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사의 갈림길에 선 아이, 파보 극복기
형제들과 나란히 입소한 연약한 새끼 누렁이. 포인핸드 공고를 보고 유기견 보호소에서 데려온 아이는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상가 한 구석에 누워 마른 몸을 둥글게 말고 떨고 있을 뿐이었다. 따뜻한 물에 불린 사료도 물도 전혀 입을 대지 않았다. 이 강아지가 매우 아픈 상태임을 짐작했다. 분명 배가 고플 텐데 스스로 사료 한 알을 힘겹게 먹다가 그만두기도 했다. 검색창에 '새끼 강아지 장염'이라고 쳤다. 연관 검색어에 떠 있는 '파보 바이러스'가 눈에 들어왔다. 아니겠지 하는 심정으로 클릭했다.
아무리 장염이라 해도 이틀 동안 밥을 먹지 않을 리가 없다. 파보 바이러스가 맞다는 불길한 확신을 가지고 동물병원을 찾았다. 우연인지 악연인지 동물병원의 원장은 시보호소에서 이 아이에게 예방접종 주사를 놔줬던 의사였다. 입양하던 날, 예방주사를 놓으며 '고놈 통통하네'라고 말했던 그 의사였다. 잠깐 속에서 분노가 치밀었다. 살짝 손만 대어도 갈비뼈가 그대로 만져지던 강아지였는데 수의사라면 분명 더 잘 알았을 텐데. 이 아이가 정상인 상태가 아니란 것을.
어쨌든 그 병원에서 파보 바이러스와 코로나 장염 등의 키트 검사를 진행했고 두 개 모두 양성이 나왔다. 후에 왜 입양 당시 아픈 애란 것을 말해주지 않았냐고 묻자 계속 주제를 돌리며 이리저리 피해 가는 실력에 혀를 내둘렀다. 파보 바이러스는 전염력이 매우 강해서 다른 개들과 분리해야 한다. 그때 우리 집에는 이미 첫째 이공이가 있었고 상가가 아닌 집으로 들였으면 첫째 이공이까지 파보에 걸릴 뻔했던 아찔한 순간이었다.
파보 바이러스는 뚜렷한 치료제가 없어 장염약만 처방받았다. 병원에서는 파보 바이러스로 인해 언제든 죽을 수 있으니 만약의 상황이 생겨도 놀라지 말라는 충고뿐이었다. 그 후로 강아지 살리기 프로젝트가 진행됐다.
보리물에 설탕, 소금을 약간씩 태워 필수 성분을 보충해 줬다. 침이 없는 주사기에 따뜻한 보리물을 채워 1~2시간마다 입을 벌려 넣어주었다. 파보 바이러스로 장이 헐은 상태라 뭔가를 삼키는 게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그럼에도 억지로 급여를 해주었다.
파보 바이러스를 이기는 데 가장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되는 건 비타민 주사다. 동물약국에서 효과가 좋다고 추천받은 비타민을 사서 매일 목에 주사를 놓았다. 비타민 주사를 맞으며 아이는 점차 기운을 차렸고 어느 날부터 사료를 조금씩 스스로 먹었다. 나는 그때 '얘는 산다'라는 확신이 들었다. 고통스러워도 스스로 살려는 의지를 가지고 사료를 먹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바이러스 전염 위험 때문에 2~3주간 상가에 격리되어 있었고 첫째 이공이는 얘가 뭔지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다. 강아지가 언제든지 죽을 수 있다는 말에 나는 이름을 지어주지도 못했다. 이름까지 지어주면 이별할 때 더 마음이 아플까 봐. 강아지가 점차 기운을 차리자 무지성으로 '찰리'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딱히 큰 의미는 없었고 찰리라는 이름이 잘 어울리는 것 같아서 그렇게 했다.
찰리를 데리고 처음 상가 밖으로 나간 날, 바깥공기가 마음에 들었는지 찰리는 기운을 내서 여기저기 힘차게 걸었다. 상가 안에 격리되었다가 첫 바깥공기를 쐤는데 얼마나 시원할까. 잔디밭의 잔디를 밟고 흙냄새를 밟으며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 후로 찰리는 빠른 속도로 회복했다.
파보 바이러스에 감염된 장이 덜 회복됐는지 먹어도 먹어도 갈비뼈가 만져졌다. 그 이후로도 간간히 피똥을 싸거나 설사를 했다. 파보 바이러스와 장염 키트 검사에서 음성이 나왔을 때, 이제 정말 식구가 되었구나 생각했다. 더 이상 아침에 일어나 '강아지가 죽어있으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었고, 그 사실만으로 행복이었다.
바이러스가 지나가고 나자 찰리는 똘망똘망한 눈동자와 귀여운 애교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보호소 공고 사진에서는 마냥 누렁이 똥개여서 크면 첫째 이공이를 닮았겠다 생각했는데 이상하게 상상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커갔다. (생각보다 너무 귀여웠다)
파보에 걸려 간당간당한 줄다리기를 하던 때에도 사람의 손에 파고들었던 강아지. 타고나길 애교가 많게 타고났는지 사람 손을 정말 좋아했다. 옆에 누이면 품 안으로 파고들어 안아주지 않고선 참을 수가 없었다.
파보를 이겨내고 얼마 후 임시 이름이었던 찰리에서 '금동이'라는 이름을 새로 만들어주었다. 자랄수록 털 색이 금색이라 금동이란 이름을 붙였고 첫째 이공이와 어감 상 궁합이 좋아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우리 집 둘째가 된 금동이. 약한 몸으로 세상풍파를 다 견뎌낸 만큼 더 씩씩하게 자랄 준비가 되어있나?!
고생했던 모든 것을 떠나 금동이가 우리 집에 오고, 또 막내가 되어주어서 더없이 감사했다. 금동이의 형제였던 아이들도 금동이를 물꼬로 모두 입양되었다. 금동이는 무럭무럭 자라 어느새 9킬로에 육박한다. 지나가는 사람도 뒤돌아보게 만드는 미모로 자랐으니.. (다음 편에 사진 있음)
< + 아무리 생각해도 보호소에서 파보 바이러스가 감염된 것 같아 보호소에 전화하니 다른 강아지들도 상태가 안 좋다는 답변을 들었다. 시보호소에서 최소한 전염병이 돌지 않게 바이러스 보유견을 격리하고 치료하는 관리가 필요해 보였다. 공고 기간이 지나 안락사를 당하는 개들도 있지만 입양으로 새로운 인생을 맞이하는 개들도 있으니. 금동이의 파보를 치료하며 키트 검사와 약값 등 많은 비용이 들었다. 유기견을 보호소에서 입양한 경우 치료에 쓰였던 금액은 후에 반환받을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