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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명호 Sep 03. 2023

신뢰와 행복

신뢰 수준, 인간관계, 덴마크

행복의 가장 중요한 조건의 하나가 인간관계라는 점은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래서 주위 사람들과 얼마나 원만한 인간관계를 지녔는지에 따라 자신의 행복 수준을 판단할 수 있습니다. 인류는 진화과정에서 사회성이 DNA에 각인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현대인은 결혼과 출산보다는 혼자 사는 삶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과거 직장인은 일을 마치면 선술집에서 한잔하면서 일과를 마무리하는 행위가 일상생활이었다면 요즘은 직장 끝나면 집에 와서 혼자서 TV 또는 인터넷 보면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냅니다. 미국의 사회학자 Robert Putnam (2000)은 혼자서 볼링 하기라는 책에서 이미 1960년대 이후 가족, 친구, 이웃들로부터 단절된 삶을 사는 미국인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같이 현대 사회에서는 국적을 불문하고 과거 어느 시대보다 자기중심의 세상에 살면서 행복으로부터 스스로 멀어지고 있습니다.


과연 현대인의 행복을 가로막는 인간관계의 복원은 가능할까요?      


인간관계의 복원은 개인 및 사회적 차원에서 모두 접근이 가능합니다. 개인 차원에서는 각자의 행동 변화를 통해 사회적 관계의 개선을 도모할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타인에게 관용을 베풀고 상대방을 조금 더 배려해 준다면 인간관계는 분명히 개선될 것입니다. 이 경우 사회 구성원의 행복 수준 역시 향상될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개인의 행동 변화는 현실에서는 매우 어렵다는 점입니다. 개인의 이기적인 행동을 이타적인 행동으로 바꿀 수 있으면 좋겠지만 이런 행동 변화를 현실에서 기대하기는 무리입니다. 그런 이유에서 대부분 이론에서는 개인의 행동을 주어진 것으로 가정합니다.      


한편 사회적 차원에서 인간관계에 영향을 주는 요인은 매우 다양합니다. 종교, 교육, 개방, 소득, 공동체, 부패, 불평등, 신뢰 등 다양한 요인을 지적할 수 있습니다. 이들 요인 중 소득과 불평등에 대해서는 이미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이 중에서 신뢰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신뢰는 상대방이 어떻게 행동할 것이라는 믿음 속에서 상대방에 대한 일정한 기대를 가정합니다. 한 사회의 구성원이 상대방의 행동이 자신에게 호의적이거나 또는 최소한 악의적이지는 않을 것이라 믿는다면 이런 사회는 신뢰 수준이 높은 사회입니다. 즉, 신뢰 수준이 높은 사회는 일정한 기대와 믿음이 이루어지는 사회이므로 협력이 쉽고 감시와 통제 비용이 낮습니다. 그러므로 신뢰는 원만한 인간관계를 형성하는데 매우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특히 신뢰는 국가 간 비교가 가능한 시계열 데이터가 있다는 점에서 유용한 분석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신뢰 관련 데이터를 살펴보면 스칸디나비아 국가의 신뢰 수준이 다른 나라와 비교해 유난히 높습니다. 특히 덴마크는 가장 높은 신뢰 수준을 보여줍니다. 덴마크인의 높은 신뢰 수준은 World Value Survey(WVS)의 조사결과에서 잘 드러납니다. WVS는 1981년부터 2022년까지 주요 국가를 대상으로 사회, 정치, 경제, 종교 및 문화적 가치 관련 7차례에 걸쳐 다양한 조사를 했습니다. 최근 실시된 7차 조사(2017~2022) 결과에 따르면 “Generally speaking, would you say that most people can be trusted, or that you can’t be too careful in dealing with people?” (일반적으로 말해서, 당신은 대부분 사람을 신뢰할 수 있습니까, 아니면 사람을 대할 때 매우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까?)라는 신뢰 관련 질문에 대해 덴마크 응답자는 73.9%가 대부분 사람을 신뢰한다고 응답했고, 매우 조심해야 한다는 응답자는 25.8%에 그쳤습니다. 반면, 일본(61.0%), 미국(62.5%) 및 한국인(67.1%)의 응답자는 대부분 매우 조심해야 한다고 대답했습니다.      


                신뢰 관련 문항과 응답

자료: https://www.worldvaluessurvey.org/WVSOnline.jsp

WVS의 신뢰 관련 다른 문항의 조사결과 역시 비슷한 결과를 보여줍니다. ‘처음 만난 사람을 어느 정도 믿을 수 있는지’, 그리고 ‘다른 국적의 사람은 어느 정도 믿을 수 있는지’라는 질문에 대해 덴마크의 경우 전자에 대해 75.3%, 후자에 대해서는 84.4%가 신뢰한다고 응답했습니다. 반면 처음 만난 사람과 외국인에 대한 믿음 문항에 대해 미국의 경우 각각 39.4%, 73.2%, 일본의 경우 각각 10.4%, 15.9%, 한국의 경우 각각 17.5%, 19.1%로 나타났습니다. 위의 표에서 볼 수 있듯이 한국과 일본은 일반인, 처음 보는 사람과 외국인에 대한 신뢰도가 모두 낮지만, 미국의 경우 외국인에 대한 신뢰도는 비교적 높게 나타났습니다.      


이같이 덴마크인의 신뢰 수준은 미국, 일본, 한국 국민의 일반적인 인식과는 큰 차이를 지닙니다. 덴마크 전문가는 자국민의 높은 신뢰 수준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일부 덴마크 학자는 중세부터 왕과 시민 사이에는 합의와 협력을 토대로 하는 정치 시스템이 있었고, 근세 이후에는 농업 및 금융 분야에서 활성화된 협동조합 덕분에 성숙한 시민사회를 갖출 수 있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므로 덴마크에서의 신뢰는 단기적 성과가 아닌 오랜 역사에서 이룬 대화와 타협의 산물임을 강조합니다. (Svendsen et al. 2012) 이에 반해 대부분 유럽 국가의 경우 역사적으로 통합된 사회를 이루지 못한 채 분열 속에서 안정된 시민사회 및 정치체제를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신뢰 수준이 낮을 수밖에 없었다고 지적합니다.      


신뢰가 높은 사회에서는 구성원 간에 갈등이나 분쟁이 발생하더라도 고소 또는 고발보다는 당사자 간의 소통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고소, 고발 건수가 많다는 것은 신뢰 부족에서 기인한 현상입니다. 그러므로 낮은 신뢰는 거래비용을 높여줍니다. 반면 높은 신뢰도는 사회적 자본 형성을 통해 자발적 협력이 가능한 성숙한 시민사회를 만들어줍니다. 또한, 높은 신뢰는 거래비용을 낮춰서 왕성한 경제활동을 가능케 합니다. 덴마크의 경우 이웃에 대한 신뢰를 근간으로 협동조합 설립이 세계에서 가장 활발합니다. 덴마크의 협동조합은 다른 나라와 달리 법률 제약 없이 구성원의 합의만으로 조합 설립이 가능합니다. 덴마크의 협동조합은 농업에서 시작했으나 현대에 와서는 금융 및 에너지 분야에 이르기까지 그 영역이 확대되면서 경제에 활력을 제공합니다.      


신뢰의 국가 간 차이는 줄어들었나요?


1인당 국민소득과 같은 경제 변수의 경우 대체로 국가 간 수렴 현상이 잘 나타납니다. 일반적으로 저소득 국가의 경제성장률이 고소득 국가보다 높으므로 시간이 지나면서 국가 간 소득은 수렴하기 때문입니다. 중국과 인도의 높은 경제성장률이 이런 모습을 잘 보여줍니다. 이에 반해 신뢰와 같은 사회 관련 변수는 움직임이 늦다는 점에서 국가 간 수렴 현상이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WVS에 나타난 신뢰 수준의 시계열 추이를 살펴보면 국가 간 수렴 현상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대부분 선진국에서는 신뢰 수준은 점차 하락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미국의 경우 1972년 조사에서는 사람을 만날 때 조심해야 한다는 견해가 50.3%이었는데 최근 조사에서는 62.5%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한국과 일본 역시 유사한 움직임을 보인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한국과 일본의 경우 198년대 초반 조사에서는 각각 36.0%, 37.4%이었는데 최근 조사에서는 33.7%, 32.9%로 다소 하락했습니다. 반면 덴마크의 신뢰 수준은 1980년대 초반 년 51%에서 최근 73.9%로 증가했습니다. 결과적으로 국가 간 신뢰 수준의 수렴 현상은 목격되지 않았습니다. 예외적인 몇 나라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국가의 신뢰 수준은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신뢰 수준은 어떻게 높일 수 있나요?      


이를 알아보려면 우선 신뢰가 어떻게 형성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기존 연구에 따르면 신뢰 형성에 가장 중요한 단위는 가족입니다. (Putnam 2000) 그래서 일부 학자는 가족을 신뢰의 기본단위라고 부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성인이 될 때까지 가족 내에서 신뢰를 형성한다고 합니다. 가족 외에도 학교, 교외 활동 등을 통해 신뢰를 쌓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한 사람이 성장 과정에서 쌓은 신뢰 수준은 평생 유지된다고 합니다. 이는 성인이 된 이후 신뢰 수준은 잘 변하지 않음을 시사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한 국가의 신뢰 수준을 높이려면 현재 자라나는 세대가 가정, 학교 등에서 기성세대보다 높은 신뢰 수준을 쌓을 때만 가능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처한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한국의 경우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사회조사로 살펴본 청년의 의식변화’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19~34세 청년은 결혼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비중은 2012년 56.5%에서 2022년 36.4%로 줄었습니다. 그리고 “결혼하더라도 자녀를 가질 필요 없다”는 응답은 53.5%로 나타났습니다. 즉, 우리나라 청년세대는 자발적으로 사회적 관계의 확대를 원치 않고 자기중심적인 삶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신뢰의 근간인 가정의 토대가 단단하지 않다면 학교와 교외 활동을 청년 세대의 신뢰를 형성해야 합니다. 그런데 한국 사회에서는 언제부터인가 학교에서 인성 교육을 기대하는 것은 비현실적인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청소년의 교외활동은 입시와 관련된 활동 외에는 매우 제한적이라는 점에서 교외 활동에서 신뢰를 학습한다는 점 역시 기대할 수 없습니다. 미국의 경우 신뢰 측면에서 특기할 내용의 하나가 홈스쿨링입니다. 2022년 기준 미국에서는 430만 명이 홈스쿨링을 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코로나 이후 홈스쿨링이 급격히 늘기는 했으나 전문가의 견해에 따르면 이런 홈스쿨링 추세는 당분간 수그러들지 않을 것이라 합니다. 미국 부모가 홈스쿨링을 선택한 이유는 안전한 환경 제공(25%), 나쁜 학업 품질(14.5%) 순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이런 문제가 단기간에 해소될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미국인의 홈스쿨링 증가세를 막지 못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홈스쿨링은 사회적 연계보다는 개인 중심의 가치관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신뢰의 관점에서는 도움이 되지 않아 보입니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현재 및 미래에서도 신뢰 수준의 향상을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그렇지만 이는 평균적인 추세입니다. 물론 책임감을 지닌 정책 당국이라면 미래 세대의 더 나은 삶을 위해 신뢰 구축을 위한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개인 차원에서는 평균적인 추세가 비관적일지라도 각자는 가족, 친구 및 이웃과 친밀한 관계 속에서 신뢰를 쌓고 행복한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지금은 각자도생의 시대입니다.      


Forget Averages. Focus on Individuality.     


참고문헌      

통계청 (2023) 「사회조사」로 살펴본 청년의 의식변화, 2023. 8.28   

Gunnar Lind Haase Svendsen, Gert Tinggaard Svendsen, Peter Graeff (2012), Explaining the Emergence of Social Trust: Denmark and Germany, Historical Social Research / Historische Sozialforschung · January 2012     

Robert Putnam (2000), Bowling alone: the collapse and revival of American community, Simon and Schu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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