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은 인간이 알고 있는 가장 최대의 선이며, 우리가 땅 위에서 누릴 수 있는 천국의 모든 것이다. -조셉 에디슨 (Joseph Addison)-
등교하면 책상에 엎드려 자거나 친구들과 이야기하지 않고, 책을 피는 고등학생이 있다. 수업 시간은 말할 것도 없고, 쉬는 시간, 식사 시간, 심지어 등하굣길에도 공부한다. 치열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그는 나의 친한 고등학교 친구였는데, 3년 동안 목표로 하는 대학에 가기 위해 공부에 몰두했다. 정말 쉼 없이 공부하는 모습이 존경스러웠고 나도 내심 자극을 받아 공부를 열심히 했다.
3년 간의 긴 싸움 끝에 친구는 원하는 대학에 합격했다. 수능이 끝난 우리는 이때까지 억눌려 있던 자유를 맘껏 누리기 위해 시내로 향했다. 피시방, 영화관, 노래방, 볼링장 등 입으로 말만 해왔던 것들을 드디어 하는 날이었다. 나는 입시 준비로 공부 외에 다른 것을 열심히 해본 적이 없는 그저 평범한 학생이었고, 당연히 내 친구도 그럴 것이라 생각했다.
오늘 같은 밤 이대로 머물러도 될 꿈이라면 바랄 수 없는걸 바라도 된다면 두렵지 않다면 너처럼 -박효신 <숨>-
그러나 웬걸 나는 친구의 예상치 못한 노래 실력에 당황했다. 고음으로 어렵다고 이름난 노래를 수준급으로 부르고, 잔잔한 노래도 감정 실어 부르는 모습에 깜짝 놀랐다. '아, 애한테 이런 모습도 있구나.' 순간적으로 내 친구가 낯설게 느껴졌다. 왜 이성에게 어필할 때 음악이 먹히는지 이해하는 순간이었다.
덩치가 크고 무서운 외모를 가진 사람이 부드러운 선율의 피아노 곡을 연주할 때 느끼는 매력. 괜히 겉모습과 달리 속이 넓고 따뜻한 사람처럼 보이는 게 반전매력은 마법 같다. 가수보다 부족한 실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SNS에 일소라(일반인들의 소름 돋는 라이브)가 인기 있는 이유도 비슷한 맥락이 아닐까.
박치도 드럼을 칠 수 있을까?
나는 최근 몇 년 간 교회를 꾸준히 다니고 있다. 가끔 피곤해서 늦잠을 자거나 누워서 유튜브를 보고 싶은 생각이 들더라도 교회를 매주 가는 이유에는 신앙심도 있지만 찬양팀의 영향이 크다. 찬양 시간마다 찬양팀의 드러머가 나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다. 어찌나 드럼을 잘 치는지 볼 때마다 멋있기도 하며, 드럼을 배워야겠다고 다짐하게 한다. 드럼을 힘껏 연주하면 받은 스트레스로 꽉 막힌 가슴이 뻥 뚫릴 것 같으며, 무엇보다도 연주하는 순간이 즐거울 것 같다.
그래서 계속해서 미루고 미루다 마침내 드럼 학원을 다니기로 결심했다. 물론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원인을 모르겠지만 나는 평균보다 박자 감각이 떨어지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노래방에서 노래 부르거나 기타 연습을 할 때 항상 박자가 무너져서 고전했다. 마디와 마디 사이 쉬었다 다시 들어가는 타이밍을 놓쳐 귀가 빨개진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이런 내가 어딘가 이상한 나만의 리듬으로 연주하면 지나가는 학원생들이 비웃을까 걱정됐다.
박치가 노력으로 뛰어난 뮤지션이 되기는 힘들지만 일반 드러머정도는 될 수 있다. 내가 한 것은 주 2회 빼먹지 않고 학원을 가고, 하루정도 개인 연습한 것이다. 물론 일반인보다 배우는데 오래 걸리지만 역시 노력은 배신하지 않았고, 이번 일로 꾸준함으로 안 되는 것은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경험했다. 고작 드럼 치는 것 가지고 왜 호들갑이냐 할 수 있지만, 박치들에게는 큰 성취다.
아직 시작한 지 오래되지 않아 쉬운 곡만 연주할 수 있다. 그럼에도 완주할 수 있는 곡이 하나 둘 생기는 것이 신기하고 뿌듯하다. 드럼을 배우고 일어난 변화는 노래를 들으면 이전 보다 타악기 소리가 잘 들는 것이다. 같은 곡을 듣더라도 타악기 소리에 집중하며 듣는 음악은 또 다른 관점의 감상을 가능하게 해 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 마음속 스트레스의 출구가 생겼다.학교에서 받은 스트레스, 인간관계로 인한 스트레스, 앞으로 어떻게 살지에 대한 고민 등 나를 괴롭히는 잡념들은 드럼 스틱을 잡는 동안 사라진다. 오직 음악에 맞게 정확히 연주할 때 느끼는 희열감과 시원한 타격감만이 내 머릿속을 꽉 채운다.
친구 중에서도 정말 친한 친구는 내 아픔에 공감해 주고, 기쁨을 축하해 준다. 힘들 때, 기쁠 때, 슬플 때 나는 내 기분에 맞는 음악을 찾는다. 노래를 부르고, 듣고, 연주하는 것은 항상 내 편인 친구와 이야기하는 느낌이다.
드럼을 배워보니 악기를 배우는 것이 별 것 아님을 깨닫게 됐다. 단지 시간과 노력을 꾸준히 투자할 수 있는 '끈기'가 필요할 뿐이다. 드럼 실력이 어느 정도 향상하면 피아노를 배워보고 싶다. 학교 수업시간에 컴퓨터로 음원만 틀어주는 선생님이 아닌, 직접 교실에 있는 피아노로 반주해 주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 수업시간에 직접 반주를 해주면, 분명히 한 명이라도 더 흥미를 느끼고 집중해서 수업에 참여할 것이라 믿는다. 이전에는 새로운 악기에 도전한다는 두려움이 날 가로막았지만, 이제는 도전이 가져다주는 설렘이 발걸음을 재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