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의 힘듦을 간과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열왕기상 19장 9절~
엘리야는 바알선지자들 앞에서 당당할 때는 언제고 이세벨이 죽인다는 소리에 두려워하며 주님께 죽여달라는 기도를 하고는 굴 속으로 피해 있었다.
주님께서 다 아실 텐데 '여기에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라고 두 번이나 물어보셨다.
그런데 갑자기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고 숨어있을 때 주님께서 모르는 척하시며 물어보셨던 장면이 떠올랐다.
엘리야는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두려워하는 죄를 지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죄로 인해 숨어서 주님께서 물어보실 때 이세벨일당이 자신을 죽일 거라는 얘기만 반복해서 주님께 말씀드렸다.
잘은 모르겠지만
주님께서는 11절에서 직접 자연을 통해 거칠게 움직이시기도 하고
또 12절에서 부드럽게 속삭이는 음성을 들려주시기도 했지만,
엘리야의 반응이 같은 걸로 보아
엘리야는 두려움에 잠식돼서 판단하는 기능이 고장 난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주님은 이런 엘리야를 질책하지 않으시고
앞으로 남은 사역을 알려주시면서
신앙을 지킨 사람들이 얼마나 있는지 알려주었고
또 엘리사를 후임으로 정해주셨다.
주님은 자녀가 죄를 지었다고 해서 무작정 혼내시는 분이 아니시다.
그 죄를 지은 동기를 살펴보시고
그 연약함을 격려해 주시면서 해결해 주신다.
나는 왜 이 말씀에 꽂혔을까?
뭔가 잘해보려고 했지만 잘 안 돼서 낙심에 빠지거나 앞이 보이지 않을 때,
또는 대화를 나누기 전에 속으로 말로 죄짓지 말자고 다짐하고 대화 중에도 애쓰려고 했지만 결국은 말로 죄를 지은 것 같아서 죄책감이 들 때,
기타 등등의 상황일 때면 이렇게나 쓸모가 없는데 주님은 왜 나를 살아가게 하셨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식욕도 사라지고
앞뒤 생각할 겨를도 사라진다.
피곤과 두려움에 휩싸인 엘리야처럼 뭘 판단해 볼 틈도 없이,
뭐 때문에 내가 이렇게 힘든지의 '원인'만 바라보게 된다.
원래는 주님을 바라보며 힘든 걸 다 맡기고 의지해야 맞는데,
주님을 바라보지 않고 문제라 생각하는 원인만 바라보고 있으니 거기에 갇히게 되면서 '삶의 이유를 모르겠는 단계'까지 가버리는 것 같다.
내가 주님이라면 엘리야에게
'일단은 내가 이세벨 막아줄 테니까 푹 쉬어. 기운 차리고 나서 다시 일하자고!'라고까지만 할 것 같다.
엘리야처럼 신뢰가 가는 예언자가 없으니 다른 예언자를 키워서 쓰기보다는 엘리야를 계속 쓰고 싶은 마음에!
또 엘리야가 잠시 힘들어서 그런다고만 생각할 것 같다.
하지만 주님은 엘리야의 마음속 깊은 곳까지 꿰뚫어 보셔서 엘리야를 위해 후임을 지정해 주셨다.
남은 사역을 알려주셨지만 무조건 그 이상으로 하라고 억지로 강압적으로 배려 없이 맡기지 않으셨다.
이 글을 잘 쓰고 있는 게 맞는지 모르겠으나
결론은 주님은 자녀의 힘듦을 그냥 지나치시지 않는다는 거~
무조건 오구오구 하시는 분이 아니시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오버해서 감당하라고 압제하시는 분도 아니시다.
각 자녀에 따라 주어진 사명을 끝까지 할 수 있게 도와주시고 인격적으로 말씀해 주신다.
또 힘듦에 대한 대책도 다 마련해 주신다.
어떻게 뭘 해야 할지 다 알려주신다.
엘리야처럼 주님과의 일대일 만남을 통해
주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고 있을 때 알려주신다.
그러니 주님은 나의 힘듦도 아신다.
죄를 지었어도 주님 안에 있으려는 마음을 아시고 불쌍히 여겨주시기에
문제에 대한 해결도 이미 다 준비하고 계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