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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남편은 항암 치료 중입니다. 2

by 마리혜


그녀의 남편은 항암 3차 치료를 하루 앞두고 있습니다. 전립선에 약간의 치료가 필요한 것 외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들었던 건 약 3개월 전의 일입니다.


평소에 병원 가는 일이 잦지 않았던 남편이 2주에 한 번 서울 병원으로 가는 것이 약간 수상쩍긴 해도, 증세가 호전되고 있어서 별다른 의심은 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젊어서부터 각처에 흩어져 있는 친구가 보고 싶으면 언제든 훌쩍 다녀온다거나, 전국 각지의 친구 애경사는 발 벗고 나서는 분이라 그 또한 병원 핑계쯤으로 생각했었다고 합니다.


심지어 잘 나갈 때 가마니로 가져간 쌀값은 갚을 생각하지 않고 시치미 떼던 친구가, 어느 날 형편이 어려워졌다는 소식에 정미소에 쌓아둔 쌀자루를 들고 서울로 달려갔던 분이니, 아내로서는 충분히 그리 생각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힘이 있는 젊은 시절은 방랑객처럼 유유자적하던 그녀의 남편이 몸이 병들어 허약해진 모습을 보면서 인생의 무상함을 느낍니다. 그 당당함은 영원할 것으로 생각했는지요. 아마 그렇지는 않았을 겁니다.


죽음 앞에선 누구든 장사 없죠. 단지 먼 미래의 일이지 가까이 코앞에 닥치리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장밋빛 인생을 누구든 다 보장해 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을 땐 이미 늦었다는 것을요.


그래서 우리는 마치 영원을 살 것처럼 하다가 세월 앞에 겸손함을 잃게 됩니다. ‘아차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 하고 말이죠. 그녀의 남편은 3개월 동안 홀로 품고 있다가 병을 키웠습니다. 몸도 마음도 약해진 후에야 결국 힘없이 그녀에게 안겼습니다.


자연의 순리 앞에서 처절하게 무너진 그녀의 남편을 봅니다. 읍내에서 떵떵거리는 집이라고 시집왔어도, 어린 서울 새댁이 호강은커녕 시집살이 굴레에서 겨우 벗어나 이제 제대로 숨을 쉬어 보는데요. 그녀의 남편은 아내에게 틈을 주지 않는군요.


서럽게 울고 싶은 눈물도, 움켜쥐고 쥐어뜯고 싶은 가슴도 오래 잡고 있을 수만은 없게 했습니다. 야속한 남편이었어도 지금에 와보니 예순의 인생 여정에 그래도 사랑이 더 컸음을요. 눈물로 보낸 세월이 정으로 쌓여 사랑으로 응고되었나 봅니다.


그녀는 남편 간호하려는 의지가 결연해 보입니다. 감춘 3개월을 만회하기라도 하는 듯 남편의 항암 소식을 듣고서 모든 식생활을 항암 식품으로 바꾸었습니다. 홀로 감수하고 보낸 3개월 동안 뿌리치지 못한 최악의 기호식품인 담배와 딱 한 잔의 술이 그녀의 남편을 힘없이 무너지게 했기 때문이지요.


자연 치유 요양원 내의 시설물에는 항암 식품과 유기농 식품으로 가득 차 있고, 종류도 무척 다양했습니다. 암 환우 가족은 물론이고, 유기농 식품을 선호하는 분들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곳이더군요.


그녀의 장바구니에는 항암 식품과 유기농 식품으로 가득 채워졌습니다. 스틱으로 포장된 들기름을 비롯 채수 팩 등 간호인의 수고를 덜어주는 식품들로 가득찼습니다. 일반 마트라면 주춤하게 만들 어묵 종류도 이곳에서는 항암식품으로 만날 수 있는 것도 신기할 정도로 다양했습니다.


"그래, 이제는 좋은 것만 먹어보자. "

친구와 나는 서로 눈을 맞추고 불빛 교환을 합니다. 가끔 친구와 마트에 함께 가서 짠지같이 장 보던 습관은 이곳에서는 무장해제가 되고 말았습니다. 옆에 있던 저도 덩달아 마음을 굳힙니다. 이참에 그동안 남편에게 더 잘해주지 못했던 밥상 문화를 조금 바꿔보기로 합니다.


친구는 마음이 힘들 때 혼자라면 이곳까지 오기 힘들었을 텐데 함께 와줘서 고맙다는 말을 하네요. 아닙니다. 그 반대라도 친구는 기꺼이 함께해 주었을 겁니다.


친구와 나는 함께 또 항암 식품과 유기농 식품으로 가득한 마트로 장 보러 갈 거예요. 선호해서라기보다는 함께 하는 마음이 더 큽니다. 남편을 위해 정성을 다하는 친구와 함께 장보기 하면서 그녀가 사는 것 나도 사서 만들어 먹고 싶어요.


그녀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고 싶어요. 함께 해서 그녀의 마음이 편하면 남편이 먹는 먹거리가 좋은 에너지로 전해질 거라는 아주 작은 희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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