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남자들의 은밀한 이야기
마흔이 넘은 어느 날 아파서 눌러보니 가슴이 생겼다. 여기서 말하는 가슴은 감성적인 마음이 아니다. 책 제목처럼 진짜 젖가슴이다. 어느 날 유두 부분이 아프더니 멍울이 지기 시작했고, 이내 작고 봉긋한 모양이 생겼다. 청소년 때 호르몬 분비의 변화처럼 일시적으로 그런 거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된 게 몇 개월째 없어지지 않는다. 왜 없어지지 않지? 저번엔 조금 생기다 사라졌었는데
중년이 되고 건강이 평소와 같지 않으면 덜컥 겁이 난다. 건강에 이상이 생겼을까? 혹시 암일까? 잘못될까 봐 놀라는 일이 잦아졌다. 증상을 포털에 서칭 해보면서 여유증인 것을 알았다. 여성형 유방증이라고 한다. 여성의 유방처럼 남자의 가슴이 형성되는 증상인데, 멍울처럼 생겼다가 사라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또 다른 경우들이 있는데 하나는 지방이 쌓여서 모양만 비슷하게 생기는 질환이다. 이것은 운동하거나 살을 빼면 괜찮다. 또 다른 하나는 진짜 유선이 생겨서 유방이 된단다. 이게 무슨 생뚱맞은 일인지 모르겠다. 원인과 이유를 계속 찾아봤다. 갑상선 기능저하증과 대사성질환, 호르몬 장애를 포함한 내분비질환이 원인이란다. 또 간경변이나 간섬유화가 진행되는 것을 의심해야 한단다. 처음에는 많이 놀랐지만 이렇게 원인이 좁혀지게 되니까 걱정스럽고 놀란 마음이 진정이 되기는 한다.
나는 열심히 살아온 것 외에는 흡연도 안 했고, 과음도 안 하고, 운동도 열심히 했다. 명상도 하면서 마음과 내면도 깊이 있게 관리했다. 강의하는 강사라서 자기관리를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마흔이 넘어서 젖가슴이 생기다니 웃픈 감정들이 왔다 갔다 한다.
대한민국에서 40대는 일을 가장 많이 하고, 제일 많은 성과를 낼 때다. 요즘 퇴근 시간이면 사라지는 팀원과 상사들을 보면 부럽다. MZ 세대처럼 소신 있게 행동하고 싶기도 하다. 위치를 떠나서 마음 가는 대로 확 하고 싶지만 걸린 게 너무 많다. 열심히 잘 하는 것 밖에 없어 보여서 사무실 책상에서 열정을 태우고 있는 날이 대부분이다.
그런 나에게 호르몬 이상과 갑상선 기능, 신진대사 이상이 왔나 보다. 열심히 살아온 삶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서서히 질병과 노화로 구속된다는 느낌이 든다. 미래는 점점 더 희망이 없어 보이기도 한다. 더 이상 이렇게 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지만 벗어나지 못하고 쓸쓸한 내가 거울 앞에서 보고 있다. "어떡해야 하지? 이대로는 살 수 없을 것 같은데"라고 내 안에서 말한다. 하지만 뾰족한 솔루션이 없다. 안 맞는 로또를 사는 것도 이제는 의미 없다. 다르게 살아갈 길이 이것저것 떠오르지만 이내 사라진다. 현실과 상상을 구분할 줄 아는 나이이기도 하니까. 그래서인지 한숨이 많아지는 나이가 되었다.
마흔이 넘어 중년이 되면 경제적으로 여유로울 줄 알았다. 업무나 대인관계에서 안정을 찾을 줄 알았다. 예전 중년의 상사처럼 거들먹거리면서 야단치고 퇴근할 줄 알았다. 퇴근하면 나보고 술 마시자고 찾아오는 거래처 사장이 줄을 설 줄 알았다. 내 명함을 보여주면 굽신거리고 영접할 회사가 있을 줄 알았다. 명절이 되면 거래처와 팀원들이 과일 박스와 건강식품 등을 갖다 받칠 줄 알았다. 그런데 그런 거 사라진지 오래되고, 바라는 사람들이 이상하게 된 세상이 왔다.
직장 내에서는 상사 눈치 보고 맞춤 서비스를 해야 한다. 상사뿐만 아니다. 나보다 나이 많은 선배 부하직원도 신경 써줘야 한다. 내가 조금만 감정적으로 얘기해도 "팀장 되더니 싸가지가 없어, 나이도 어린놈이"라는 말을 할 수 있다. 또 가장 예민하게 신경 쓰이는 MZ 세대가 있다. 최대한 배려해서 업무지시를 해도 할지 말지는 그 친구들이 결정한다. 잘 성장하고 역량을 갖추도록 조언을 하면 꼰대가 된다. 신경 써서 대우하지 않으면 금세 사직서를 내고 뒤도 안 돌아본다. 그런 그들을 보면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하다. 하지만 화가 치밀어 오르면서 "도대체 요즘 애들은 가정교육을 어떻게 시키는 거야!"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마음대로 하지도 못하면서 눈치만 열심히 본다. 일은 많이 하고 마음은 답답하다 보니 술이 늘었다. 친구들이나 동년배들과 말을 해보면 대부분 다 비슷하다. 호르몬 불균형으로 생긴 내 가슴이 말해준다. 이것 또한 지나가는 것일까? 지나가는 것도 이젠 지겹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