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은 바람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린다. 그렇지만 그 심지는 흔들리지 않는다. 그렇게 끝까지 타고서야 촛불은 꺼진다.
금방 꺼질 것처럼 나부끼지만 그 중심은 흔들리지 않는 것.
그런 촛불과 같은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모든 걸 완벽하게 할 수 없음을 안다. 그런 사람도 못 된다.
안쓰러운 마음을 내려놓는다. 잘할 거라 믿는다. 그저 고맙게 생각한다. 자기의 자리에서 자신의 일들을 잘 감당하고 있는 각자가 참 대견하다.
요즘 첫째가 하루 한 장씩 푸는 수학문제집을 풀고 있다. 우리 집은 내가 학교 숙제 외의 기타 문제집은 잘 권하지 않는다. 아니, 권해봤는데 몇 번 풀고 안 하길래 아예 그냥 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학교에서도 숙제로 수학 학습지를 한 장씩 내주시는 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
그런데 문제집을 사놓긴 했다.(엄마 마음에 혹시라도 도움이 될까 해서였다.ㅎ) 어느 날 문제집을 열더니 그 안에 들어있는 스티커를 다 붙이면 자기가 사고 싶은 걸 살 수 있는지 물어본다. 그래서 흔쾌히 엄마도 돈 모아놓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거 아냐고. 이거 하루하루 꼬박꼬박 빠짐없이 푸는 게 정말 어렵다고 말이다. 그래서 쉽지 않을 거라고 말해주었다.
그날부터 하루하루 문제지를 풀고 스티커나무에 스티커를 붙였다. 졸려서 그냥 쓰러져 잘 것만 같은 얼굴로 문제지 풀고 자야 한다고 끝까지 해놓고 잤다. 물론 밀리기도 했지만 주말에 보충해서 진도를 맞출 계획까지 세워놓는다.
돌발진으로 열이 많이 올랐고, 지금은 열은 내린 상태로 열꽃이 아직 남아있어 등이 간지럽고 따갑다는 둘째. 지난 주말부터 그제, 어제 내내 집에서 쉬었으니, 오늘은 유치원에 가려고 준비를 했다. 아침에 "힘들어, 힘들어." 한다.
오늘하루 더 쉬어야 하나, 어쩌나. 고민에 빠졌다. 조금 등이 따갑고 몸이 힘들긴 해도 열도 내리고 열꽃도 어제보다 많이 나아져서 가도 될 것 같았다.
"오늘은 가자." 그랬더니 이내 슬픈 얼굴이 되었지만, 그동안 많이 쉬었던 걸 아는지라, 알았다고 옷을 입는다.
"힘들어.." 손잡고 유치원 등원차 타고 가는 길 아이가 계속 되뇌인다.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리다.
"그래도 가야지. 대신 엄마가 조금 일찍 데리러 갈게."
그랬더니 언제 데리러 올 거냐고 물어본다.
"점심 맛있게 먹고 이 닦고 나면 데리러 갈게. 그때까지 재밌게 놀아."
손을 흔들며 손가락으로 '1'을 가리킨다. 1시에 오라고.
'그래, 1시!'
그러고 보면 우리 둘째는 뭐든 참 자신의 템포에 따라가는 아이였다. 애기 때는 조리원 목소리 크기 1등 아기였고, 집에 와서는 새벽에 그렇게 안 자고 그 큰 목소리로 울어재꼈다. 그런 아기를 안아 토닥이며 하염없이 달랬다.
둘째 4살 때 처음으로 어린이집에 갔다. 어린이집 가는 길에 안 간다고 1시간을 울고 떼를 썼다. 공원 운동하던 지나가는 할머니가 금쪽이에 나가보라고 하셨었다. 순하게 어린이집 잘만 가는 아이들은 옆으로 슉슉 지나가는데, 우리 둘째는 죽어도 안 가고 싶단다. 그렇게 데려오기도 하고 떼놓기도 하던 1년이 지나고 유치원에 들어가서는 잘 떨어지고 잘 다녔다.
강하게 하면 부러지고, 조금씩 조금씩 해보면서 스스로 즐거움을 찾아가는 아이였던 것이다.
그걸 기다려주는 건 사실 쉽지 않다. 첫째도, 둘째도 기다려줘야 했다. 아이들은 기다려줘야 한다. 그래야 자신이 생각하고 행동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내가 느려서 다행이다. 난 느린 편이라 기다리는 거 참 잘한다.
결혼 전에 친구랑 약속을 했는데 친구가 약속에 늦어도 '그래. 사정이 있겠지. 그동안 나는 내 시간을 가질 수 있으니 더 좋아.'라고 생각하면 그리 화나지 않았다. 내 일도, 남의 일도 사실 이해하지 못할 건 없다고 생각한다.
육아에 그런 생각이 참 도움이 된다. 아이들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그리 화가 나지도, 조바심이 나지도 않는다(항상 그런 건 아니지만).
날씨가 쌀쌀하고 바람이 많이 분다.
바람 앞에 촛불처럼 흔들거리는 하루더라도 심지만큼은 곧기를. 굳은 심지처럼 내면이 단단한 우리 아이들이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