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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명호 Dec 21. 2023

포퓰리즘 이야기 (1)

세계화, 분노, 경제원리

그동안 브런치에 행복 관련 글을 10여 개 올렸네요. 그러면서 행복을 소득, 불평등, 신뢰, 마음 챙김, 저출산, 불확실성, 음식, 술, 시간 선택 등과 관련하여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들 주제는 그동안 공부했던 내용으로 이제는 행복과 관련해서는 쓸 거리가 다 떨어졌네요. 그래서 이제부터는 글쓰기 주제를 넓혀보고자 합니다.      


2024년은 한국, 미국, 러시아를 포함해 주요 국가에서 선거가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선거 때마다 포퓰리즘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당분간은 포퓰리즘 주제를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이 주제는 다소 난삽해 보이지만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이유에서 흥미를 끕니다.      


첫째는 겉보기에 멀쩡해 보이는 나라에서 어떻게 포퓰리즘이 그렇게 성행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지구촌에서 비교적 양식이 있다고 여겨지는 스웨덴과 핀란드 같은 북구 국가뿐 아니라 네덜란드, 독일, 프랑스 등에서도 포퓰리즘을 표방한 정당의 입지가 매우 강화되었습니다. 이탈리아에서는 멜라니 총리가 포퓰리즘 정당인 형제당 출신입니다. 그리고 시장경제를 오랜 기간 주도했던 미국과 영국에서도 포퓰리즘의 흔적은 여전합니다. 자국 우선주의, 보호무역주의, 반이민 정책을 주도했던 트럼프 대통령과 브렉시트를 주도했던 존슨 총리 역시 포퓰리즘 정책의 전형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들 나라는 어떻게 포퓰리즘에 넘어갔는지 알아보고자 합니다.     


둘째, 역사적으로 포퓰리즘은 19세기 후반 금본위 제도에 대한 미국 농민단체의 반발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금본위는 정부 개입 없이 시장 원리에 입각해 운영된다는 점에서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이 선호하는 제도로 대공황 당시까지는 국제금융 질서를 주도했습니다. 그런데 19세기말에 금본위로 인해 고통을 받았던 미국의 농민 집단이 금본위 제도의 폐지를 주장했고, 이런 농민의 움직임을 당시 포퓰리즘으로 불렀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포퓰리즘은 이념성이 얇다는 점에서 좌파 또는 우파 이념과의 결합이 쉽습니다. 그런데 좌파, 우파 포퓰리즘의 공통점은 모두 경제원리를 비난한다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경제원리의 근간에는 경쟁이 있고 경쟁의 결과 시장 참여자는 승자와 패자로 구분되기 때문입니다. 포퓰리즘은 다수인 패자의 입장에서 기존 질서를 부정하고 뒤엎을 것을 주장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경제원리는 포퓰리즘의 장벽을 넘어설 수 있을지 살펴보려고 합니다.      


포퓰리즘은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특정한 정치색이 없이 일반 대중이 원하는 것을 제공함으로써 그들의 지지를 얻으려는 정치행위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포퓰리즘은 어떤 형태의 정치 이념과도 양립이 가능합니다.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와 같은 남미 국가에서는 좌파 정권의 포퓰리즘이 주된 형태이었다면, 선진국에서는 우파 정권의 포퓰리즘이 일반적인 유형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포퓰리즘은 1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녔지만 포퓰리즘 논쟁을 전 세계적으로 촉발시킨 분은 역시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일 것입니다. 그가 대통령으로 취임했던 2017년 캠브리지 사전은 올해의 단어(the Cambridge Dictionary 2017 Word of the Year)로 포퓰리즘을 선정하였습니다. 트럼프에 이어 포퓰리즘 정치인으로 명성이 자자한 분은 영국의 보리스 존슨 수상일 것입니다. 그는 일자리 및 이민 문제로 불만이 커진 영국인에게 EU 탈퇴가 만병통치약인 듯 약장사를 하면서 브렉시트를 주도했던 인물입니다. 전통적인 개방국가이었던 네덜란드에서의 선거 결과가 국제사회에 놀라움을 안겨 주었습니다. 2023년 11월 선거에서 이슬람 혐오자인 헤이르트 빌더러스(Geert Wilders; 네덜란드 발음이라 제각기 부르는 방식은 다른 것 같아요)의 자유당이 다수당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같은 달 아르헨티나에서는 하비에르 밀레이는 하이퍼 인플레이션에 시달리는 국민에게 중앙은행 폐지, 공기업 민영화, 정부 지출 절반 삭감 등 실현 불가능한 공약을 내세워 대통령에 당선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들 네 분의 가장 큰 공통점이 무엇일까요?


우선 이들의 외모를 보시면 놀라울 정도의 유사성을 발견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왼쪽부터 트럼프, 존슨, 빌더러스, 밀레이

이들 외모는 독특한 헤어스타일을 공유합니다. 그렇지만 이들의 헤어스타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파악하는 것은 쉽지 않네요. chatGPT에게 헤어스타일과 성격 간 어떤 관계가 있는지 물어봤습니다. 모범답안을 제공하려고 애쓰는 chatGPT에 따르면 헤어스타일은 개인 특성을 표현하는 한 단면에 불과하므로 헤어스타일만 갖고 한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고 신중한 답변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다음으로 사주와 관상 관련 사이트에서 헤어스타일과 성격의 관계를 알아봤습니다. 여기서도 헤어스타일과 성격을 직접 연결하지 말라는 일반적인 답변을 제공하네요. 결국, 헤어스타일과 성격 또는 정치적 성향을 직접 연결시키기는 것은 성급한 판단이라는 점을 확인했지만 위의 사진에서 보시는 바와 같이 이분들이 뭔가 남다르다는 점만은 확실해 보입니다.


 그렇다면 이분들은 어떤 점에서 특이한지 이들이 주장하는 내용을 통해 내면의 특징을 알아보고자 합니다. 포퓰리즘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제도권에서 소외당한 일반 국민을 대변한다는 점입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포퓰리즘의 대상은 특정 계층, 특정 지역, 특정 직업 집단이 아닌 소외당한 일반 국민이라는 점입니다. 그런데 일반 국민이 고통을 받는 이유는 매우 단순합니다. 제도권의 부패한 엘리트 집단이 자신의 이익에 부합한 정책 또는 정치를 하므로 일반 국민은 경제적으로 어려워지고 문화 또는 가치관 측면에서 제도권의 엘리트로부터 소외를 당한다는 것입니다. 문화 또는 가치관 측면에서는 낙태를 허용하고 동성 가족을 인정하는 행위는 기독교를 근간으로 하면서 가족을 중시 여기는 사람들에게는 일종의 재앙으로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서구에서는 19세기 중반 이후 제조업의 번성과 더불어 무역과 금융이 빠른 속도로 발전하면서 오늘날과 유사한 수준의 세계화를 이루었습니다. 그중에서도 합스부르그 제국은 세계화에 앞장서고자 했습니다. 개방과 개인주의를 근간하는 하는 자유주의 정책을 주도했던 합스부르그 제국의 신흥 엘리트는 유대인이었습니다. 세계화는 소비자에게 다양하고 값싼 물건을 제공함으로써 소비자의 후생 수준을 향상합니다. 반면, 농민, 소상공인, 자영업자, 때로는 지주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낮은 경쟁력으로 삶의 터전을 잃게 됩니다. 피해를 당한 사람들은 세계화와 이를 지지하는 엘리트와 기업인을 원망할 것이고 정치 집단은 세계화를 비난하면서 세계화에 동조하는 엘리트를 비난하는 정당을 만듭니다. 그리고 이런 과정에서 파시즘 정당이 출현했습니다.      


미국에서 19세기말 포퓰리즘 정당이 처음으로 탄생한 배경 역시 세계화 추세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19세기말이면 농산물 역시 국제교역이 활발히 이루어집니다. 농민은 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아 농사를 짓고 농산물을 판 돈으로 은행 대출을 갚아야 합니다. 그런데 농산물 시장의 개방으로 값싼 남미 및 호주의 농산물 수입은 농민에게는 부담으로 작용합니다. 당시 세계화의 근간을 이루었던 국제금융질서는 금본위제도입니다. 금본위제도는 물가가 금의 양에 의해 결정됩니다. 그런데 금 생산 속도보다 상품(농산물) 생산 속도가 더 빠르다면 금 값은 더 비싸질 수밖에 없습니다. 농민은 더 비싸진 금값과 높은 이자를 감당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당시 미국의 농민 집단은 금본위가 아닌 은본위와 불태환지폐의 발행을 요구합니다. 미국의 엘리트는 세계화의 근간인 금본위제도를 유지합니다. 그러므로 농민의 입장에서 보면 세계화 기업에 매수당한 엘리트들이 기존 제도를 방어하고 자신들은 부패한 엘리트 때문에 희생당했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이런 배경에서 포퓰리즘이 최초로 등장합니다.    


포퓰리즘은 태생적으로 일종의 분노에서 출발합니다. 착하고 순진한 ‘우리’는 사악하고 부패한 ‘저들’ 때문에 경제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피해자가 되었음을 원망합니다. 여기서 피해자의 대부분인 '착한 우리'는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살고자 했으나 세계화 또는 AI 등으로 인해 세상에서 낙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탓합니다. 이같이 포퓰리즘은 국민의 원망, 분노, 적개심을 먹고 자랍니다. 그리고 포퓰리즘의 지도자는 이들 국민에게 순진한 당신들이 힘든 이유는 부패한 저들 (엘리트와 제도권에 속한 사람) 때문이라 비난합니다.      


사회의 진화과정을 보면 어떤 시기에도 시대를 앞서가는 집단과 뒤처진 집단이 존재합니다. 그런데 어떤 시기에는 이들 집단이 공존한 시기도 있었지만 또 다른 시기에는 적대적인 관계이었던 시절도 있습니다. 앞으로는 과연 어떻게 하면 소위 말하는 엘리트 집단과 소외 집단 간 평화적인 공존이 가능할지를 알아보려고 합니다.      

오늘은 100년 전 한 시인이 느꼈던 당시의 사람들 간의 갈라진 모습을 표현한 시를 소개하는 것으로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

Things fall apart; the centre cannot hold;

Mere anarchy is loosed upon the world,

The blood-dimmed tide is loosed, and everywhere

The ceremony of innocence is drowned;

The best lack all conviction, while the worst

Are full of passionate intensity.     

--W. B. Yeats, "The Second Coming" (1919)     


(...)

세상이 무너져 내린다. 중심은 지탱할 수 없다.

무질서만이 세상을 뒤덮어 가고,

피에 물든 물결은 넘쳐나, 어디서나

순수한 의례를 함몰시킨다.

가장 선한 자들은 신념을 잃어가고,

가장 악한 자들은 격렬한 열정에 차 있다.

-- 예이츠, 재림(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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