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밤이 깊어 갈수록 어둠이 짙어갑니다. 창문틀에 턱을 괴고 길 건너 펼쳐진 먼 풍경을 바라보고 있으려니까 30여 년의 일기장이 필름처럼 지나갑니다.
지금 살고 있는 곳에 입주한 지 만 31년이 됩니다. 눈 감았다가 뜨니 어느새 세월이 훌쩍 지나 어제 일 같습니다. 그때만 해도 창문 너머 보이는 밤 풍경은 칠흑 같은 어두움뿐이었어요. 간간이 지나가는 자동차 소리만 겨우 생존을 알리는 듯했어요.
읍내까지 걸어서 불과 10분도 채 안 되는 거리임에도, 창가에 서면 어둠을 받아들이는 감정이 가까운 시내와 많이 달랐습니다. 멀리 툭 던져져서 마치 어둠에 갇혀 버린 것처럼요.
밤이 깊고 어둠이 짙어질수록 공허하고 외로울 때가 많았어요. 손을 내밀어 잡을 수 있는 건 어둠뿐이었으니까요. 시골살이의 소박한 일상에 밤이 되면 사르륵 파고드는 어둠을 가장한 고독이라는 정체.
몇 년간 지속되었어요. 사실 그 이유는 어른이 되도록 부모님을 떠나본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죠. 익숙하지 않았어요. 아이들이 초등학교 들어갈 때까지도 익숙해지기가 어려웠었나 봅니다.
어둠이 처량해지면 자주 찾아뵐 수 없는 연세 드신 부모님이 떠올랐어요. 지금이라면 언제든 자동차 타고 냉큼 달려갈 텐데 말이에요. 그리고 조금더 잘할 수 있을텐데요.
너무 멀어서, 내 살기 급급해서. 이런저런 핑계가 지금까지 멍으로 남아 그리움을 더 키웁니다. 부모 마음은 제 자식을 키워봐야 안다고 어른들이 말씀하시지요. 특히 힘들 때 더 그립습니다.
부모님을 향한 마음이 머리에 늘 있어도, 가슴은 내 자식에만 있었으니 좋을 때보다 힘들 때 더 많이 느끼게 되니까요.
지금처럼 아이들이 독립한 지 오래되어도, 이 분위기가 익숙한 듯해도 그렇지 않을 때도 많습니다. 이젠 TV 속 스포츠 경기 관객과 남편의 환호성만이 생존 신호처럼 느껴져요.
오늘처럼 가을밤이 깊어지고 창밖의 어둠은 칠흑같이 갇혀있는데요. 창문 너머 펼쳐진 풍경이 30년 전과 많이 달라졌지만, 부모님을 그리는 마음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한결같습니다.
그때의 엄마 나이가 된 딸의 가슴속에 자리한 그리움이 점점 더 무겁게 느껴집니다. 똑같은 자리. 창밖과 어둠과 그리움이 비슷할 거로 생각했는데 말입니다.
그날은 마치 어제였고요. 오늘은 찰나를 건너 지금처럼 느껴집니다. 손이 많이 타던 아들은 유치원과 초등학교 입학하면서 세 살 터울 누나들 손잡고 학교 가는 모습을 창가에서 지켜보았어요.
어느 날 우리 집보다 더 시골 산 밑까지 걸어가야 하는 친구를 멈춰 세우고, 차비를 쥐어서 보내달라고 부탁하던 어린 아들의 모습도 아련합니다.
연년생 딸들이 줄넘기하고 숨바꼭질하면서 남동생을 놀리고 애태우게 하던 모습들도 뭉클하게 다가옵니다.
30년 동안 한곳에서 살면서 많은 일들을 무탈하게 보냈습니다.
딸들도 예쁘게 잘 자라서 듬직한 사위들의 사랑을 받고 잘 살고 있어요. 손주들을 순풍순풍하게 잘 낳아서 기쁨을 주고 있으니까요.
잠시 눈 감고 뜬 것처럼 잠깐의 세월 속에 많이도 변하고 달라졌어요. 치열하게 앞만 보고 달려왔던 시간을 창가에 기대어 그려보네요.
엄마는 그때도 오직! 멀리서 지내는 딸을 위해 기도를 멈추지 않는다고 늘 말씀하셨어요. 딸을 향한 그리움의 표현이었나봅니다. 늘 든든했어요. 오늘 따라 엄마가 더 많이 그립네요. 보고싶어요.
멀리 네온사인 불빛이 무거운 듯 어둠 속으로 뚝뚝 털어냅니다. 엄마의 나이가 된 딸이, 같은 마음으로 자식을 지켜보았을 엄마를 생각하면서 어둠을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