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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난 지 19년 만에 친정식구들이 우리 집으로 이사왔다

친정집에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하기로 했다. 25여 년 전에는 오래된 빌라들 사이에서 신축의 위용을 뽐내던 초록 아파트였다. 초록 아파트는 기옥 씨(돌아가신 친할머니의 애칭)와의 추억이 많았다. 처음 아파트 시공할 때, 기옥 씨와 구경 가서 주차장은 어느 쪽으로 생기는지, 입구는 어느 쪽으로 생기는지, 옆에 붙은 상가는 어떤 모양인지 상상하며 입주할 날을 손꼽아 기다렸었다. 처음 입주하던 날 감격스러웠던 기옥 씨는 덩실덩실한 어깨춤사위를 선보이며, 본인의 신명을 보여주었다. 아직도 완공된 아파트에 들어섰을 때의 그 설렘이 생생하다. 기옥 씨는 아파트 입구에 놓인 초록 아파트 디딤돌 앞에 작은 의자를 갔다 놓았다. 그 자리는 망부석 마냥 기옥 씨의 지정석이 되었고, 그곳에 앉아 아파트 주민과의 친목을 다지기도 했다. 또, 그 의자에 앉아 우리를 기다리다가, 우리가 입구에 들어서면 그간 아파트의 있었던 일들을 브리핑하며 본인의 심심함을 달랬다.


우리 가족의 추억이 깃든 초록 아파트도 이제 나이가 들었다. 베란다 새시도 뒤틀리고, 창문에서는 물이 샜다. 보일러는 중간이 없어, 뜨거운 물이 갑자기 울컥하고 나오거나, 나오는데 한참이 걸렸다. 정여사(엄마의 애칭)와 이 반장님(아빠의 애칭)께 더 이상 수리를 미룰 수 없으니, 선택을 해달라고 했다. 초록 아파트를 팔고 신축 아파트로 이사가를 가던지, 이 오래된 초록 아파트를 고쳐야 한다고 했다. 정여사는 단호했다. 절대로 이사는 할 수 없다고 했다. 이 동네에서 40년 넘게 보냈고, 친했던 이웃들도 얼마 안 남았기에 더더욱 떠날 수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방법은 리모델링 밖에 없었다. 그 고민을 3년 넘게 했다. 그리고 마침내 리모델링을 하기로 했다.


리모델링은 생각보다 훨씬 더 간단하지도 쉽지도 않았다. 매 순간 선택과 결정을 해야 했다. 인테리어 업체를 고르는 일이 제일 먼저인데, 그 마저도 쉬운 게 하나도 없었다. 인테리어를 어디까지 할 것이냐, 시세가 얼마이기 때문에 예산을 어디까지 잡을 것이냐, 게다가 업체상담을 위해 예약 시간 잡는 것도 주말에만 시간이 나서 시간을 맞추는 것도 일이었다. 업체를 선택하고도, 공사 기간 동안 이사를 해야 하니 업체도 알아봐야 하고, 공사 기간이 보통 4주 가까이 되기 때문에 그 기간 동안 있을 곳도 알아봐야 하고, 공사 후에는 그에 맞는 가구와 가전을 새로 구입해야 하므로 틈틈이 가전 전시장들을 찾아야 했다.


공사 전에 오래된 물건을 비우는 일도 시간과 에너지가 많이 들었다. 특히나, 정여사의 애착템 주방 용품들을 버릴 때는 더욱 그랬다. 시집올 때 그러니까 50년 전에 가지고 온 유리그릇을 아직도 가지고 있는 정여사는 무조건 버리는 내가 못 마땅해 부화가 났는지 자리를 피했다.


이 모든 고난에도 초록 아파트에서 이사를 할 수 없는 부모님의 의지로 리모델링을 감행했다. 그리고 한 달간의 리모델링 기간 동안 친정 식구들이 있을 곳이 필요했다. 당연히 그곳은 우리 집이 되었다. 그렇게 친정을 떠나온 지 19년 만에 친정식구들이 우리 집을 이사 왔다. 한 달간 작은 우리 아파트에 7명의 식구가 복닥 복닥 한 일상을 보낼 예정이다. 아이들은 벌써부터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한다고 신이 났고, 나와 남편 또한 다 같이 여행 가는 듯 설레었다. 시집온 지 19년 만에 친정부모님과 함께 살게 되었다. 그것도 한 달이라는 긴 시간 동안.

살면서 이런 좋은 기회가 생기다니 앞으로의 한 달이 기대되었다. 물론, 대가족을 챙기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다년간의 경험이 있으므로 그다지 힘들거라 생각되지 않았다.


그리고 며칠 전 시누와의 통화가 생각이 났다.

"친정 부모님들 언제 오셔?"

"이번 주 금요일에."

"오~ 좋겠네?"

"응!. 애들도 좋아해!"

"힘들어도 지금이 제일 좋을 때라고 생각해. 옆에 계셔서 챙길 수 있는 게 얼마나 좋아!"

"응! 나도 그렇게 생각해!"

시누의 말이 가슴속에 남았다.

시누는 갑자기 돌아가신 부모님을 생각했을 것이다. 해주고 싶어도 해줄 수 없는 마음.

그 마음을 우리는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다.


어쩌다가 고군분투할 예정이지만, 친정식구와 함께 하게 될 앞으로의 한 달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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