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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없는박영감 Dec 20. 2024

정의

話頭 (9)

나의 정의로 너의 권리를 침범할 수 없다.


    여름에 한 번 썼던 주제인데,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속에 나온 말입니다. '정의란 무엇인가?'를 제대로 고민하게 만든 제대로 된 질문이었습니다. 의문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저에게는 그 어떤 물음표보다 더 강한 질문으로 다가왔더랬죠. 느낌대로 문장을 살짝 바꿔보자면,


 '나의 정의로 너의 권리를 구속할 수 없다.'


    이번 12.3 사태는 저에게 이 질문을 다시 던졌습니다. 세상에는 많은 정의가 있습니다. 사람수만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산 사람뿐만 아니라 죽은 이들의 것까지 보태면... 우와~! 정의는 죽지 않고, 살아남으니까요. 1~2년 전에 썼던 정의에 관한 글을 다시 살펴봤습니다. 어렸을 때 좋아했던 '후뢰시맨'을 다시 보고, 악당 외계인 같은 삶을 살고 있는 현재를 부끄러워했던 것이 이 질문의 시작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대부분의 플롯은, 어리고 젊은 정의가 바래고 늙은 정의를 깨부수는 이야기입니다. 연말에 반복적으로 회자되는 '나 홀로 집에(Home Alone)'가 대표적이죠. 반대로 마트 장난감 코너에서 부모에게 항의하는 아이에게 정의는 '생떼'이고, 아이의 그릇된 행동은 바로 잡아야 한다는 부모의 정의는 '훈육'입니다. 뭐가 맞을까요? 正義를 定義할 수 있을까요?


    게다가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는 식의 정의도 많죠? 시대의 변화를 수용해서 그렇다고 하지만... 그러면서 고전(古典)에서 답을 찾는다는 책들은 왜 계속 출판되는 걸까요? 영화나 애니메이션의 단골 소재도, 총이나 레이저 같은 무기가 나오는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이 찾아 헤매는 것은 수천 년 전에 신이 인간에게 하사했다는 전설의 명검입니다.


너의 정의로 나의 권리를 구속할 수 없다.


    이번 사태는 '나의 정의로 너의 권리를 구속할 수 없다'는 말을 이렇게 바꾼 결과로 보입니다.


 '너의 정의로 나의 권리를 구속할 수 없다.'


이렇게 바꾸니 요구하는 문장이 되어버립니다. 그리고 이 문장 자체가 정의가 되어 상대의 권리를 구속해 버리죠. 이 말은 계속 변형되어 '내 마음대로 안 되는 상황'은 정의롭지 못하다는 결론을 내버립니다.


    논리학인가요? 필요조건, 충분조건을 말하는 것이... 명제에 있어서 정방향과 역방향이 모두 참인 경우를 필요충분조건이라고 하지요... 아마? 그리고 '나의 정의로 너의 권리를 구속할 수 없다'는 말은 필요충분조건이 아님이 증명됐습니다. 편향된 시각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다시 정의의 필요충분조건을 찾아 나서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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