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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혼들의비행 Sep 13. 2023

[공동체 3] 가족 너머, 바깥 너머

비혼들의비행_비혼여성공동체 비비로 살아가기

[2003년 비혼모임을 시작하여 자기 자신으로 잘살아오는 동안, 이 사회에서 안전한 둘레가 되고 버팀목이 되어준 비혼여성공동체 '비비'가 있었다. 나는 비비의 한 개인으로 어떻게 살아왔는지, 우리는 쌓아온 신뢰를 안고 어떻게 앞으로 한 발짝 나아가고 있는지, 개인과 공동체가 어떻게 조화롭게 지속할 수 있는지, 지난 20여 년간의 비혼생활과 공동체적 삶을 돌아보고자 한다. 비혼, 공부, 여행, 독립, 공간, 소설, 돌봄, 공동체, 글쓰기 등 주제를 잡아 한 주제당 3~4편 글을 쓸 계획이다.]



[공동체 3] #. 가족 너머, 바깥 너머     


5월이면 가정의 달을 맞아 어김없이 인터뷰 요청이 왔다. 낯선 단어 ‘비혼’이 어느새 경향이 되고, ‘공동체’가 대안 언어처럼 등장했다. 그 사이를 ‘페미니즘’이 가로지르듯 횡단했다. 비비는 ‘다양한 가족’ 범주에 묶였다. 거기가, 내가, 비비가 들어갈 위치인가? 나는 못마땅했지만 달리 방도가 없었다. 결국 결론은 액자에 박힐 가족사진을 찍거나 ‘비비는 가족인가?’ 질문으로 마무리되었다.     


나에게, ‘가족’이 저항의 언어였나?     


나는 결혼하지 않았지만, 결혼을 반대하지 않는다. 비비는 정관에서 ‘본 모임은 결혼을 관습과 제도적 정상성으로 인정하는 우리 사회의 가부장적 시선에 반대하고’라고 밝혔다. 결혼제도에 들어가지 않은 나는 나중에 인식했다. 나의 삶은 ‘이성애 규범적인 가족중심 생애모델’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것을. 사회의 눈으로는 ‘자연스러운 삶’의 생활양식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나의 삶이 ‘연구 대상’이 되어가는 것을 못 견뎌 했다.     


나는 비혼을 선택했지만, 비혼을 주창하지 않는다. 비혼은 삶에서 흐르고 있고, 변화를 머금은 상태이며, 시대적 현상으로 느껴졌다. 비혼의 삶이 나의 일상에서 자연스러워졌을 때, 시간이 흐른 후에야 말할 수 있었다. ‘나는 비혼이야.’ 비비는 비혼여성들을 만나기 위해 ‘공간비비’를 열었다. 비혼을 운동할 의지보다 비혼으로 살아갈 의지가 강했다. 우리는 ‘협동조합’의 공적 이름을 갖고부터 ‘비혼 이슈’로 여타 단체와 연결점을 찾아 연대했다. 나에게 ‘운동성’은 앎과 삶을 조금 더 가까이, 일상에서 조용히 움직이는 것, 생활에서 함께 활동하는 것.     


나는 공동체를 이루고 살지만, 우리의 공동체가 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규모와 규칙과 결속을 달리하는, 구성원의 필요와 욕구를 달리하는, 자기만의 공동체를 만들면 되지 않을까. 다만 비비는 가족 규범에서 벗어나 생활공동체를 꾸리는 것으로 비혼을 살아냈다. 가족이 저항의 언어로 끼어들 틈이 있었나?      


나는 가족을 구성하고 싶은 욕구가 없었다. 법적 관계만 아니었을 뿐, 비비는 최근 가족의 조건으로 보는 ‘강한 정서적 유대감’은 물론 ‘인생의 미래를 함께 계획’했다. 비비는 가족구성권 실현 방법인 ‘생활동반자법’, ‘동성결혼 법제화’, ‘내가 지정한 1인 제도’에 동의한다. 비혼여성 1인가구로서 비비와 함께 생활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가는 나의 정체성은 가족구성권으로는 적확하게 설명하기 어려웠다. 나의 위치는 어디에도 완벽하게 속하지 않으며, 어떻게도 포섭되지 않았다. 나는 그 미세한 차이를 붙들고, 다른 단어에 움찔했다.     


무슨 관계인가요?     


‘이 질문에 주춤하는 관계는 이성애 규범적인 생애모델 바깥의 모든 관계다.’라는 문장을 읽고 나는 왜 나의 위치를 찾지 못했는지 깨달았다. 비비는 ‘바깥의 더 바깥’에 존재했다. 우리는 규범적인 생애모델 바깥에 있으면서, 어디에도 없는 생활공동체로, 우정과 돌봄의 네트워크로 성장하며 사회적 관계망을 형성했다. 비비처럼 혈연도 연인도 아닌 친구 관계로 함께 사는 사람들의 공동체는 어디에 위치해야 할 것인가? 가족구성권연구소는 ‘2인 동거 사회적 가족’, ‘주거공동체 지향 사회적 가족’, ‘네트워크 지향 사회적 가족’ 등 사회적 가족을 언급했다. 나는 2인 동거가 아닌 주거공동체와 네트워크 지향을 넘나들며 나의 위치를 찾고자 했다.     


토요일 아침, 6인용 식탁을 치운다. 식탁 위 널브려 놓은 잡지며 독서대, 노트북, 갑자기 떠오른 문장을 휘갈긴 스프링 노트, ‘비혼여성공동체 비비로 살아가기’ 가제를 적은 프린트물을 방 안으로 옮긴다. 테이블 매트 여섯 개, 아니구나, ‘천영’이 못 온다고 했지, 엄마가 코로나에 걸려 병원에 입원했다고 했구나, 다섯 명 상차림을 마쳤다. 그래, 나는 스파게티 접시도 여섯 개를 사 놓았었지. 모처럼 집에서 모임을 하는 날이다. 똑똑, 컨디션을 걱정했던 ‘반짝별’이 먼저 왔다. 언니들, 안 왔어요? 아파트 건너 동에서 ‘주얼’과 ‘마을’이 도착했다. 우리는 완주에서 오는 ‘푸른산’을 기다렸다.      


오늘은 2003년 시작한 비혼모임 ‘비비(비혼非婚들의 비행飛行)’ 이야기 초고를 읽고 소감을 나누기로 했다. 떨린다. 저는 우리 이야기가 꼭 책으로 나오면 좋겠어요. 소도시 전주에서 비비는 어느덧 비혼의 대명사가 되었다. 2006년 스스로 공동체라 칭하며 정관을 제정했다. 2010년까지 주거 독립하여 1인가구 네트워크 생활공동체를 이루었다. 2010년 ‘공간비비’를 열어 비혼여성 만남의 장을 만들고, 2016년 ‘협동조합’ 법인체로 변모하여 다양한 비혼 세대와 비혼여성으로 살아가는 힘을 나눴다. 2017년 ‘아파트 주민모임 단톡방’을 개설하여 연대와 안전한 주거의 중요성을 알아갔다. 2022년 여성주거공동체를 향해 ‘비비 사회적협동조합’을 설립했다. 이 소모임이 봉착의 시기마다 변화를 꾀하여 잘 있으리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않았다.      


나는 내성적인 사람이지만, 때때로 까칠함을 드러낸다. 외부적인 갈등과 충돌을 싫어한다기보다는 힘들어한다. 그것 없는 일상이기를 갈망한다. 표면적으로는 주의 주장을 잘 하지 않지만, 내면적으로는 자신만의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이다. 사실은 내 뜻대로 살고 싶은 사람이다. 결합의지보다는 자유의지가 과한 사람이다. 선택의지보다는 균형의지를 원하는 사람이다.      


나의 정체는 가끔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어떤 장소에 있느냐에 따라, 어떤 위치에 있느냐에 따라, 어떤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 나는 다른 사람이 된다. 비비 정기모임을 할 때는 입이 뿌루퉁하게 나와 있다가도 여행을 갈 때 카메라가 손에 쥐어지면 갑자기 날아다닌다. 내 정체는 알고 보면 괜찮은, 독특한, 특이한, 더 모를 것 같은 사람이지만, 평소에는 그냥 그런 무미건조한, 티도 안 나는 사람이다. 이런 개인적인 내가 어떻게 공동체적 삶을 살게 되었을까.     


‘비비’가 가족인가요?

비비를 중심으로 일상을 꾸리고, 미래를 같이 준비해 가는 우리의 관계를 차마 ‘가족’이라 부를 수는 없어서, 그냥 ‘비비’라고 부르련다.     


‘무슨 관계인가요?’

생활공동체 구성원 관계라고 하면 공감이 가나요?

지금까지 내 삶에 ‘중요한 사람’이었는데, 미래에 ‘소중한 사람’이 되어 있을지도 모를 관계요.

아니다. 그냥 ‘비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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