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태양의 꽃 Jan 28. 2023

인정받지 못하는 노동자

나의 에세이 – 주부 10단


 아침 7시부터 업무가 시작된다.

 그리고 밤 10시가 돼서야 모든 업무가 끝나고 일주일에 서너 번은 야근이 밀려온다.

 주말근무는 당연히 존재한다. 365일 중에 보통 쉬는 날 없이 360일 정도는 꼬박 15시간 이상을 일하는 셈이다. 당연히 휴가도 없고 주말도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여금이나 퇴직금, 야근 수당 따위는 전혀 없다. 너무 노곤하고 힘들지만 내가 아니면 무너진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집중하여 하루하루 주어진 임무에 최선을 다 하고 있다. 내가 꼭 해야만 하는 일이기도 하고 나 밖에 할 사람이 없다는 것 또한 안타깝지만 사실이고. 이렇게 나는 많은 노동을 하고 있기에 그만큼의 성취감도 높아야 하는데 최근 나의 이러한 성취감이 무너지고 자존감이 바닥을 치는 일이 벌어졌다.     

 바로 ‘대출’     



 요 며칠 전 급히 돈이 필요해서 여기저기 대출을 알아보았는데 결론은 모두 거절되었다. 왜냐하면 내 직업은 바로 ‘주부’이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무직이고 소득이 없기 때문에 돈을 빌려줄 수 없다는 은행. 급하게 필요했던 돈이기에 나는 여기저기 알아보다 2 금융권에까지 연락을 취해보았지만 그곳에서도 승인은 나지 않았다. 담보도 없고 직업도 없는 나에게 큰돈을, 아니 적은 돈이라도 빌려줄 리 만무했다.      

 참으로 초라하고 수치스러운 순간이었다. 결혼해서 꼬박 10년을 출산과 육아를 반복하며 집‘안’에서 모든 것을 이끌며 살았는데, 내가 그만큼의 노동을 하고도 대우받지 못하는 이 현실이 서글펐다. 아이를 돌봐야 하고 나이는 꽉 차버려 쉽게 취직을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기에 더욱 막막했다. 나의 삶에 있어 지금 나의 위치는 어느 정도일까. 이 한 가지 사건으로만 평가하기엔 일차원적이지만 나는 현재 그다지 좋은 평가는 아니었고 나에 대한 위치가 고작 이것인가, 답답한 마음 더하기 슬픔 그리고 급기야는 분노까지 차올랐다.     

 결론은 사회에서 나의 위치, 나의 직업, 나의 연봉 따위는 0. 최저임금으로 계산을 해보아도 (하루 15시간 x9.620원 x30일) 한 달에 4.329.000원을 버는 셈이거늘. 아무런 증빙이 되지 않아 돈을 빌려줄 수 없다니. 너무 분하고 뭔가 억울한 느낌이었다. 덧붙여하는 말들이 모두 정 대출을 원하면 남편의 소득을 이용하여 대출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남편이라... 내가 필요한 돈이 있더라도 남편에게 허락을 받아 대출 승인을 받아야 한다니. 하지만 그마저도 승인이 날지 안 날지는 확답을 줄 수 없다는 금융권.     


 결혼 후 지금까지 도우미 이모님을 고용해 월급을 드리고 내가 나가 일을 했더라면 나는 급히 돈이 필요한 지금, 스스럼없이 은행 문을 두드렸겠지. 내가 번 돈을 모두 도우미 이모님께 월급으로 드린다고 한들 나는 ‘직업이 있는 주부’였으니까. 하지만 은행을 방문하고 전화를 하는 그 순간에도 많은 용기가 필요했는데 그 두려움을 없애고 용기를 내어 상담을 받아 본 결과는 모두 비참했다.      


 며칠 후, 가계 사정상 필요한 돈이었기에 남편에게 결국 말을 했지만, 남편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 나의 존재가 너무 초라했다. 이 암담한 현실을 받아들이기가 너무 신경질 난다. 나도 사회의 할 일원으로서 결혼 전에는 꽤나 잘 나가는 강사였고 똑똑한 신여성이었는데 지금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나의 노동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렸다. 본인의 아이를 키우고 청소와 빨래를 하고 남편에게 저녁을 차려주는 것. 당연한 것이지 그것을 왜 노동으로 생각하느냐 돈으로 환산하느냐라는 말들이 오가겠지만, 세상에 공짜로 얻어지는 것은 없지 않나. 그런데 왜 내가 하는 노동은 공짜라고 생각하는 것인지.     


 전업주부, 잘해야 본전이고 못하면 마이너스인 사람. 노동은 끝도 없고 퇴근과 휴가도 없지만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직업군. 세 아이의 엄마, 주부생활 10년. 이 세월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린 것 같아 참으로 슬픈 하루였다.


작가의 이전글 거리두기 2단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