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위로'와 사람의 '도리'
마태복음 5장 산상수훈
쉬운말성경, 톰슨주석
<참고>
※성경을 읽을 때는 무조건 '하나님의 마음이 어떠셨을까?', '하나님은 왜 이렇게 하셨을까?'라는 관점에 집중하기!
※오늘 나에게 하시는 말씀은?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는가?
마태복음 5장
1~2절 하루는 예수께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든 걸 보시고 산 위에 올라가 앉으시자 제자들이 몰려들었다.
예수께서 입을 열어 무리들을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3~10절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이여,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입니다.
-슬퍼하는 사람들이여,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입니다.
-온유한 사람들이여,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입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이여, 그들은 배부를 것입니다.
-자비를 베푸는 사람들이여,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자비를 베푸실 것입니다.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이여, 그들은 하나님을 뵐 것입니다.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이여, 그들은 하나님의 자녀라 불릴 것입니다.
-의를 위해 박해를 받는 사람들이여,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입니다.
11~12절 여러분이 나를 따른다는 이유로, 모욕을 당하고 박해를 받고 터무니없는 말로 비난을 받는다면,
오히려 기뻐하고 즐거워하십시오. 여러분이 받을 큰 상이 하늘나라에 마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13~16절 "여러분은 세상의 소금입니다. 소금이 짠맛을 잃어버린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여러분은 세상은 빛입니다.
등잔을 등잔대 위에 얹어놓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와 같이 여러분도 여러분의 빛을 가리지 말고 모든 사람들에게 환히 비추십시오. 여러분의 착한 행실로 하늘에 계신 여러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십시오."
: 성도들이 추구하여야 할 근본적인 일은 이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성실히 감당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다.
: 소금은 가만히 있어서 제게 오는 것에 수동적 역할을 하는 것이라면
빛은 끝없이 찾아가서 능동적으로 비춤으로써 역할을 감당하는 것이다.
빛은 사물을 밝게 해 주거나 드러내주는 역할을 하는데 이와 같이 성도들도 빛 같은 생활로 모범을 보여 이웃에게 복음의 진리를 널리 전파해야 한다.
: 소금은 사용된 후 그 형체를 찾아볼 수 없지만, 기능은 여전히 발휘된다.
이같이 성도들도 눈에 띄지는 않을지라도 세상에서 이웃에게 봉사하는 기능을 감당해야 한다.
17~20절 "율법을 없애러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왔습니다.
아무리 하찮은 계명일지라도 다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것을 어기거나 어기도록 남을 가르치는 사람은 하늘나라에서 가장 작은 사람이 될 것이고,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도록 가르치고 또 율법에 순종하는 사람은 하늘나라에서 큰 사람이라고 대접을 받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바리새파 사람들이나 율법 교사들보다 더 의롭지 못하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 천국은 상대적으로 남보다 나은 자가 들어가는 곳이 아니며
율법의 형식이나 율법을 잘 아는 자가 아니라
율법의 정신을 지키는 자, 그것을 실천하는 자가 들어가는 곳이다.
22절 "형제에게 화를 내는 자는 심판을 받을 것이고, 형제에게 '멍청이'하고 욕하는 자는 법정에 끌려갈 것이며, 또 형제를 저주하는 자는 지옥불에 떨어질 것입니다.
: 예수님은 내적동기가 되는 미움까지 금지하고 계신다.
23~24절 만일 당신이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려고 할 때 당신에게 원한을 품고 있는 형제가 생각나거든
제물을 두고 그를 찾아가 화해한 후 다시 돌아와서 하나님께 제물을 바치도록 하십시오."
: 이는 예배보다 인간관계회복이 더 중하다는 뜻이 아니라 인간관계도 성실하지 않은 자가 어찌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을 할 수 있겠는가 하는 말이다.
30절 "만일 당신의 오른쪽 손이 당신으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하거든 그 손을 찍어서 던져 버리십시오. 차라리 몸의 한 부분을 잃는 것이 온몸이 지옥 불에 떨어지는 것보다 낫습니다."
: 손과 발은 문자 그대로 신체가 아니라 유혹의 도구, 원인, 동기를 가리킨다.
33~36절 "어떠한 맹세도 하지 마십시오. 하늘을 두고 맹세하지 마십시오. 하늘은 하나님의 보좌이기 때문입니다.
땅을 두고도 맹세하지 마십시오. 땅은 하나님의 발판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머리를 두고도 맹세하지 마십시오.
: 맹세를 악용하려는 자들의 교묘한 속임수를 금지하시는 말씀이다.
결코 순수하거나 필요한 경우의 맹세까지 부정하신 것이 아니다.
37절 여러분은 모든 일에 그저 '예!' 할 것은 '예!'하고 말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하고 말하십시오.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그 이상의 말들은 모두 악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 개인으로서의 의견진술과 가치판단이 요구될 때 솔직하고 명쾌한 답변으로 끝내야지, 자신의 이익을 위해 하나님의 권위를 빌어 맹세하려는 동기와 상황, 결과가 모두 죄라는 뜻이다.
38~39절 "모세의 율법에는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라고 쓰여 있지만,
똑같이 앙갚음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만일 당신의 한쪽 뺨을 때리는 사람이 있거든 당신의 다른 뺨도 대주십시오."
: 구약과는 다르게 이 말씀에서는 관용을 베풀어서 사랑으로 그들을 감화시키라고 하신다.
당하고만 있으라는 뜻이 아니다.
복수는 복수를 불러일으키지만
사랑은 사랑을 불러일으켜서 근본적인 해결을 볼 수 있다.
44~45절 "당신의 원수를 사랑하십시오. 당신을 박해하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그래야만 여러분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자녀가 될 것입니다. 하늘 아버지는 어떤 사람이건 똑같이 비를 내려주십니다.
: 예수님은 이 명령을 명하셨고 십자가에 못 박히기까지 실천하셨으니 우리도 최선을 다해 이 명을 지켜야 한다.
46~47절 만일 여러분이 여러분은 사랑하는 사람들만 사랑한다면 여러분에게 무슨 상이 주어지겠습니까?
여러분이 가까운 이웃들하고만 인사하고 지낸다면 남들보다 나은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48절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여러분의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같이 모쪼록 여러분도 완전한 사람이 되십시오."
산상수훈이다!
예수님께서 직접적으로 가르쳐주시는 말씀!
예수님의 설교!
산 위에 계시고 그 주변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제자들과 사람들을 떠올려본다.
사람들 뒤에 서서 설교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본다.
얼마나 좋을까!
정말 성령충만 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으로 태어나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데 예수님은 가르쳐주셨다.
그 가르침이 차갑고 딱딱한 규칙이 아니라
이제껏 받아보지 못했던 사랑의 말씀들이었다.
예수님은 다 알고 계셨다.
사람들 중에는
마음이 가난하고
슬퍼하고
의에 주리고 목말라하고
박해를 받거나 모욕을 당하고 억울하게 한 것 없이 비난을 받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그래서 '위로'로 시작하셨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악에 시달린 사람들에게는 주님의 사랑만이 치료제라고 하신다.
또 주님 말씀을 지키려는
자비를 베푸는 자들
평화를 이루려는 자들
마음을 깨끗하게 지키려는 자들에게는 상이 있다고 하신다.
최근 이 팔복을 묵상하면서 위로를 받았다.
마음이 가난해졌는데, 마음이 가난해지면 천국이 그들의 것이라는 말씀에 괜히 차분해졌다.
또 목마를 때도 배부를 것이라고 하셨고
평화를 이루려고 애쓸 때도 하나님의 자녀라고 불릴 것이라 하셨다.
희망을 주신다.
목이 마르면 마른 대로 살아라
슬프면 시간 지나면 괜찮아진다
평화를 이루려 괜히 힘 빼지 말고 네 개인시간이나 챙겨라
이렇게 흘러갔다면 마음이 더더더 안 좋았을 것 같다.
사랑을 주시는 주님이 계시기에 지금은 힘들어도 말씀으로 힘이 난다.
진짜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
주석을 읽으니
소금은 사용된 후에 사라지지만 그 기능은 남아 맛을 다한다고 한다.
대게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나 다 보게끔 일부러 경건한 척하는 사람보다
조용히 자리에 앉아 주님께 예배드리거나
이름 없이 봉사하시는 분들이 빛과 소금이시다!
멋지다!
19절을 읽다가
하늘나라에서 큰 사람이 되려면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하거나 지키도록 가르치는 사람이라고 한다.
구약 예언자들은 다 큰 사람이겠지!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천국 가서 큰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보고 싶다.
나는 어떤 사람일까?
중간사람?!
두둥~
22절에 형제에게 화내거나 욕하거나 저주하면
심판받고 법정에 끌려가고 지옥불에 떨어진다고 한다.
하아~
옛 자아는 이미 지옥불에 떨어지고도 남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님께서 살려주시지 않았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화내지 말고 욕하지 말고 저주하지 말자!
온유한 사람이 되자!
화날 것 같으면 평소에 조용히 감정이 태도가 되지 않도록 자신의 마음을 제어하며 말해야 하겠다!
34절에서 37절에,
맹세는 무조건 안 되는 줄 알았더니
배경이 악용하는 자들 때문에 이 말씀이 있다고 했다.
순수한 목적이나 필요할 경우는 해도 된다고 쓰여있다.
그럼 올바른 맹세의 예시는 무엇일까?
궁금!
44절에서 48절에,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기란 쉽지가 않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죽기까지 모범을 보이셨기 때문에 할 말이 없다.
하나님은 신이니까 당연히 완전하신데
사람이 어떻게 완전해질까?
완전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하고
완전하신 하나님과의 소통을 쉬지 말고 하면 된다!
그리고 모든 사람을 인내와 사랑으로 대하라고 하셨으니 그러면 된다.
또 용서가 안돼도 매일 용서한다고 말로 선포를 하다 보면 된다.
실천부터 해보면 된다.
어느 순간부터 그 사람의 연약한 점이 불쌍해 보인다.
(물론 나 자신도 연약한 점이 있지만!)
주님은 연약한 부분을 들어 쓰시니 나도 주님을 닮기 위해서 상대방의 연약한 부분을 귀하게 여길 수밖에 없다.
그 연약한 부분으로 내 모난 곳을 다듬으시려고 쓰시거나
그 사람이 스스로 자신의 연약함을 깨닫고 회개하게 하려고 쓰셨거나
기타 등등
내가 생각지 못하는 하나님의 일들이 있기 때문에 주님의 동기와 이유는 몰라도
나에게 불편함을 준 그 연약한 사람을 마음으로 떠올려서 입 밖으로 내뱉는 작업을 매일 주님 앞에서 하다 보면,
내 마음이 치유도 되고 내 자신이 어느 순간 온유하게 변화되어 있다.
이건 말로 설명을 다 할 수 없는 부분이다.
체험해 봐야 안다.
그렇다고 내가 완전히 온유한 사람은 아니다.
노력 중에 몇 번 맛을 봐서 기록하는 것이지 아니면 안 했다.
아 그리고 8절을 읽고,
요즘 주님 얼굴을 계속 구하고 있는데 성령 받았던 초기처럼 안 보여주시니까,
내 마음이 더럽나 싶었다.
주님은 계속 보여주고 싶어 하시는데
내가 자꾸 더럽혀서 답답해하시지 않으실까 싶다.
물론 주님은 나의 이런 상태에도 불구하고 보여주실 수 있으시지만
그래도 나를 위해 그러시는 걸 안다!
할렐루야!
나중에 천국에 가면 예수님 설교 꼭 직접 듣고 싶습니다!
저도 주님말씀 듣는 무리들 중에 1인이 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