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혼들의비행_비혼여성공동체 비비로 살아가기
‘말’부터 한 적은 있어요?
말부터요? 글쎄요. 그냥 마구 말이 나오는 대로 술술 말한 적은 별로 없어요. 내 말이 공중으로 흩어질 것 같으면 잘 안 해요. 내가 말을 잘한다고 느껴졌다면 그것은 엄청나게 생각하고, 미리 연습했을 때죠. 배우처럼요.
나는 대개는 생각이 정리되어야 얘기하고, 그럴 수 없는 상황에서는 잘 안 하거나, 하더라고 집에 가서 못다 한 말들이 머릿속을 떠다니는 통에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한다. 그때 그 말을 해야 했는데. 그래서 인터뷰이가 되었을 때 온몸에 긴장감을 휘감고 인터뷰어 앞에 앉는다. 나는 나의 의견을 피력하기보다는 나를 잘 ‘표현’하고 싶었다. 그건 즉각적인 대화 방식으로는 어려운 일이었다. 나에게는 생각할 시간이, 그 생각을 정리해서 그려낼 시간의 낙차가 필요했다. 그러나 사회생활은 매번 소통을 부르짖으며 동시성을 요구했다.
아버지는 말이 없었다. 아니, 할 말만 했다. 쓸데없는 말은 하지 않았다. 엄마는 때때로 침묵을 깼다. 하지만 대체로 집안은 고요했다. 자식들은 부모에게 예를 갖추고 필요한 말을 했다. 용돈 3만 원이 필요해요. 책 사려고요. 식사할 때 대화라고 할 만한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게 익숙했다. MBTI 검사를 해본다면 엄마를 제외한 모두 ‘I’가 나올지 모른다. 나는 말들이 떠다니는 상황에 취약하다. 귀가 아프다. 시시비비를 가리는 현장에 오래 있지 못한다. 누가 옳고, 무엇이 그른가가 뭐가 중요한가? 나는 그, 누가, 왜, 그 말을 하는지, 그것이 궁금했다.
명절날 집안은 모처럼 떠들썩해졌다. 큰집과 작은집 친척들이 오고, 서로의 안부를 묻는 자잘한 대화들이 이어졌다. 작은집 사촌들은 작은아버지와 스스럼없이 대화하고,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그 어색함이 부러움인지 낯섦인지 모른 채 거기 섞여, 나도 꼭 쓸 데 있는 것은 아닌 이야기를 나누었다.
저예요. 네. 네. 이번 주말에는 일정 있어서요. 네. 네. 잘 지내세요.
누구?
엄마요.
나는 무슨 친척 어르신이랑 통화하는 줄 알았다.
아, 그랬나요? 전화하는 거라서 그래요. 평소에는 좀 나아요.
대화의 기술이 필요하다는 것을 치사한 직장생활에 적응하면서 터득했다. 퇴근길, 상사에게 저항하지 못한 마음을 되새기며, 머리로는 말을 하고 눈물은 바람에 말리며 터벅터벅 걸었다. 그래도 식지 않는 울분을 어쩌지 못해 그날 밤 이니셜을 가득 채워 노트에 휘갈겼다. 나에게조차 들키고 싶지 않은 마음들. 나중에는 몰라도 되는 내용들. 문장만이 나를 위로했다. 쓰는 행위만이 마음을 정화했다.
어느 날, 나도 상사가 되었다. 원치 않았다. 내향형 리더는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것도 강한 외향형 팀원들과 함께. 나는 팀원의 말에 당황했고, 돌아와 적었다. 그래, 탁구를 연습해야겠어. 말이 나에게 건너오면 바로 받아쳐서 넘겨야 하는데 말이야. 그게 안 되네. 여기서 시간차 공격은 무의미한데. 어떻게 연습하지?
아, 그때 그 말을 해야 했는데. 젠장. 넌 나를 뭘로 보는 거니? 내가 네 친구니? 이건 너무 유치하구나. 그냥 내 요구사항을 전달하면 되는데. 그게 안 되네. 후후 불어 날아가 버려도 아쉽지 않을 마음을 손을 따라 활자화하고 나면 내가 저만치 보인다. 나는 희화의 단계에 이른다. 푸흡 웃고, 잠이 든다. 해가 뜨면 말간 얼굴로 출근했다. 이것이 진정 ‘나’라고 말할 수 있는 나의 모습인가? 이건 내가 아니야, 아니라고. 나는 거부했다.
탁구는 배우지 않았다. 팀원은 하나둘씩 바뀌고, 여전히 결혼하지 않은 나는 그대로 팀장 자리에 있었다. 하루는 출근 전 팀원들과 직장 근처 초등학교에서 배드민턴을 쳤다. 공을 따라서 왔다 갔다 세 번을 하고, 나는 쓰러졌다. 그날 온종일 사무실에서 졸았다. 몸을 내던지고 싶었다. 나는 팀원들에게 말했다. 나처럼 하면 안 돼. 팀원과의 운동은 그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었다. 어렵구나. 몸이 다른 개체와의 소통. 나는 나를 잘 설명하고 싶은 마음을 버리고 몸이 없는 것을 좇았다.
영화를 보고, 나는 말했다. 영화가 어땠는지 나에게 물어보지 말아줘요. 지금 바로 말할 수 없어요. 나는 그 영화를 일주일 동안 생각했다. 그리고 리뷰를 썼다. 이제 조금 말할 수 있을 거 같아요. 무슨 영화? 우리는 이미 다른 영화를 보고 있었다. 집과 땅, 직장과 직원을 구하는 이들을 위한 사내 홈페이지에 심심풀이 땅콩처럼 페이지를 하나 만들었다. 날마다 생활정보신문을 마감하고, 주에 한 번씩 영화모임에서 본 독립영화 리뷰를 올렸다. 팀원들은 말했다. 팀장님, 이런 것도, 써요? 브런치나 블로그가 활발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나는 ‘이런 것’을 쓰며 직장생활의 한쪽 면을 채워갔다.
소설을 읽고, 나는 말하지 않았다. 이 짜릿함에 대하여. 지난한 직장생활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 허구의 세계가 날 구원할 줄이야. 소설을 읽지 않았더라면 나의 내면은 텅 비어 고독하거나, 바람이 불어 흔들리거나, 완벽한 타인들로 괴로웠을 것이다. 소설의 문장을 가져와, 소설의 이야기를 가져와, 소설의 윤리를 가져와 나는 나의 현실을 살아냈다. 하지만 거기까지. 나의 쾌락은 사회의 증명이 될 수 없었다. 넌 누구니? 어디선가 계속 묻고 있었다.
공간비비에서 소설읽기 모임을 꾸려 3년이 되었을 때, 나는 가방을 쌌다. 글쓰기 강좌를 듣기 위해 16주 동안 서울행 버스를 탔다. 봄에 시작한 강좌는 한 철을 보내고 여름이 되어서야 끝이 났다. 읽기가 왜 쓰기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지, 나의 이야기를 쓰지 않고는 왜 나를 말할 수 없는지, 그것을 타인과 나누지 않고는 왜 무의미한지, 뼛속까지 새기는 나날이었다.
그곳에는 나보다 이상한 사람들이 많았다. 나는 용기가 났다. 저는 비혼인데요, 수줍게 말했다. 나만 쓸 수 있는 이야기를 찾았다. 우리는 직장을 정리하고 작은 공간을 마련해서 비혼여성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지인들은 우리가 어떻게 먹고사는지 그것이 가장 궁금합니다. 나는 ‘마을’의 독려에 힘입어 ‘주얼’이 만들어준 쿠키를 들고 이곳에 왔습니다. 경비는 비비 적금에서 지원받았습니다. 우리의 경제공동체는 세상의 눈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비혼여성공동체 테두리에서 안전하게 살아온 나는 나의 삶이 사회적으로 어떻게 해석되는지, 나는 어떤 포지션으로 살아야 하는지, 합평을 듣고 모든 것이 질문으로 다시 돌아왔다. 알다가도 모를 나의 마음은 글을 쓰면 쓸수록 명백하게 드러났다. 나는 겨우 비혼의 정체성을 얻었다. 나의 수확이었다.
이듬해 공간비비에서 소규모로 글쓰기강좌를 열었다. 누가 올까 싶었는데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그들이 왔다. 내가 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나는 쓰는 사람에서 다시 읽는 사람이 되었다.
목요일 아침, 7시 20분 알람을 끄고 뒤엉킨 이불 속에서 제대로 떠지지 않는 실눈으로 눈부신 휴대폰 액정 화면을 본다. 온라인 글쓰기 카페로 들어간다. 그들이 수요일 밤을 새우고 써낸 과제 글들이 빛나고 있다. 설레는 마음과 고마운 마음과 약간은 숭고한 마음으로 글을 읽는다. 일주일에 한 권씩 책을 읽고, 한 편씩 글을 써내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비몽사몽, 가수면 상태, 어떤 글은 눈이 감겼다 떴다 하게 하고, 어떤 글은 자세를 곧추세워 앉게 한다. 글과의 첫 만남은 즉물적이고 동물적이다. 그래서 감각적이고 즉각적으로 반응한다. 읽히는가? 재미가 있는가? 지루하지 않은가? 임팩트가 있는가? 감동적인가? 마음이 동하는가?
대면식을 마치고 출근 준비를 한다. 두 번째 읽기는 모니터 앞에서 짬짬이 한다. 집중이 안 된다 싶으면 조용히 글을 들고 빈 요가실로 들어간다. 한참 집중해서 읽으면 머리가 ‘띵’해진다. 글의 전체 맥락을 파악하고, 서두와 결말, 단락과 단락의 연결 등 구성을 짜보고, 비문과 중요 문장을 체크하고, 표현이 잘 된 문장과 수정 보완하면 좋을 문장을 찾고, 전하고자 하는 바가 명확하게 전달되었는지 알아보고, 빼면 좋을 문장을 골라낸다. 그리고 마음에 와 콕 박히는 문장에 별을 새긴다. 낱낱이, 구체적이고 꼼꼼하게 눈을 부릅뜨고 읽는다. 그리고 잠시 글을 묵혀둔다. 동안 내 머리도 쉬게 한다. 글을 다시 새롭게 볼 재생의 시간이 필요하다.
저녁,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가 고요한 시간을 확보한다. 세 번째 읽기는 펜의 색깔을 바꾸고 돌입한다. 읽기보다는 생각하기에 더 집중한다. 글을 쭉 펼쳐놓고 곰곰이, 턱을 괴고 멍을 때린다. 아! 이 글을 통해 글쓴이는 무엇을 말하지 못했을까? 무엇을 표현하고자 했을까?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 이면에 포진된, 말하지 못한(않은) 내면은 무엇일까?
글쓴이 자신도 잘 모르게 질질질 흘리고 다니는 고민의 기저 같은 것. 나는 이것을 모른 체 해야 하는지, 거론해야 하는지 늘 고민이다. 나의 코멘트가 글쓰기를 통해 자신을 알아가는 방편이어야지 상담의 영역으로 넘어가서는 안 될 것이다. 글의 핵심을 끌어내는 통찰이어야지 윤리의 개입이어서도 안 될 것이다. 그래서 세 번째 읽기는 어디서 멈추어야 할지가 관건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것을 어떻게 하면 정확하고 명확하게 그들에게 전달하는가에 있다. 그것이 나의 이차적 딜레마다.
나의 꿈은 교사였다. 나에게, 가르침은 ‘주는 행위’의 최고봉으로 느껴졌다. 나에게서 너에게로 무언가 전달되는 순간의 아름다움. 나의 욕망은 경외를 넘어 꿈이 되었다. 그런데, 꿈만 교사였다. 그 길로 가는 길은 멀어졌고 나는 다른 일을 직업으로 삼았다. 내가 끝까지 간직한 것은 소설. 그것을 읽는 것! 그것에 대해 쓰는 것! 그 후, 미세하게 달라진 나의 정체로 말하는 것! 길은 멀어졌다가 가까워졌다. 읽고, 쓰고, 말하는 사이가 되는 시간을 만들었다. ‘봄봄의 글쓰기’라는 이름을 붙였다. 언젠가 나에게 이러한 시간이 찾아오리라는 걸 막연하게나마 짐작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꿈은 이루어진다기보다는 어느 날 문득 이렇게 찾아오는 것처럼. 나는 이제 겨우 당신의 글에 대해 할 말이 생겼다.
강사는 처음이라, 내 몸은 이상 징후 반응을 보였다. 코가 피를 쏟아냈다. 길게. 멈추지 않고. 폭포처럼. 어렸을 적 코피를 심하게 쏟은 나는 무서웠다. 눈이 힘을 상실했다. 바위를 눈자위에 올려놓은 듯 무겁게 짓눌렸다. 아침이면 눈가가 부옇다. 꿈에서 느꼈던 감정의 잔재들이 흔적을 남겼다. 한쪽 시력이 거의 없는 나는 걱정되었다. 귀에 철사를 넣고 헤집었다. 전기드릴처럼 부르르 떨렸다. 사오정 소리를 자주 듣는 나는 괴로웠다. 가슴이 통증을 호소했다. 심장이 왼쪽인가, 오른쪽인가.
언제 오려나. 종강의 날. 이 모든 증상이 몸의 왼쪽에서만 발생했다. 기분이 좋지 않다. 오른쪽만 멀쩡했다. 몸의 균형이 어그러졌다. 입만 징후를 보이지 않았다. 미스터리다. 8주간 시절 인연처럼, 강좌가 끝나자마자 모든 징후는 사라졌다. 병원에 가려고 했는데 증세가 사라져서 가지 못했다. 미스터리는 또 있었다. 너 입이 트였더라. 일주일 치 할 말을 오늘 다 했네요. 글쓰기도 훈련인데, 말하기도 훈련이었다.
나는 나를 보호하며 살아왔다. 몸이든 마음이든. 읽기의 행복과 쓰기의 고통을 일찌감치 파악했다. 일상은 읽기와 함께 흘러갔다. 그러함에도 쓰기를 멈추지 않은 것은 ‘넌 누구니?’에 대한 대답을 하고 싶어질 때가 출몰했기 때문이다. 비비는 숱한 인터뷰에 응했다. 인터뷰어가 쓴 글을 읽었을 때, 나는 행복한 적은 거의 없었다. 그것은 그들의 말이지, 나의 말이 아니었다. 때론 오해로 물든 채로 내버려 두어도 상관없었다. 오독된 나도, 나니까.
비비가 20년의 획을 그어, 책을 내기로 했다. 네가 비비 이야기를 쓰는 것을 허락할게. 우리는 안다. 이 허락이 얼마나 고귀한 것임을. 나는 당첨되었다. 나는 웃었다. 내가 책을 쓸 수 있을까? 바란 바는 아니었다. 이루고자 함이다. 내 생에 이뤄야 할 것이 나타나다니. 이것은 책임을 넘어선 사명일지도.
일단 써 봐. 비비는 격려했다. 혼자서 쓰는데, 혼자서 쓰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것은 나 혼자만의 이야기가 아니니까. 그렇다고 공동체를 중심으로는 글쓰기가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이것은 리포트가 아니라 에세이니까. 비비는 말했다. 맘껏 쓰세요. 나는 한바닥을 썼다. 너는 여기서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거야? 뭐든 말하고 싶지. 우리가 얼마나 ‘여행’을 많이 갔는데. 우리가 얼마나 ‘공부’를 많이 했는데. 나도 알지.
기시감이 든다. 하나만 말해봐. 이건 내가 글쓰기 참여자에게 침이 마르도록 한 말. 모두의 이야기를, 20년의 이야기를 하나로 말해야 한다니. 그런데 거기에 내가 보이지 않으면 안 된다니. 나는 여기 있어. 내가 보여요? 비비가 느껴져요? 둘 중 하나라도 제대로 나타나지 않으면 나는 원점으로 돌아가야 한다. 나는 다시 쓰는 사람이 되었다.
비비 이야기를 쓰는 과정은 비비의 삶과 다르지 않다. 개인과 공동체, 이 둘은 어떻게 헤어지지 않고 공생할 수 있었을까? 부여잡을 ‘사명’이 없었다면 나는 이 글을 쓸 수 없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