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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앗따맘마 Mar 28. 2023

비 오는 날의 일본에서

올해 생일은 어쩌면 내 인생에서 가장 평범하고 또 가장 특별했던 생일이었다. 올초에 목표했던 계획이있었다. ‘혼자서 여행해 보기’ 다른 사람들의 말을 빌리면 “나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 “내가 몰랐던 내 취향을 알게 된다” 숱하게 좋은 면들을 들어왔기에 더 이상 미루고 싶지 않았다. 마침 회사에 받은 복지포인트도 새로 생겼으니 그 돈과 조금의 자금을  통해 항공권과 호텔을 예약했다.


무척 설레면서도 가서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까 늘 생각했다. 무엇보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싫어하는 건 또 무엇인지, 나와 조금 더친해질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나를 가장 설레게 만들었다.


한국인들이 추천해 주는 맛집, 오사카에 여행 간다면 꼭 가봐야 하는 필수 명소 등 하나씩 자료조사를 해나갔다. 그때 나는 생각했다 “아, 지금 내가 짜고 있는 이 계획은 온전히 나만의 계획이구나” 매번 여행을 일행과 함께 갔던 터라 내가 짠 계획은 일행을 배려해서 짜인 반쪽 짜리 계획이었다. 친구가 좋아할 만한 맛집을 찾아보고 친구가 싫어할만한 액티비티는 배제하고 말이다.


23년을 살면서 나는 온전히 나를 위한 무언가를 해본 적이 있었던가? 곰곰이 생각해 봤지만 선뜻 떠오르지 않았다. 아.. 이렇게 나는 나를 위해 살고 있지 않았구나. 지난날의 나에게 미안해지는 순간이었다. 물론 내 과거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고 순수했고 찬란했지만 말이다!


드디어 일본에 도착했지만 처음 나를 반긴 건 다름 아닌 봄비였다. 교토에 도착하자마자 다급하게 캐리어 속에 엤는 휴대용 우산을 꺼내 펼쳐냈다. 내 26인치 캐리어가 그 조그마한 휴대용 우산 속에 가려질 리가 없을뿐더러 내가 아끼는 신발마저도 속수무책 젖어갔다. 설상가상 기존에 잡아놨던 숙소는 내가 계획했던 관광지와 도보 40분 거리였다.



속으로 무진장 외쳤다.

“제기랄 젠장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 나를 이런 식으로 환영시켜 주는 거냐고!!!”


끝나지 않았다. 최악의 상황은 바로 내 휴대폰 배터리였다. 아이폰 13 미니답게 내 휴대폰은 순식간에 방전 직전의 위기에 내몰렸다. 그래도 나는 철저하게 보조배터리를 준비했다. 여행을 시작도 하기 전에 휴대폰이 꺼질 수 없지라는 생각과 함께 캐리어 속을 뒤지기 시작했다. 응? 큰일이었다 정말 큰일이었다. 비가 오면 우산을 쓰면 되지만 휴대폰 배터리가 없으면 내 계획했던 곳을 무슨 수로 가지?



20% 남짓한 배터리를 이끌고 우선 관광지로 몸을 옮겼다. 그래도 내 계획을 이뤄내야 하니까. 어딘가 뾰족한 수가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교토의 기요미즈데라를 갔는데 비도 오고 사람도 많고 배터리는 닳아 가니 여유는커녕 마음이 조급해졌다. 제대로 관광지를 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 우선 편의점부터 들리기로 했다. 편의점엔 당연히 보조배터리를 팔 거라고 생각했다. 정말 다행히도 보조 배터리가 있었고 그렇게 나는 멍청비용을 지출했다.


점점 올라가는 배터리 퍼센트를 보면서 내 여유도 점점 채워지는 듯했다. 여유가 생기자 배가 고프기 시작했다. 점심을 기존에 알아본 곳으로 가려고 구글 지도를 켜보니 이게 웬 걸, 오늘은 휴업이란다. 나는 정말 단전에서 끓어올라오는 욕을 간신히 억누르고 대충 주변에 있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도대체 나에게 왜 이런 시련을 주는 겁니까”


간신히 화를 삭이고 들어간 식당은 소박하지만 정겨운 곳이었다. 주변엔 전부 현지인이었고 그 속에 혼자 한국인이 들어간 것이다. 자리에 앉아 메뉴를 보는데 카레 우동이 눈에 들어왔다. 단 조금도 일본어를 모르는 나는 당당히 사진을 가리키고 오네가이시마스! 말했다. 다행히 잘 전달 됐는지 무사히 카레 우동이 나왔고 10시간의 고생 끝에 먹는 첫 젓가락이었다. 먹자마자 그간의 화가 풀리면서 생각했다.


“여행까지 왔는데 화를 내서 뭐 하겠어,

맛있으면 장땡이지”


알고 보니 그 가게는 현지인 맛집으로 유명한 구글 평점 4점대 맛집이었다. 인생 호사다마라고 했나 그 가게로 나를 내몰았던 그간의 위기는 사실 이런 숨은 맛집을 나에게 알려주려 했던 것일까 잠시 생각에 잠기며 헛웃음을 털털 내지 었다.


그렇게 내 일본 여행은 시작됐다


혼자 여행하게 되니 내 의지대로 계획을 수정하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 채울 수 있어서 좋았지만 역시 심심하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관광지를 다 둘러보고 숙소로 돌아가려는 찰나 일본에서 책을 하나 사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구글맵에 서점을 검색했다.


‘신장서점’이라는 곳이 근처에 있기에 터벅터벅 발길을 옮겼다. 가는 길목 역시 한국인은 나밖에 없어서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임을 한번 더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몇 분 정도 걸으니 목적지에 도착했다. 4층으로 된 규모가 큰 서점이었으며 문을 열고 들어가니 1층엔 애니메이션 굿즈들이 가득 모여 나를 반겼다. 아 1층은 애니메이션 테마인가 보다 생각하고 2층으로 올라갔는데 내 이목구비가 더 커질 수 없을 정도로 커지게 놀랐다. 외국인 여자가 웬 성인용품을 만지작만지작하고 있는 게 아닌가?


상황 파악도 하기 전에 내 눈에는 수많은 색깔과 모양의 성인 용품이 나에게 인사를 건넸다. 홀린 듯 그 속으로 빠져들어갔으며 그곳에는 일본 성인배우 모습을 하고 있는 성인용품부터 차마 입으로 말하기 부끄러운 DVD가 가득 차 있었다. 황급히 구글리뷰를 찾아보니 이름만 서점이고 성인용품을 판매하고 있는 곳이었다.


당황도 잠시 새로운 문화에 신기함으로 나는 젖어들었다. 한국에서 볼 수 없는 문화를 내 눈으로 경함 한다는 것, 이게 바로 여행의 묘미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만약 책을 사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들었으면 그런 경험을 할 수 있었을까? 만약 내가 친구와 함께 여행했더라면 책 사러 가자고 말할 수 있었을까? 온전히 나를 위한 순간을 다시 한번 느꼈다.


그 이후의 일어난 일들은 평범한 여행이었다. 가족들과 회사 사람들에게 줄 기념품을 사러 주변을 쏘다녔고 한국에서 사고 싶었던 옷들을 사기 위해 온 동네를 쑤시고 다닌 게 전부였다. 내 생일 역시 그냥 평범한 하루에 불과할 뻔했다.



생일날 유니버설 스튜디오에 가겠다는 계획을 이루려고 아침 일찍 몸을 일으켜 혼자 놀이공원으로 갔다. 아무래도 혼자이다 보니 조금 지루해서 오랫동안 머무르지 않고 곧장 문 밖을 나왔다. 아무래도 혼자 놀이공원은 추천하고 싶지 않다.


그렇게 마지막 날이 흘러가는 듯싶었다. 일본에서의 여행은 소박하면서 소소하게 흘러갔구나 생각하면서 숙소로 향하기 시작했다. 내 마지막 저녁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간다는 ‘이치란 라멘’을 계획했는데 그곳으로 가보니 그동안 안 보이던 한국인들이 바글바글 했다. 90분. 이 라멘을 먹기 위해서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었다.


나는 그렇게 맛집에 대한 욕심이 없었기에 빠른 포기를 하고 숙소로 우선 들어가기로 했다. 정말 시작부터 끝까지 계획대로 되는 건 하나도 없구나 생각하면서 내 여행이 끝나는 듯 보였다.


숙소로 들어가기 바로 전 타코야키집으로 보이는 가게가 북적거리는 걸 봤다. 때마침 점원과 눈이 마주쳤고 나는 분위기에 휩쓸려 안으로 들어갔다. 바 형식의 타코야키 이자카야집으로 보이는 듯한 이 식당은 시끄럽고 또 북적거렸다. 나는 일자형 바 느낌에 자리를 잡았고 내 옆에는 외국인 3명이 신나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와, 진짜 재밌게 이야기하신다. 혹시 나도 낄 수 있을까? 진짜 같이 이야기하고 싶다.”


그렇게 30분? 아니 1시간 좀 안되게 고민을 반복핶던 것 같다. 너무 재미있어 보이는 세 명의 사람들 사이에 영어도 무척 서툰 내가 과연 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머뭇거리던 찰나 이렇게 생일을 보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입이 먼저 반응했다.


“Where are you from?"


아.. 완전히 뱉어버렸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다는 생각도 잠시 다행히 좋게 받아주셔서 나도 그 대화에 끼게 됐다. 나와 동갑이었던 San Diego 친구, 몇 년째 여행을 하던 커플 그리고 서울에서 놀러 온 나까지! 이렇게 4명이서 세상이 떠나가듯 웃고 마셨다.


아 정말 행복했다. 오늘이 생일이라는 내 말에 가게 사람들 전부가 HAPPY BIRTHDAY!! 축하해 주며 일본인 미국인 할 거 없이 나에게 축하한다며 말을 건넸다. 내 인생에서 정말 잊을 수 없는 추억이 생겨버린 것이었다. 8시부터 새벽 2시까지 장장 6시간 동안 계속 우리는 마셨고 이야기했다. 나는 완전히 취해버려서 실수도 몇 번 저질렀지만 그것쯤이야 우리는 완전히 상관없었다. 뒤에 일본인 분들도 “축하해요 여기 내 친구도 한국인이야 인사해”라고 말도 건네주고 이 기억을 평생 간직하기 위해 사진도 찍었다.


미국에 놀러 가게 되면 꼭 연락하겠다, 서울에 놀라가면 꼭 연락하겠다는 흔히 한국인들이 자주 하는 형식적 인사를 건네고 헤어졌지만 정말 나는 다시 만나고 싶은 마음이다.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하는 도중 다시 생각했다. 만약 내가 친구와 함께 있었다면 90분을 기다리면서 친구와 그 라멘집을 갔겠지? 그렇다면 내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이 추억을 느끼지도 못했겠지?


늘 계획대로 이루어져야 행복했던 내가 처음으로 무계획이 주는 선물을 받은 순간이었다.


나는 생각했다.


‘지금 이 순간이 너무 좋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큰일 났다. 여행을 더 깊이 사랑하게 됐고 또 나와 조금 친해진 기분이다.‘


일본 여행은 한국과는 다르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은 탓에 일본 여행은 절대 가지 말아야지 생각했던 내가 이제는 일본 여행을 좋아하게 됐다.


혼자 가는 여행이 무서워 마음속에 간직하고만 있던 내 버킷리스트를 이루면서 한층 더 커지고 성장하게 된 기분이다.


계획이 조금이라도 틀어지면 하루종일 짜증 나고 불편했던 내가 이번 여행을 다녀오면서 무계획이 가져다주는 큰 선물을 받아오게 됐다.


아.. 나는 여태까지 무얼 위해 이리 얽매이고 또 내 시간들을 허비했을까. 참으로 부질없다. 여행을 알차게 보내야 한다는 생각에 철저한 계획을 세우던 내 지난 시간들이 안타깝다. 남들이 건넨 이야기에 직접 경험해보지도 않고 철석같이 믿어왔던 내가 바보 같았다.


혼자 남게 되는 게 두려울 거라는 걱정에 나와 친해질 수 있는 기회를 자꾸만 미뤄왔던 게 억울하다.


이번 여행은 정말 나에게 잊을 수 없는 여행이었으며 또 한 걸음 더 나를 성장시키게 만들어준 소중하고 또 소중한 경험이었다. 또 만나자 일본. 반가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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