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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없는박영감 Jul 15. 2024

흘려보내는 맛

2024년 07월 둘째 주

창문을 열어도 될는지... (Do You Mind If I Open The Window...)


    안녕하세요. '철없는박영감'입니다. 남쪽에는 역대급 호우에 몸살을 앓고, 수도권에는 역대급 폭염에 몸살을 앓았던 주말이었습니다. 비 피해 없으시고, 건강 잘 챙기고 계신지요. 제가 사는 의정부도 주말에 꽤 더웠는데요. 다행히 습도는 아직 57% 정도로 높지 않아서 에어컨은 가동하고 있지 않습니다. 너무 더워서 밖에 나갈 엄두는 나지 않고, 부모님은 어떻게 계신가 안부전화를 했더니 본가는 벌써 에어컨을 틀었네요.


    더위에 지치기도 하고, 월요일이 복날이기도 해서 치킨이라도 사다 먹을까 하고 포장주문하러 집 근처 가게에 갔더니, 사장님 없이 홀로 매장을 지키고 있는 아르바이트생이 지금 주문되냐고 묻는 질문에 재료가 준비 안된 데다, 사장님이 아직 안 오셔서 언제 오픈할지 자기도 모르겠다고 하네요. 흐흐흐 12시 30분이면 점심시간이라서 앞 선 주문들 때문에 더운데 한참 기다려야 하는 거 아닌지... 되려 걱정했는데, 쓸데없는 걱정이었습니다.


    하긴 요즘은 일요일, 공휴일에 노는 가게가 더 많더라고요. 예전 같지 않습니다. 어쩌면 저녁 장사한다고, 늦게 열고 늦게 닫는 가게였을 수도 있겠네요. 그러고 보면 예전에는 이 정도 날씨에는 창문 활짝 열고, 수박 쪼개먹고, 아이스크림 사다 먹고, 찬물 뒤집어쓰면서 지냈던 것 같은데... 언제부턴가 에어컨을 틀고는 춥다고 카디건을 가지고 다녀야 하는 이상한 세상이 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에어컨을 안 틀고 창문을 열어놓고 살다 보니 역시나 소음이 먼저 거슬립니다. 집 옆에는 수영장 수업을 마치신 할머니들이 모여서 두런두런 대화도 나누고, 나이 지긋한 노신사들이 여기저기 참견하면서 시간 죽이는 벤치가 줄지어 놓여있는데요. 처음 이사 왔을 땐 그렇게 신경 쓰이더니 이제는 그곳에서 들려오는 (정확히 내용은 모르지만, 말하는 뉘앙스에서 느껴지는 감정) 소리가 정겹습니다.


    가끔 글을 쓰면서 제가 정서적으로 약한 부분 (분노, 노발대발 같은...)에서 도움을 받기도 합니다. 아~ 그런데 밤이 깊어지면, 열대야에 밤잠을 설쳐서 외식이나 하자며 술 한 잔 걸치고 들어가는 가족들이 많은지... 부부싸움이 매일같이 벌어집니다. 사실 부부인지 오누이인지는 정확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꼭 남자 한 명, 여자 한 명 이렇게 싸움이 납니다. 여기도 젠더갈등이? 크크크


    나이대는 정말 다양합니다. 한 가지 공통점은 남자가 큰 소리로 버럭 한 마디 하면, 그 뒤로 여자가 왜 소리를 지르냐며 따지고 듭니다. 되로 주고, 말로 받는 경우가 십중팔구입니다. 본전도 못 찾고 여자 혼자 화내는 소리가 멀어지면, 이번에는 배달 오토바이가 풍풍풍 소음기가 망가졌는지 어마어마한 굉음을 내며 나타납니다. 뭐 이쯤 되면 잠은 다 잔 겁니다.


    새벽 1~2시에 이렇게 잠이 깨면, 보통 4~5시까지 잠 못 들다가 그대로 일어나는 경우가 부지기수입니다. 주말에는 더 심하고요. 뭐 그래도... 다들 이 더위에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발버둥 치고 있다는 측은지심으로 흘려보냅니다. 또 한 가지, 얼마 전까지는 담배연기 때문에 너무 괴로웠는데요. '이 더위에 담배가 피고 싶은가?'라는 의문도 들지만, 담배도 참 못 끊어내는 것 중에 하나인 것을 알기에... 측은지심이...


    처음엔 담배연기 냄새가 난다 싶으면 신경질이 확 나서, 창문으로 도대체 어떤 X가 담배연기를 내뿜고 있나 눈에 쌍심지를 켜고 찾았는데요. 음... 안 뜨이는 것으로 봐서는 저 멀리서 바람 타고 날아온 담배연기가 아닌가 추측해 봅니다. 제가 좀 예민하기도 하고요. 그렇게 담배냄새가 난다 싶으면 창문을 닫고 환풍기를 돌렸는데요. 계속 반복되다 보니 문 닫고 환풍기를 돌리는 것보다. 그냥 잠깐 참고 그대로 창문 열어둔 채로 흘려보내는 게 더 낫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아무리 환풍기를 틀었다 해도, 창문을 닫으면 집으로 들어온 담배연기를 가둬놓고 다 마시는 꼴이 되는 것 같더라고요. 대신 창문을 연 채로, 잠깐 냄새 맡고 좀 참고 흘려보내면 소음처럼 금방 잠잠해지더군요. 그리고 그 정도로 지나가는 담배냄새면 조금 마셔도 건강에는 아무 문제도 없겠다는 생각에 이제는 대수롭지 않게 넘깁니다. 다만 흡연가 본인들이야 2~30분 잠깐 나와서 피우는 거지만, 이 분들이 바통 터지 하듯 연이어 피워대는 통에 계속 냄새가 집에 들어오면 이때는 하는 수 없이 문을 닫고 환풍기를 틀어놓고 양산을 꺼내 들고 에어컨 바람 시원한 마트로 장 보러 갑니다. 피하는 게 상책인 거죠. 흐흐흐


마음을 열어도 될는지...


    이렇게 주변에서 일어나는 불편한 일들을 흘려보내며 잘 살고 있는데... 지난 주말에는 갑자기 마음속에 하나가 꽉 막히는 일이 있었습니다. TV를 보고 있는데, 출연자 중 한 명에게서 '느낌이 누구를 닮았는데...'라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습니다. '누구지? 누구였지?' 한참을 생각하다가, '심술보가 축 늘어진 게 회사 관두기 전에 가장 무례했던 사람이랑 똑같네'라고 형광등이 팍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희한하게 이름은 생각이 안 나더라고요.


    그래서 '아~ 그 X도 잘 흘려보냈나 보다'하고 안심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은 잘 흘려보내는데,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일은 아직 잘 흘려보내지 못하는 가 봅니다. 아니면 수련이 부족하던가... 이름이 생각이 안 난다는 사실에 꽂혀서, 이름을 떠올리기 싫은 마음과 이름이 뭐였지 궁금해서 답답한 마음이 복잡하게 뒤섞여 제 속을 꽉 막은 겁니다. 참나~ 이것도 이것대로 또 괴롭더라고요.


    생각을 안 해야지, 안 해야지 계속 되뇌어도 자려고 침대에 누워서까지 생각이 나고, 나중에는 '이게 그 무례배에게 지기 싫은 자존심인가?'라고 생각해 봤지만, 그것도 아닌 것 같고... '이럴 바엔 차라리 얼른 떠올리고 답답함을 푸는 게 더 낫겠다' 싶어서 연락처를 뒤져보기도 했습니다. 물론 이미 연락처에서 차단하고 삭제한 지 오래고, 카톡 차단 목록에서조차 보기 싫다고 없앴더라고요. 치... 여전히 애송이 짓만 하고 있었네요.


    주말 내내 이것 때문에 마음이 괴로웠습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 커피를 내리는데 갑자기 생각이 납니다. 그래서 좀 홀가분해졌냐고요? 그럴 리가요? 이름이 떠오르니, 떠오른 대로 기분이 상합니다. 지금은..., 원래 욕을 못하는 성격인데, 속으로 '이 새끼, 저 새끼'하면서 욕을 한 바가지 해주고 있습니다. 그러고 나니 좀 시원하긴 하네요. 어쩌면 이것도 흘려보내는 한 과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커피도 잘 흘려보내야 더 맛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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