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혼들의비행_비혼여성공동체 비비로 살아가기
나는 운전면허증이 없다. 국가자격증 하나가 없다. 이력서는 스물넷까지 줄곧 썼다. 그 이후로 쭉 한 직장에 다녔으니 더는 쓸 일이 없었다. 내가 하는 일은 자격증보다 경력이 중요했다. 직장을 그만두고 경력이 너무 많아, 나이도 너무 많아 다른 곳에 들어가기는 무리였다. 마흔을 앞두고 공간비비로 출근하면서 소설읽기 모임을 시작했다. 3년이 지나가고 있을 즈음, 새로운 자극이 필요했다. ‘읽기’만으로는 부족했다. ‘쓰기’에 도전했다. 비비는 여행을 위한 적금을 헐어 나의 서울행 경비를 지원하고, 나는 주얼이 만들어준 쿠키를 들고 16주 동안 한 계절 서울로 ‘글쓰기의 최전선’ 수업을 들으러 다녔다. 이듬해 공간비비에서 ‘봄봄의 글쓰기’ 수업을 만들 때까지도 나에게 이력서 따위는 필요 없었다. 그 후 외부 강의를 나갈 때 강사 이력서가 필요했다. 단출했다. 아, 나는 자격증이 없구나, 아, 나는 이쪽에서는 초보자구나, 그때 알았다.
2018년 공간비비 첫 체육대회를 열었다. 2010년부터 50여 명 회원이 각자 방식으로 공간비비를 이용했다. 체육대회는 좀 늦은 감이 있었다. 상근자들은 생각하지 못한 안건이었다. 조합원의 제안이었다. ‘2018 몸과 마음의 근육을 튼튼하게’ 플래카드를 달았다. 놀랐다. 흥과 승부가 거기 있었다. 체육도 싫고, 대회도 싫은 나는 사회를 맡았다. ‘마을’은 이사장 인사말로 포문을 열었고, ‘주얼’은 경기 시작 전 몸풀기 스트레칭을 지도했다. 한바탕 웃고, 떠들고, 마지막 계주자가 달릴 때 목청껏 소리 지르고, 결국 이긴 팀이 상금으로 쏜 피자와 통닭을 먹었다. 순간, 아, 비비에게 흥과 승부욕이 없었구나. 나는 어느 팀이 이겨도 상관없었다.
2021년 공간비비 비전을 논의하는 조합원 워크숍을 제안하며 마을은 자신에게 없는 것이 ‘흥’이라고 고백했다. 나는 옆에서 거든다. 승부욕도 없잖아요. 마을은 없는 것이 많았다. 내가 바람이 불면 칼국수를 먹고 싶고, 생일이면 자장면을 먹고 싶고, 비가 오면 김치전을 먹고 싶다고 할 때 마을이 말한다. 매사에 특별하게 먹고 싶은 것은 없다고. 먹을 때 가장 행복한 주얼은 비혼객잔 주제 ‘식욕, 식탐 그것이 알고 싶다’ 발제를 자청했다. 비비 구성원 생일날 메뉴는 당사자가 아니라 주얼이 더 발 빠르게 알아본다. 내가 한여름 수박이 먹고 싶은데 들고 올 일이 심란하다고 이야기할 때, 주얼이 집에서 빵을 만들고 먹을 것을 계속 주문할 때, 우리가 각자 식비를 결제하고, 식욕을 채울 때, 마을이 말한다. 자신에게는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이 있을 뿐이라고. 그건 결핍이 아니라 공동체적 삶에 마을만의 경쟁력으로 작동했다.
비비를 지속한 데에는 우리에게 승부욕이 없어서일까? 앞으로 어떤 모습이어야겠다고 규정한 ‘상’이 없어서일까? 그게 신의 한 수였을까? 없는 것투성이였는데 우리는 어떻게 공간비비를 열었을까? 우리는 어떻게 5년간 비등록단체로 제 멋에 살아왔을까? 우리는 어떻게 협동조합 법인을 만들었을까? 우리에게 있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모아놓은 돈이 있었다. 사무실을 구하고, 보증금을 냈다. 마을에게는 사람이 있었다. 공사비를 무이자로 빌려줄 사람, 인테리어를 도와줄 사람, 사무실 집기를 선물해줄 사람, 축하금을 보내줄 사람, 격려와 지지를 아낌없이 보내줄 사람이 줄을 이었다. 주얼은 요가 자격증이 있었다. 역시 자격증 있는 여자, 말보다 몸이 먼저 움직이는 사람, 공간비비를 열고 가장 먼저 요가 수업을 시작했다. 주얼은 실업급여를 받으며 제과기능사, 제빵기능사 국가기술자격증에 도전했다. 실습한 날이면 빵을 들고 오는 주얼을 기다렸다. 인생 2막으로 ‘요리’를 선택한 푸른산은 한식조리사와 양식조리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사찰 요리까지 섭렵한 후 공간비비 송년의 밤, 비혼여성아카데미, 비비 생일날 등 기념일마다 상차림을 해냈다. 반짝별은 영어읽기 소모임을 꾸준히 만들어 공간을 채웠다. 천영은 멀리서 응원을 보내왔다.
마을은 책임감이 있었다. 우리의 활동이, 우리의 삶이, 우리의 품위를 지키며 지속하길 바랐다. 협동조합 법인을 등록했다. 공간을 확장 이전했다. 큰 책상과 새 컴퓨터가 놓인 내 자리가 생겼다. 4대 보험을 넣었다. 추진력 있는 마을이 프로젝트를 쓰고, 행동력 장착한 주얼이 실행한다. 나는 그것을 기록한다. 2015년 마을은 미래의 여성노인공동체를 그리며, 푸른산은 부모돌봄 당사자로서 둘이 함께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2021년 주얼은 사이버대학 레저스포츠학과에 입학했다. 학과 공부 시작 전인데 벌써 건강운동관리사 기출문제집을 샀다. 주얼은 새로운 자격증을 취득할 것이다. 그런데 말이야, 주얼은 너무 똑똑한데, 너무 야망이 없어. 우리는 그것이 아쉽다. 하지만 본인이 원치 않으니 그것도 냅둔다.
나에게는 뭐가 있나? 시골에 부모님이 계시고, 각자 잘 살아가는 형제자매가 있다. 언제 만나도 반가울 어릴 적 친구들이 있다. 그리고 나는 ‘자부自負’가 있다. 나에게는 어디에도 없는 공동체 ‘비비’가 있다. ‘비비부심’ 같은 것. 이것으로는 부족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