話頭 (마지막)
공감의 동기
요즘 마트에서 좀 계획 없이 돈을 쓰는 느낌이 들어서, 장 볼 목록을 적으려고 오랜만에 스마트폰 메모장 앱을 켰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쓸모없어진 메모가 참 많이 남아 있네요. 2년 전에 이사할 집 보러 다니면서 장단점을 적어 놓은 메모도 아직 그대로이고, 보고 싶은 영화 목록도 그대로입니다. (보고 싶어 했던 사실 자체를 잊고 있었네요. 아직 이미 본 영화 목록으로 넘어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브런치 작가신청할 때 적었던 자기소개와 활동 계획도 보입니다.
01. 작가소개 : 작가님이 궁금해요.
안녕하세요. 항상 새로운 길을 꿈꾸는 사람입니다. 트렌드에 따라, 주변의 기대에 따라 살아오다 나만의 길을 가기 위해 자발적으로 퇴사했고, 자발적 비혼으로 살고 있습니다. 완벽한 화음보다 불협화음의 불량함을 좋아하고, 장조보다 단조의 마이너 감성을 선호합니다.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은 비범함을 갖고 싶습니다. 관찰을 좋아하고 주변에서 새로운 생각을 발견해서 발전시키는 것을 즐깁니다. 독서를 많이 하려고 하는데 참신한 발상이라고 생각한 것들이 이미 많은 철학자들이 고민한 것이라는 것을 알고 철학서를 많이 읽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02. 브런치 활동 계획 : 브런치에서 어떤 글을 발행하고 싶으신가요?
1. 제목 : 뻔한 하루에서 울림 찾기
2. 주제 : 새로운 시선으로 반복되는 일상을 작지만 정성 가득한 선물 같은 일상으로 만들기
3. 개요
가. 일탈은 대단한 사고를 쳐야 하는 것은 아니던데...
나. 파격과 장인 정신만이 명작을 남기는 것은 아니던데...
다. 미소는 짓는 것인가? 지어지는 것인가?
라. 똑같이 계속하다 보면 다른 게 보이던데...
마. 디테일은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은 것에서 생기던데...
바. 뻔한 하루에도 작지만 정성 가득한 선물 같은 울림이 있던데...
사. 층간소음은 윗집문제가 아니고 내 문제던데...
아. 없어보니 얼마나 소중한지 알겠던데...
(이거 작가신청 하시려는 분들께 도움이 될런가요? "이렇게 못써도 브런치에서는 너그럽게 다 받아주십니다. 용기 내어 신청하세요!" 뭐 이런 도움? ^^;;;)
지금 다시 보니, 우선 '울림'이라는 낱말이 보입니다. 2년 전만 해도 이 말을 글에 참 많이 썼던 것 같습니다. 요즘은 '오롯이'인 것 같아요. 브런치나 서점의 신간을 보다 보면 이 낱말이 참 많이 눈에 뜨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짧은 소개글이지만, '애송이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때의 저는 '별로 힘들지 않은 상황을 힘들게 포장해서 많이 '공감'받고 싶어 했구나...'라는 불순한 의도가 보입니다.
'피식'. 그때의 저는 참 가소롭습니다. 그래서 한쪽 입꼬리를 씩 올리며 웃으면서 메모를 정리하는데... 이렇게 적어놓은 글귀가 보입니다. '공감이 우리를 친절하게 만드는 이유는 뭘까?' 2~3년 전에 읽었던 '공감의 배신'이라는 책에 나오는 질문입니다. 기억이 나네요. 그동안 '에세이 범람의 시대'를 걱정하며..., 또 점점 트라우마 각축장으로 변해가는 '브런치스토리'를 걱정하며 썼던 글의 시작은 아마도 여기였던 것 같습니다.
책에서는 이유로, '공감이 우리의 이기적인 동기를 타인에게 확장하게 해 주기 때문이다.'라고 말합니다. 최근 여의도 시위현장에서 보였던 피켓 문구들 중에, '공감 못하는 대통령', '공감능력부족'이라는 類의 문구를 많이 보았습니다. 그리고 '과연 공감은 善일까요?'라는 질문을 했던 책! 그리고 그 문구를 적어놓은 메모를 발견했습니다. 당시에 이 책을 읽고, 저는 책의 주장에 '공감'했습니다.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고요. 그래서 그때의 브런치작가 신청서가... 그리고 지금의 제자신이... 애송이같이 느껴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개인적으로 지금은 '수용의 시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판단을 개입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바로 전 글에서 언급했던, '나의 정의로 너의 권리를 구속할 수 없다'와 맞닿아있습니다. 우리가 정의라고 생각하는 민주주의의 진정한 정서는 공감이 아니라 수용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번 탄핵국면을 맞이하며 이 명제도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다만 아직까지 이것보다 나은 정의에 관한 명제를 찾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반전 한 번 일으켜볼까요? 민주주의는 善일까요?
작가신청서에 있는 말이 또 보이네요. '참신한 발상이라고 생각한 것들이 이미 많은 철학자들이 고민한 것이라는 것을 알고 철학서를 많이 읽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딱 그렇네요. 이 고민은 이미 고대 그리스의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 결론을 냈죠? 답은 '철인(哲人) 정치'다. 탄핵소추안이 가결되고 나서의 상황을 보면 소크라테스의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현대의 철학은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철학에 주석을 다는 수준이라고 했던가요? 소크라테스는 저서가 없지만, 제자인 플라톤이 기록으로 남겼다고 합니다.
대중은 우매합니다.
요즘의 정치 상황을 보면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마시던 때와 비슷합니다. 소피스트들(지금으로 말하면 정치인?)은 소크라테스를 민주주의를 전복시키려는 세력으로 몰아 사형시키죠. 요즘 뉴스나 기사의 댓글을 보면 독배와 진배없습니다. 탄핵에 찬성한 연예인들을 CIA에 신고하라는 댓글도 보입니다. 정말 어이가 없습니다. 유튜버가 한 말 같은데... 출처를 찾아보니 웬 파란 눈의 외국인이 그런 말을 하고 있네요. 이걸 믿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오호통재(嗚呼痛哉)라~!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마신 뒤, 그를 이어받아 제자인 플라톤이 '철인왕'이 다스리는 유토피아를 이상적인 정치체제라고 말합니다. 플라톤의 주장은 훗날 '전체주의*'의 씨를 뿌렸다고 비판받게 됩니다. 그럼 누가 철인(哲人)이냐는 질문이 남겠네요. 고등학교 때 본 만화인데, CLAMP라는 만화창작 그룹이 만든 '레이어스'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여기에 '에메로드 공주'가 나오는데, 한 사람의 의지에 의해 굴러가는 세계가 배경이죠. 아마 '에메로드 공주'가 플라톤이 말하는 철인왕일 겁니다.
이 만화는 '에메로드 공주'가 자신의 세계를 구해달라며 지구에서 세명의 마법기사를 소환하면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소환된 기사들은 세계를 파멸로 이끄는 '자카드'라는 신관을 물리치기 위한 모험을 시작하죠. 그런데...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제가 클램프 작품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만, 진실은 에메로드 공주는 신관 자카드를 보고 사랑에 빠진 겁니다. 그리고 세계를 위해 써야 하는 마음이 한 사람, 자카드를 위한 마음으로 바뀌어버린 거죠. 그래서 세계가 멸망해 가는 겁니다. 자카드도 공주와 마찬가지로 사랑하는 마음이 같았기에, 세계를 멸망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공주를 행복하게 만들려고 하죠. 세계가 멸망하는데, '우리 그냥 사랑하게...' 놔둬야 할까요? 아니 그보다 사랑은 善일까요?
선과 악은 뭘까요? 흑백논리, 옳고 그름이 있을까요? 있어서는 안 될 일이 있을까요? 전 잘 모르겠습니다.
무책임하게 끝내서 죄송합니다.
* 전체주의 (全體主義) : 명사 개인의 모든 활동은 민족ㆍ국가와 같은 전체의 존립과 발전을 위하여서만 존재한다는 이념 아래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사상. 이탈리아의 파시즘과 독일의 나치즘이 대표적이다.
<대문사진출처 : 리디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