 존재인가? 그렇다면 사람의 인식과 사고의 배출도 자연스러운가? 인공물은 자연에 포함될 수 있는가? 자연의 개념은 무엇이었던가? 왜 그런 것인가? 사물의 범위를 넘어선 가상현실, 문자, 사고, 논리, 풍습, 문화, 제도, 법, 도덕, 도덕...! 이제 보니 비물질...' 아니, 아니다. 잠깐 거추장스러운 말들을 제해 보고 결론만 생각해 보자. "본질이 무엇인가?"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야_(어린왕자 중)"
적어도 지금까지 읽었던 책들 중에서는 가장 좋아하는 구절 중 하나이다. 듣는 이에 따라 이를 전혀 다르게 생각하겠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내가 갖고 있었던 버거운 질문과 고민을 정말 아름답게 바꾸어준 한 문장이기 때문이다. 한낱 소인에 불과한 내가 무엇을 결론지을 수 있겠는가? 과연 내가 감히 본질에 대한 의문을 품는 것이 가당키나 한가?
모르겠다. 아무것도 모르겠다. 어떤 것도 모르겠다. 알면 알수록 더 그러하다. 그러 중요한 것은 내가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이고, 타당한 이유나 목적이 없더라도 지속한다는 것이다. 한 사람의 삶이 돌고 돌아 안락과 배부름이라는 원초적 '꿈'에 회기하는 모습들을 보게 될 때면, 지극한 지식과 지혜가 있더라도 근본을 바꿀 수는 없다는 생각을 감히 해본다.
인류는 도약하여도, 인간은 도약을 두려워한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인류의 발전을 위해 앞장서서 치열하게 전투하는 이들의 흐름에 하릴없이 흘러갈 뿐이다. 허나, 우주비행사가 되겠다는 꿈을 갖고서도 작은 벌레 한 마리를 두려워하기도 하는 역설은 위대한 자들과 나 사이의 간극을 무너뜨려 주기도 한다.
염소는 왜 보트를 올라탔는가? 적어도 염소 자신은 보트가무엇을 위한 사물인지, 자연물인지 인공물인지, 어떠한 이치에 의해서인지 생각치는 않을 것이다(아마도?). 어쩌면 나도 모르는 새에 두려워하는 나를 투영했을지도 모르겠다.
2023.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