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비혼모임을 시작하여 자기 자신으로 잘살아오는 동안, 이 사회에서 안전한 둘레가 되고 버팀목이 되어준 비혼여성공동체 '비비'가 있었다. 나는 비비의 한 개인으로 어떻게 살아왔는지, 우리는 쌓아온 신뢰를 안고 어떻게 앞으로 한 발짝 나아가고 있는지, 개인과 공동체가 어떻게 조화롭게 지속할 수 있는지, 지난 20여 년간의 비혼생활과 공동체적 삶을 돌아보고자 한다. 비혼, 공부, 여행, 독립, 공간, 소설, 돌봄, 공동체, 글쓰기 등 주제를 잡아 한 주제당 3~4편 글을 쓸 계획이다.]
[공동체 4] #. 비혼의 삶 뒤에 노년의 삶이 있었다
2021년 12월 18일 토요일, 먼 훗날 ‘이날’을 기억하겠지요. 2003년 2월 28일은 비혼모임 ‘비비’를 시작한 날, 2010년 6월 15일은 ‘공간비비’를 개소한 날이라고 기억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오늘 이 만남이 이 사회에 작은 기여가 되기를 소망하며 여성주거공동체 ‘비비 사회적협동조합’ 창립총회를 열었습니다. 타인을 위해 희생하지 않는 내가, 오로지 나를 위해 애쓰며 살아온 내가 ‘기여’를 생각하다니요. 저도 놀랍습니다.
나는 왜 주거공동체를 생각하게 되었는가? 창립총회를 하기 전에 사전 워크숍을 진행했지요. 발기인들이 '중년, 노년 여성 1인가구 주거공동체의 필요성과 의미' 생활 연구에 인터뷰이로 참여한 이들이지만, 서로가 초면인 경우가 많았으니까요. 비비 구성원도 있고, 지인도 있고, 공간비비 조합원도 있고, 회원도 있고, 프로그램 참가자도 있고, 우리는 그들을 전혀 알지 못하는 이들도 있었지요. 놀랍지 않아요?
혼자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들은 무엇을 믿고 여성주거공동체에 기꺼이 동참했을까? 각자의 필요가 있었겠지만, 지금까지 비혼여성으로 혼자 잘 살아왔는데, 세상 어려운 것이 공동체 참여일 텐데, 이상과 현실은 다르다는 것 정도는 알 나이일 텐데, 그것도 주거공동체라니요. 지금에 와서 왜 그랬을까요? 정해진 것 하나 없고 어디로 나아갈지 미지수인 이 프로젝트에 앞으로 돈과 시간, 마음을 써야 할 텐데 대체 무슨 생각이었을까요? 어찌 되었든 이 프로젝트를 주도하는 비비에 대한 그들의 타진과 판단이 있었겠지요. 저는 그것이 나쁘지 않았을 거라 여겼고, 딱 그만큼의 신뢰는 우리가 주지 않았을까 생각했습니다. 아니어도 어쩔 수 없고요.
저도 다시 떠올려보았습니다. 나는 왜 주거공동체를 생각하게 되었는가? 이 프로젝트에 어떤 마음으로 동참하게 되었는가? 어디서부터, 어떻게 말해야 할까요. 나는 개척자가 아닙니다. 나에게 주어진 삶에서, 그 테두리 안에서 ‘조금 더’ 정도를 고민하는 사람이지요. 그래서 고민의 결이 자잘하다 보니 뭔가를 시작하면 그것을 천천히, 오래오래 붙들고 있는 사람입니다. 결정을 빨리하는 사람은 아니에요. 결정하고 나면 실천은 오래오래 하지요. 친구는 10년 이상 만나고, 직장도 10년 이상 다니고, 아마 결혼했다면 10년 이상은 살아봤을 겁니다.
모임도 10년 이상 참여하고, 공간비비 활동도 벌써 10년이 훌쩍 넘었네요. 다른 것은 예상하고, 마음먹고, 실행하면 되었지만, 상근자 생활은 걱정이 많았습니다. 거기에서부터 확실하게 다른 길을 선택했다는 것을 직감했으니까요. 그래서 삶의 방향이 중요하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결혼의 삶이 가보지 않은 길이라면 나에게 공간비비는 전복된 이후의 다른 방향, 다른 길, 다른 세계로의 전환점이었습니다.
남극에서 살다가 북극에서 사는 느낌이랄까요. 새롭고 재밌는데, 좀 추웠어요. 저는 그랬습니다. ‘마을’과 ‘주얼’은 어땠는지 모르겠어요. 줄곧 경력직으로, 연속성에서 의미와 희열을 느끼며 직장을 다닌 나는 처음 해 보는 이 일이 기대보다는 두려움이 컸습니다. 그러니 이 과정에서 자존감을 얻기까지는 역시나 10년은 해봐야 알 수 있을 거라 다독였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빨리 10년이 지나와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이제 자존감은 얻었냐고요? 글쎄요. 지금은 덜 춥거나, 추위에 익숙해졌거나.
비혼의 삶이 20년이 넘었네요. 30대에는 결혼에 대한 일말의 여지는 한 조각 남겨놓은 채 비비와 신나게 놀았어요. 결혼, 할 수도 있겠지만, 결혼이 그렇게 중요한가. 적극성 없는 여지는 순식간에 사라지더라고요. 미련도 같이 데려갔나 보아요. 40대 비혼의 삶은 잘 맞는 티셔츠처럼 편안하게 느껴졌어요. ‘이것이 나의 삶이구나’. 동시에 공간비비의 낯선 세계가 익숙함으로 적응될 때 우리에게 노년의 삶이 문을 두드리고 있었지요.
2018년 비비는 학습 도서로 『아픈 몸을 살다』를 읽었어요. ‘반짝별’이 질병을 얻은 이후였지요. 2019년 ‘비혼여성, 부모돌봄 경험을 나누다’에서 ‘푸른산’은 ‘비혼으로 집에서 부모를 돌본다는 것’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했어요. 이어서 부모돌봄 하는 여성들을 위한 ‘자기돌봄 캠프’에서는 푸른산 집에서 저녁 만찬과 더불어 감동과 위로의 시간을 보냈어요. 와병의 엄마가 옆방을 지키고 있었고요. 2020년 비비는 성평등 커뮤니티 지원사업에 선정되어 ‘여성노인 공동체주택 준비모임’을 시작했어요. 그때 『새벽 세 시의 몸들에게』를 읽었어요. 그 책이 그동안 부러 가리고 있던 내 눈의 안대를 벗겨버렸어요.
나는 비혼여성의 노년을 상상하고 싶지 않았어요. 지금 너무 좋거든요. 중년으로 쭉 있으면 좋겠어요. 노년과 돌봄에 관한 책을 읽고 이야기할 때 그렇게 말했어요. 그냥 그때 가서 생각해볼게. 지금 그거 생각하면 너무 슬퍼. 나는 아가씨 할머니로 꼬부랑 할머니가 되어서도 혼자서 뭐든 씩씩하게 독립적으로 살고 싶어요. 누군가에게 짐이 되거나 폐가 되고 싶지 않아요. 당신도 그렇지 않아요?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하잖아요. 당신도 알고 있잖아요. 그래서 이 자리에 온 거 아니에요?
'중년, 노년 여성 1인가구 주거공동체의 필요성과 의미' 생활 연구에 ‘마을’, ‘주얼’과 공동연구자로 이름을 올렸어요. 거기에서 저는 ‘돌봄을 마주하다’ 장을 썼어요. 차마 ‘직면하다’라고 쓸 수는 없었지요. 우리가 진정 돌봄을 직면하게 될 때 이 논문을 기억해 낼 거 같아요.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비혼여성들이 부모의 나이듦과 질병이 찾아오게 되는 과정에서, 돌봄을 낯설게 인식하고, 돌봄이 우리를 연결하고 있음을 확인했지요. 비비가 함께한 빼곡한 날들에 돌봄이 흔적처럼 남아있는 것처럼요. 우리는 아마도 최초로 노후를 설계하는 비혼 1세대로 기억되겠지요. 어떻게 설계할 거냐고요?
나는 이 프로젝트에 동참하게 되어 기뻐요. 공간비비가 비혼여성들 이야기를 전하며 10년을 보냈잖아요. 10년이 지나니 ‘비비’와 ‘공간비비’가 같이 늙어가고 있더라고요. 할 만큼 했다는 기시감이 들었지요. 동시성의 감각도 떨어지고요. 우리는 50대가 되었어요. 비혼 정체성보다는 이제 다가올 노년을 누구와 함께 어떻게 살 것인가,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50대, 비혼여성, 1인가구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노년의 삶을 보낼 집, 아침 인사를 나눌 친구, 그리고 나에게 행위성을 부여할 작은 일이 있기를 바라요. 나의 이 행위가 작은 쓸모가 된다면 더없이 좋겠지요. 2019년 비비와 함께 여성주거공동체 해외 탐방을 하러 갔어요. 파리에서 만난 ‘위르실라’ 님이 한 말이 떠오르네요. 인터뷰를 마치면서 어떻게 이렇게 건강한 삶을 살고 있냐는 물음에 '나에겐 늘 프로젝트가 있었다.' 저희도 그렇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시작부터 비비뿐만 아니라 인터뷰 참여자들과 함께한다고 들었는데, 신뢰 관계의 간극을 어떻게 해결해 나갈 건가요?
두려움과 희망은 늘 양손에 쥐고 있어야 그 균형감이 나를 잘 서 있게 해주는 거 같아요. 알지요, 알지요. 어렵고, 괴로운 것이 인간관계라는 것을요. 우리가 일이 힘들어서 그만두나요, 사람이 힘들어서 떠나지요. 훅 들어오지 않았으면 한다는, 어떤 인터뷰이 말이 떠오르네요. 적절한 거리 유지, 그거 제가 잘합니다.
나를 해치는 상황을 경계하고, 상대방을 위해 과하게 애쓰지 않지만, 동참해야 한다면 적극적으로 움직일 것입니다. 나와 딱 맞는 사람은 없을 것이고, 하나씩 알아가겠지요.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를 말입니다. 사람이 함께하는 곳에 갈등이 있음은 불을 보듯 뻔하니까요. 트러블과 함께하는 힘을 기르고 있습니다. 성격보다 강한 것이 기술이겠지요. 믿는 구석이라면 그거에요. 비비가 함께하니까 큰 걱정은 없습니다. 뭐든 되겠지요. 아니 되어도 그만큼의 경험을 쌓겠죠. 그리고 또 다른 모색을 찾을 것입니다.
같은 아파트에서 친구들이랑 이웃으로 사는 거, 우리도 꿈꾸고 있는 건데요. 비비는 왜 앞으로 공동체주택을 지으려고 하는 겁니까?
나도 잘 모르겠어요. 정답이 어디 있겠어요. 책을 읽다가 베란다에서 비비 구성원이 사는 아파트 건너 동을 바라보면 안심이 들어요. 지금 혼자 사는 이 집이 너무 좋은데, 왜 굳이 미래에 ‘조금 더 가까이’ 살아 볼 마음을 내어 보는지 말입니다. 우리는 노년이 되어서도 ‘더불어 자립’할 수 있을까요? 어느 날 비혼의 정체성은 사라지고, 늙어가는 육체가 어떻게 나를 배신할지, 숱한 돌봄 속에서 관계를 이어 온 인간이 얼마나 취약한지, 앞으로의 삶에 어떤 우연이 들이닥칠지 내 어찌 알겠어요. 지금보다는 작고 촘촘한 울타리가 필요할지도 모르지요. 나이 들어서도 상호의존의 돌봄공동체 속에서 시민으로 살고 싶으니까요. 먼 훗날 비비가 사는 모습이 이 모든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도착하지 않을까요?
우리의 여성주거공동체 프로젝트가 출현하는 날, 그날을 미리 기억하고자 합니다. 당신도 축하해 주실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