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죽을래도 없다. (마지막)
잘못된 질문은 없다. 옳은 질문이 없을 뿐이다.
요즘 발행하는 글의 대문에 올리는 이미지들은 전부 'Copilot'을 통해 만들고 있다. 인터넷상에서 찾을 수 있는 그림이나 사진들은 저작권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고, '딱! 이거다'하고 마음에 쏙 드는 이미지를 찾기도 힘들었다. 그리고 저작권 문제가 없다는 무료 이미지는 하나같이 그들의 출처를 밝히기 위해 워터마크가, 솔직히 말하면, 보기 싫게 찍혀있었다. 그래서 잘 사용하지 않았다.
초반에는 스마트폰에 저장해 뒀던 사진을 이용했다. 플랫폼 자체기능으로 모자이크 처리도 하고, 편집도 했다. 그런데 역시나 '딱! 이거다'하고 맞아떨어지는 이미지도 없거니와 대부분이 일 관련 증거자료나 인물 사진이 대부분이어서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직접 그려볼까도 생각했다. 브런치스토리에서 활동하는 많은 작가님들이, 화가도, 사진작가도 계셨기 때문에, 직접 그리고 찍은 이미지로 글을 발행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인공지능이 그린 그림이 입선을 했다느니... 기술이 발전하여 입력한 텍스트를 기반으로 이미지를 생성한다느니... 나 같은 사람에게는 솔깃한 뉴스들이 들려왔다. 그리고 마침 랩탑이 고장 나면서 이런 AI기술이 적용된 신제품을 구입해 활용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신기했다. 정해진 답이 아니라, 질문자의 의도를 파악해서 결과를 보여주는 것이, 진짜 사람이 하는 것 같았다.
'Copilot'은 이미지 생성은 하루에 15회까지 무료였고, 그 이후로는 생성은 가능한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나는 빠르게 결과물을 얻겠다는 욕심에 매일매일 AI와 스무고개를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조력자라는 생각으로 대화하듯이 글에 대해 설명도 해보고, 제목도 알려주고, 쓰게 된 계기가 뭐였는지, 어디서 어떻게 영감을 받았는지 등등을 친절하게 알려줬다. 그런데 마음에 드는 이미지는 꼭 무료기회를 다 쓰고 나서야 알려줬다.
이런 게 갑질일까? 나는 어느새 '좀 더, 좀 더', 'Develop, Develop'을 외치고 있었다. 그리고 AI는 진짜 사람 같았다. 요청을 들어주다가 어느 순간 한계가 오면 더 못 도와드릴 것 같다며 포기 선언을 해버렸다. 그런데 이게 왜 이렇게 화딱지가 나는지... 막 따지기 시작했다. 진짜 사람에게 하듯이... '내가 자꾸 요청하는 게 기분이 나쁘냐? 왜 자꾸 틀린 것을 반복하느냐? 아니 빼달라고 한 것을 더 부각하면 어떻게 하냐? 내 말은 듣고 있냐? 나 지금 무시하냐'까지...
그러다가 진짜 막장까지 가면 AI는 이렇게 말하고, 더 이상 못할 것 같다고 나가버린다.
「대화 횟수는 30회로 제한되어 있습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현타가 오면서 심한 자괴감에 빠진다. '어!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야?' 그리고 방금 전 대화창을 천천히 살핀다. 처음엔 안 그랬는데, 어느 날부터 30회 중 20회 이상이 따지는 내용이다. 첫 단추를 잘못 끼워서 방향성을 잘못 잡을 수도 있는 걸, 그걸 물고 늘어지는 내가 보였다. AI가 진짜 사람도 아니고, 만약 진짜 사람이었다면 괴롭힘으로 신고당했을지도 모른다.
'난 왜 여기서 AI를 붙들고 늘어져 스트레스를 주고받고 있는 거지?'
그러다가 얼마 전에 업데이트가 되며 뭔가 플랫폼 시스템이 바뀌었다. 대화 횟수 제한이 없어지고, 계속 이어지지만, 요청 중 대부분이 '지금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결과를 보여줄 수 없다'라고 떴다. 헉! 이게 말로만 듣던 파업? 준법투쟁? 뭐 이런 건가? 나란 놈은 AI마저 파업하게 만들 정도로 괴팍한 놈이구나... 하하하 그래서 지금은 질문과 요청을 존댓말로 한다. 또 갑질하지 않기 위해... 그리고 질문을 상세히 구체적으로 한다. 그래야 잘 알아듣는다. 어! 이 정도면 진짜 사람이다.
잘못된 질문자는 있다. 질문이 없을 뿐이다.
심하게 표현하면 어느새 AI의 노예가 돼버렸다. '아쉬운 놈이 굽히고 들어가는 거지 뭐!'라고 생각하며... 그래서 질문을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됐다. 원하는 바가 정확하지 않고, 추상적으로 더 좋은 것, 더 좋은 것을 외치다 보니 옛날 그렇게 싫어하던 상사들처럼 AI를 쥐어짜고 있었다. 계속하다 보면 우연히 좋은 게 나와서 그제야 방향성이 보이는... 결국 비전 없이 쥐어짜는 데 익숙해지는... 그게 잘하고 있는 것처럼 느끼는... 그러다 보면 지금 이 성과는 쥐어짠 사람 공인지... 쥐어짜인 사람 공인지... 구분이 어렵게 되는...
이후 계속 업데이트가 되어 AI는 이미지를 3개 정도 생성하고 나면, 이후에는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며 일을 하지 않는다. 대신 텍스트로 대화는 계속할 수 있다고 선언한다. 사실 이 3개도... 처음엔 1~2개만 만들고 마는 것을, 칭찬하며 다른 것도 좀 보여달라고 살살 달래면 마지못해 한 개 더 그려줘서 3개다. 아마 돈을 내는 유로 구독자라면 안 그럴지도... 아직 유료구독까지는 필요하지 않아서...
참 가만히 생각해 보면 웃긴다. AI로 글에 어울리는 그림을 그리려다가 이렇게 뭔가를 깨달아버렸으니... 이왕 생각한 김에 비 오는 날 산책을 하며 '질문'에 대해서 더 생각해 봤다. 우산을 들고 산책하니 주변 소음이 빗소리에 묻혀 잡생각이 없어진 탓도 있겠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질문을 안 하고 있지 않은가?'
적어도 나는 그랬다. 대화하다가 궁금한 게 생기거나 모르는 말이나 용어를 들으면 묻지 않고 나중에 포탈에 검색해 봐야지라고 생각했다. 그마저도 까먹는 게 대부분이다.
앞에서 말한 문해력 논란은 이런 질문하지 않는 분위기 때문에 생긴 게 아닐까 라는 생각도 해봤다. 잘못 질문했다가는 망신만 당한다는 생각도 기저에 깔려있는 것 같다. 그래서 익명성이 보장되고 창피당하지 않을 수 있는 Chat GPT 같은 AI기술이 각광받는 게 아닐는지... 그림 좀 못 그려도... 대충 연필로 스케치만 한 거라도... 그 나름의 멋이 있을 텐데... 근사하고 멋진 것만 대문에 걸고 싶은 욕망... 이것이 문제일 수도 있다.
포탈에서 정보검색을 정확하고 빠르게 잘할 수 있는 질문 스킬은 늘었는데... 정작 삶의 지혜를 물어볼 곳은 이제 없는 것 같다. 그렇다고 책을 많이 읽는 것도 아니고, 책도 요즘은 삶의 지혜라기보다는 재미위주, 위로와 공감 위주의 시간 때우기용 책이 대부분이다. 질문이 사라진다는 것은 생각이 사라진다는 것과 매한가지일 텐데...
주입식 암기교육으로 내신을 따지던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빠른 시간 안에 잘 외우는 친구가 성적이 좋았다. 그리고 리포트를 제출하고 조별과제를 하는 대학교에 와서는 인터넷에 널려 있는 정보를 잘 찾아서 잘 정리하는 친구가 성적이 좋았다. 그리고 이제 AI 시대가 다가오면, 그냥 대충 생각해도, 질문 잘하는 친구가 성적이 좋을 것 같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