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해마다 추석이 가까워지는 이맘때면 서울에 거주하는 친구 부모 묘소의 벌초 작업을 합니다. 친구의 간절한 부탁이기도 하지만 본인이 자청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5년 조금 넘은 것 같습니다. 저의 집과 약 3킬로 정도 떨어진 고향 야산에 어머니를 모셨습니다. 장례를 마친 두 형제는 거주하는 서울로 돌아가고, 사후의 부모님만 쓸쓸하게 고향을 지키게 된 셈이지요.
며칠 후 봉분의 잔디가 자리를 잡기도 전에 비가 하루 종일 하염없이 내렸습니다. 비가 우두둑거리기 시작하자, 밥을 먹고 있던 남편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주섬주섬 작업복으로 갈아입기 시작했습니다. 무슨 영문인지 몰라 두리 번거리는 저에게 잠깐 다녀올 때가 있다는 말을 던지며 훅 나가버립니다.
불과 몇 초 되지 않은 시간에 번개같이 나가버린 남편을 베란다로 나가 우두커니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밥을 먹다가 젓가락을 입에 문 체로 말이죠. 약 한 시간 후에 돌아온 남편은 말합니다. 친구 어머니의 묘소가 걱정되어 봉분을 비닐로 덮으려고 뛰어나갔다가 온 것이라고요.
그의 어머니 묘소에 가는 동안 친구 어머니 묘소를 내 부모 묘소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땅꼬마 때부터 떼굴거리며 엉키고 놀았던 친구이기에 그런 생각이 들었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어울렸던 어릴 적 친구들은 청소년기를 지나면서 어려움을 나누고, 어떻게 성장하고 극복하고 성공했는지 투명하게 지켜보았기에 서로가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각자 가족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다섯 가족이 40년이 넘도록 끈끈하게 우정을 다져가고 있는 모임의 한 사람입니다. 그중에서 유일하게 고향에서 똑 부러지게 자리를 잡은 남편은 친구 일을 내 일처럼 생각했을 겁니다. 그는 그 일로 남편에게 늘 애정과 고마움을 표시합니다.
멀리 있어도 친구가 있기에 어머니의 묘소 관리를 그나마 안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벌초가 생각만큼 만만치는 않아 보입니다. 워낙 일보다 봉사로 즐기는 사람이다 보니 스스럼없이 힘든 줄 모르고 하지 싶습니다. 해마다 절에 올라가는 2킬로 남짓 산사길과 도량 제초 작업하는 것을 거르지 않는 것을 보면요.
저와 남편은 이번 그의 어머니 묘소 벌초 작업하기 전에 은근히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작년에는 말벌 떼에게 쏘여서 엄청나게 고생한 것은 물론이지만, 그럼에도 마무리 작업 내내 약을 뿌려가며 겨우 마칠 수 있었습니다. 다행히 종아리와 팔에 물려 더 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곧 퉁퉁 부어오른 손등을 보니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호기심에 쭐레쭐레 따라오지 않았다면 남편이 어찌 될지도 몰랐을 일입니다.
“봉사도 싫고 수고비도 필요 없으니 인제 그만!”
눈물 찍어내며 소리 지르던 때가 벌써 1년이 지났습니다. 그 후 봉사하겠다는 남편에게 도저히 미안해서 안 되겠다는 친구의 말을 뿌리치지 못하고 액수와 상관없이 수고료를 받기로 했습니다. 남편은 또다시 주섬주섬 장비들을 챙깁니다. 그러는 남편이 걱정되어서 또 따라나서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제부터는 벌초할 때 꼭 내가 보조할게. 그 대신 수고료는 반타작!”
벌이 더 크게 공격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뿌리는 약을 두 통이나 준비해서 마구마구 뿌릴 생각이었습니다. 남편도 잔뜩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했습니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잔뜩 웅크리고 있다가 사정없이 단체로 몰려와 쏘아대던 그 두려운 존재들이 다 어디로 갔는지 흔적만 덩그러니 둔 채 떠나버렸습니다.
생각보다 어려움 없이 무사히 벌초를 즐겁게 마쳤습니다. 남편의 제초기 칼날 소리가 한적한 야산의 고요를 흔들어 깨우고, 금세 정갈한 모습으로 단장을 마쳤습니다. 일 년에 한 번이지만 형제들이 모여서 시간을 잡아서 벌초하는 일이 쉽지는 않을 겁니다. 그렇지만 친구의 어머니는 어려운 부탁을 마다하지 않고 알아서 챙기는 아들 친구의 정성이 대견스러우셨을 겁니다.
요즘은 부모님 제사를 생략하는 추세입니다. 벌초하는 일은 물론이고요. 이 일은 남의 집일 뿐만 아니라 내 일이 기도 합니다. 저희도 시댁 할머니 묘소를 돌보고 있습니다. 적을 두고 있는 절을 오르는 길목에 자리 잡은 묘소는 남편이 오가며 돌봅니다.
항상 파릇파릇하게 자리 잡은 잔디가 예쁘고 사랑스럽게 잘 자라고 있어서 절에 오갈 때면 기분이 좋습니다. 사람들을 지나는 길에 다시 한번 힐끔 쳐다보게 하지요. 어쩌면 그런 부담감이 정성껏 돌보게 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좋습니다. 할머니께서 늘 지켜주실 거라 믿기 때문이지요.
그런 부모의 마음을 알아주어선지 고향 밖에서 근무하고 있는 저의 아들은 걱정하지 말라고 합니다. 아버지가 하시는 일을 물려받아 자신이 할거라고요. 나중에 어떻게 할지 모르겠지만, 말만 들어도 기특하고 기분 좋은 말입니다.
벌초를 마치고, 남편과 함께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맛나게 점심을 먹었습니다. 식사를 마치자마자 친구에게 전화합니다.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푸하핫 웃어가면서 주거니 받거니 합니다. 그런 남편의 모습에서 벌초하느라 애쓴 노고를, 웃음을 타고 훨훨 날려 보내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친구의 우정과 함께 오래오래 건강하길 바라면서 남편에게 편지 쓰듯 하루를 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