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흐흐 생물을 전공하다 보니, 이런 공상을... (6)
적자생존
'진화'하면 '나아갈 進'의 한자 때문인지, 뭔가 진일보된 향상의 의미를 내제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영어 'evolution'도 98년 전국에 PC방 붐을 가져온 '스타크래프트'의 영향인지, Upgrade의 뉘앙스를 풍긴다. 게임에서 'Zerg' 종족을 플레이할 때, 'Evolution Complete'란 멘트가 나오면 유닛의 성능이 향상된다. 이렇게 진화에는 방향성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 방향을 '발전, 향상'으로 많이 오해한다.
그런데 진화론의 거의 창시자격으로 거론되는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에는 이런 '업그레이드, 향상'의 의미보다는 'Pick, 선택'같은 '적자생존'의 의미가 차라리 더 맞다. 게다가 그는 이런 진화의 방향성이라는 오해의 소지를 불러일으켜 자칫 우생학이나 선민사상 같은 잘못된 방향으로 발전하는 것을 매우 우려해서 정확히 '진화, evolution'라는 단어를 쓰지 않았다고 한다. 다만 이런 식으로 기술되어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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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하면 '변화를 동반한 혈통' 정도가 될까? 즉, 혈통으로 계승이 되는 생존에 필요한 변이 정도가 진화의 의미일 것이다. 그럼 '생존에 필요한...'은 누구나 알고 있는 내용일 것이고, '혈통으로 계승되는...'은 무슨 뜻일까? 그렇다 바로 유전이 되어야 비로소 진화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생존에 필요하다고 여기는 지금의 행위들을 보면 과연 유전이 될까?
문명을 세우고, 기술을 발전시키고, 수명을 연장하고... 꼭 이런 거창한 것이 아니라도... 다이어트를 하고, 근육을 키우고, 공부를 하고, 돈을 벌고... 어떤 영화의 시놉시스에는 성년이 되면 전부 성형을 시킨다는 설정도 있던데... 美가 생존의 필수 요소가 된다면... 예쁘고 잘생겨야 살아남는다면... 하지만 유전은 안 되는 저런 것이 진화라고 할 수 있을까? 뭐 다 차치하고서라도 그럼 과연 美의 기준은 뭔가?
잘 아시겠지만, 획득형질은 유전이 되지 않는다. 열심히 공부하면 훈장처럼 생기는 중지의 연필 굳은살은 필기에서 해방되어 10년만 키보드를 껴안고 살아도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아이들이 보고 자라는 게 있으니 계승이 된다고 말씀하시는 분이 있다면 그것은 진화가 아니고, 교육이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아니면 교육이 진정한 진화라고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인간의 꼬리처럼 퇴화되는 것도 있다. 꼬리뼈라는 흔적만 남긴 채... 그럼 우리는 진화한 것인가? 퇴화한 것인가? 결국 전부 돌고 돌아 '허울'이다. 그래서 우리는 영혼의 세계를 상상하고 심취하는지도 모른다.
업보의 무게
이런 공상을 해봤다. 최초의 "The First Cell"이 진화를 거듭하며 인간이 되었다. 그런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라며 마치 전 우주의 지배자처럼 군림하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업보가 쌓이는 과정이 진화이고, 진화의 결과로 받은 벌이 뇌가 무거워지는 형벌이다. 뇌가 크면 클수록, 지능이 높으면 높을수록... 불행해질 이유가 늘어나고, 불행이 행복을 잠식해 버릴 수도 있다. 껍데기는 성장하지만, 핵심은 점점 사라지는... 껍데기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번뇌에서 탈출해 해탈하면 행복해질 텐데~ 그걸 모르고...
아~ 이게 불교철학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