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관스님 나의 음식>이라는 책을 읽었다.
(읽었다기보다는 체험했다고 해야 맞을 듯하다.)
책은 백양사에서 정관 스님을 5년여간 옆에서 지켜본 후남 셀만이라는 작가가, 장관스님의 삶과 사계절 그리고 레시피를 담은 에세이 형식으로 쓰였다. 정관 스님은 사찰 음식의 대가로 알려지신 분이다. 넷플릭스 셰프의 테이블에도 나오셨고, 나 혼자 산다에도 나오셨고, 유퀴즈에도 나오셔서 더욱 유명해지셨다. 특히, 넷플릭스를 보고 전 세계에서 많은 젊은이들이 해마다 정관 스님을 찾는다고 한다.
내가 인상적이었던 건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스님이 하신 말씀이었다.
[ 스님은 정원에서 키운 오이로 음식을 만들어 먹는 다며 이렇게 말했다.
"제가 오이가 되고 오이가 저 자신이 되지요" 음식으로 나의 에너지와 자연의 에너지가 만나 하나가 된다. 이것이 바로 손이 지어 내는 마법이다.
"배추를 단순히 채소라고만 보지 말고 우리 몸의 일부가 된다고 생각해 보세요. 배추가 곧 내 몸이 되고 자아가 됩니다. 따라서 소중하고 조심스럽게 다뤄야 하지요. 이런 마음가짐으로 김치를 담그면 좋은 김치가 됩니다."
- 정관스님 나의 음식 중에서]
나의 에너지와 자연의 에너지가 만나 합일을 이루는 것 그것이 요리이며 음식이고, 자연을 식재료로 보지 말고 내 몸의 일부라고 생각하면 소중히 다루게 되는데 그런 마음가짐으로 먹는 것이 음식이라고 느껴졌다.
책에는 인터뷰와 더불어 여러 가지 사찰 음식을 소개하고 있다. 나는 김치가 소개되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사찰의 김치는 젓갈과 마늘을 넣지 않아 시원하고 덜 맵다고 한다. 젊은 층과 외국인들이 잘 먹을 수 있도록, 찹쌀풀에 토마토와 비트를 넣기도 하고, 열매로 만든 다양한 청으로 풍미를 살린다고 한다. 여름김치, 배추김치, 상추대궁김치 그리고 오래된 묵은지로 찜을 만드는 묵은지 찜이 소개되었다. 가마솥에 들기름을 두르고 만든 묵은지에, 당근, 무, 표고를 넣어서 풍성한 찜이 되었다. 여태껏 사찰 음식은 금기하는 재료가 있기에, 요리가 한정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들기름 묵은지 찜을 보니, 내 생각이 틀렸음을 깨달았다. 표고를 넣어 고기를 대신하고, 무를 넣어 시원함을 첨가하고, 당근으로 단맛을 대체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묵은지 찜을 보고, 우리 집에 잠자고 있는 정여사(친정엄마의 애칭)의 묵은지가 생각이 났다. 나도 묵은지로 색다른 표현을 하고 싶었다. 일단, 책에서 처럼 묵은지 한 포기를 꺼내어 양념을 깨끗이 씻어냈다. 한 시간가량 짠기가 빠지도록 물에 담가놨다. 묵은지로 무엇을 할까 고민했다. 들기름으로 밥을 비벼 묵은지 쌈밥을 할까, 묵은지를 고등어에 감싸 묵은지 고등어 찜을 할까 고민하다가 묵은지로 만두를 만들면 어떨까 싶었다. 마침 냉장고에 호박만두를 하려고 만들어 놓은 호박만두소가 있었다. 물에 담가 놓은 묵은지를 건져서 물기를 꽉 짜내고, 만두소 한 큰 술을 크게 떠서 묵은지 위에 얹고, 돌돌 말아 냈다. 그리고 찜기 위에 올려 15분간 쪄냈다. 찜기가 보글보글 끓으면서, 쿰쿰한 듯 새콤함 묵은지 냄새가 올라왔다. 나는 반신 반의 하면서 뚜껑을 열었다. 외관상 형태는 잘 보존되어 있는데, 맛이 어떨지 궁금했다.
만두를 가로 단면이 동그랗게 나오도록 잘라, 먹기 편하게 한 입 사이즈로 만들었다.
입에 넣어 천천히 음미했다.
어금니가 묵은지를 찌그덩 찌그덩 잘근잘근 씹으면,
부드럽게 익은 달큼한 호박만두소가 혀끝으로 마중 나와 짭짤한 묵은지와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들기름이 향긋한 묵은지를 천천히 씹으면, 씹을수록 새콤한 배추맛에 침샘 넘쳐흐르고 입안 가득 고기의 풍미를 느껴진다. 정관스님 말씀처럼 배추와 내 몸이 하나가 되고, 하나의 자아가 됨을 느끼다 보니. 순식간에 만두가 사라진다. 소중하고 조심스럽게 다뤄어 내 몸에 켜켜이 쌓아둔다. 정관스님 덕분에 오래되어, 더는 못 먹을 것 같았던 묵은지가 내 안으로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