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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없는박영감 Dec 07. 2024

기권

話頭 (1)

기권(棄權) : 명사 투표, 의결, 경기 따위에 참가할 수 있는 권리를 스스로 포기하고 행사하지 아니함.


    기습 비상계엄을 선포한 윤석열 대통령 탄핵안 의결이 진행됐던 국회 본회의장 중계를 지켜보면서 계속 떠오른 낱말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기권'이었습니다. 사전에는 '권리를 스스로 포기하고 행사하지 아니함'이라고 쓰여있네요. 기권의 한자는, 버릴 棄, 권세 權, 권리를 버린다는 뜻입니다. 즉 '포기'나 '내려놓음'의 뜻이 강합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버릴 권리'라는 뜻으로 보였습니다.


    여당의 이번 표결 불참은 기권입니다. 맞습니다. 누구에게나 자신의 권리를 버릴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니 빼앗긴 권리를 회복시킬 권리를 버릴 권리는 더 당연하겠지요? 이런 사람들을 분쟁을 싫어하는 평화주의자라고 하나요? 그래서인지 본회의장을 떠나는 여당 국회의원들의 표정은 아주 떳떳하고 의기양양했습니다. 그런데 평화주의자라서 그런 것은 아닐 겁니다. 기권이 선택지 중에 하나가 된 것이죠. 앞서 말한 '버릴 권리'가 된 것입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꼭 탄핵이 전부는 아니라고, 그리고 이를 저지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뭐! 상대방도 그랬으니 우리도 똑같이 갚아준다는 유치한 반응에는 일일이 반응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비겁했다는 비난은 피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국회의원이 아닌 자연인으로서 기권했다면 괜찮겠지만, 각각이 헌법기관이라는 사실 때문에 이들의 기권은 비난의 대상입니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앞으로 많은 권리를 버리라는 '기권'의 압력이 가해질 것 같습니다.


    사실 저는 이상적인 민주주의의 모습을 꿈꿨습니다. 그런데 그럴 기회조차 없었네요. 이제는 진흙탕 싸움이 될 것 같습니다. 국론은 더 분열되고, 혐오는 더 조장되겠지요. 하지만 늦게라도 본회의장에 돌아와서, 투표는 했지만, 부결을 찍고 나왔다며 울먹이는 여당의원을 봤습니다. 민주주의가 무너지는 것에 안타까워하고, 가슴 아파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에 그나마 위안을 얻습니다.


오늘은 제발 국회의원들끼리 수고했다며 악수하는 일을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사진출처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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