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 실패 후 3개월 간의 치열한 기록
4월 중순, 생일 축하를 위해 오랜만에 제일 친한 동생들을 만났다. 이전엔 음악 팀도 같이 했고 자주 만나던 사이였는데, 어느새 각자의 삶으로 바빠지더니 이젠 만나는 날 정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그래도 어떻게 시간을 내서 모여 보드게임 카페도 가고, 피자도 먹고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후 자연스레 맥주를 한 잔씩 하며 대화를 하다 한 명이 내 근황을 물어봤다. 나는 늘 블로그에 근황을 올리니 "블로그 보지 않았어?" 라고 물었는데, 의외의 대답이 돌아온다. "처음 몇 줄 읽었는데, 우울한 내용이라서 안 읽었어." 그 자리에선 아무렇지 않았지만, 집에 돌아오니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나름 사실대로 적은건데, 그냥 내 인생이 우울한건가?', '아무리 친한 사이여도 이런 이야기는 듣고 싶지 않아 할 수도 있구나...' 등.
본질적인 의문이 들었다. '나는 왜 블로그에 글을 쓰는걸까?', '누가 글을 보길 바라며 쓰는 걸까?', '이런 내용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으면 어떤 내용을 써야 할까?' 고민이 길어지니 자연스레 주제를 고르는 것부터 망설이게 되고, 점차 글을 쓰는 것도 멈추게 되었다.
그렇게 글쓰기로부터 멀어지던 어느날, 아내와 함께 산책하는 길에 이 얘기를 하게 되었다. 그러자 아내는 "굳이 그런걸 신경 쓸 필요가 있나? 그리고 나는 항상 글이 희망적으로 마무리돼서 좋던데!" 라고 반문을 한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에 정리가 됐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은 글을 예쁘게 꾸미는 게 아니라, 마음을 더욱 굳세게 먹는 것이다.
여하튼 이런 사정도 있고, 준비할 것도 많았고, 희망적인 소식을 전하고 싶어 상황이 정리되기를 기다렸다 글을 쓴다.
3월, 치열한 취준 끝에 겨우 들어간 회사에서 2주 만에 도망쳐 나온 뒤, 처음으로 '꿈'이 없는 순간이 와버렸다. 오랜 시간 해온 음악도, 개발자도, 데이터 분석가도 이젠 내 꿈이 아니었다. 갓 결혼한 나는 누구보다도 직장이 필요한데, 마음이 착잡했다. 사실 그 순간 가장 힘든건, 내 기분이 어떻든 간에 '다시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었다. 절망조차 사치였다. 하루 이틀 마음을 추스르고 바로 다음 목표를 탐색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작년 계획대로 개발자 교육을 찾아봤는데, 괜찮은 교육들은 있었지만, 개발 시장 자체가 진입자에게 레드오션이 되어서 고민이 됐다. 게다가 이미 작년에 AI 쪽 교육에서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으니 더 신중해질 수 밖에 없었다. 조사와 고민을 반복하다 결국 IT계열에서 일하고 계시는 장인어른께 연락을 드렸다. 이전에도 간단한 고민 상담 정도는 했었는데, 이번에는 진지한 진로 상담이었다.
장인어른께서는 '간절하게'라는 키워드와 함께 이전에 말씀하신 기업용 소프트웨어 전문 개발자(SAP)를 추천하셨다. 분야가 좀 폐쇄적이라 범용성이 떨어진다는 생각에 망설이고 있는데, 말씀을 듣고 조사를 해보니 생각보다 꽤 괜찮았다. 취업률도 높고, 폐쇄적이고 배울 기회가 적은 만큼 더욱 경쟁력도 생기고, 학력도 많이 보지 않고, 무엇보다 무료로 (심지어 돈을 받으며) 배울 수 있는 국비지원 교육과정이 있었다!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회사를 관둔지 1,2주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마음이 정해지니 할 일도 명확해졌다.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교육과정 모집 마감까지 2~3달 정도 시간이 있었고, 나는 저번 취준 때처럼 자격증,경력란을 텅 비워놓을 생각이 없었다. 내가 세웠던 목표는 다음과 같다.
- 교육과정에 합격하기 위한 자소서 작성, 기술 및 인성면접 준비
- 회계 관련 지식을 위해 전산회계 2급 자격증 따기
- 데이터를 다루기 위해 SQLD 자격증 따기
- 과정을 수월하게 공부하기 위해 프로그래밍 언어 공부하기 (Javascript 등)
- 증명할 수 있는 영어 실력을 위해 토익 공부하기
- 과정 중엔 돈을 벌 수 없으니 아르바이트 미리 해두기
두 세달만에 사람이 이걸 다 할 수가 있냐고? "있다." 나 스스로는 힘들었겠지만 가족들의 응원과 위기감, 책임감 덕에 가능했다. 지난 두 세달 동안 나는 아침 7시 반에 일어나 토익 단어를 단어장에 옮기고, 공장으로 출근하는 버스 안에서 단어를 외웠다. 그리고 9시부터 5시까지 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쉬는 시간에도 단어를 외웠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교육과정, 전산회계, SQLD, 프로그래밍을 번갈아가며 공부했다. 쉽지 않았다. 그래도 바쁘게 지낸 덕분에 우울함도 많이 가셨고, 모든걸 완수하고 나니 자존감도 많이 회복되었다.
결과를 얘기하자면, 잘됐다. 자격증 시험들은 무난하게 잘 치뤘고, 토익 단어장도 벌써 두바퀴째 정주행 중이며, 아르바이트도 나름 잘 마무리했다. 그중 가장 힘들었던 건 교육과정 준비였다. 경쟁률이 4~5:1, 혹은 그 이상 되었다고 한다. 서류면접부터 기술면접, 인성면접까지 세차례나 면접이 이어졌고, 매번 발표가 나는 날마다 나는 간절함에 피가 말렸다. 최종 발표 전 날에는 숨도 제대로 못쉬었다. 발표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카톡을 보는데 관련 톡방에 몇백개 카톡이 쌓인 것을 보고 직감했다. '결과가 나왔구나...!' 떨리는 마음에 메일을 확인하니, 합격이었다! 힘이 쫙 풀렸다. 곧바로 주말에 SQLD 시험이 있어 공부하느라고 온전히 즐기진 못했지만, 간만에 격한 해방감을 느낀 것 같다.
되돌아보니 힘들긴 했지만 보람찬 시간들이었다. 아르바이트도 중간에 코로나도 걸리고, 몸을 쓰는 일이라 힘들긴 했지만 동료로 또래 친구들을 만나며 위로도 받고, 자극도 많이 받았다. 아내와 가족들도 내가 노력할 수 있도록 든든하게 도와줘서 너무나도 고마웠다. 이렇게 다시 목표가 생겼고, 그걸 이루기 위해 노력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하지만 방심하면 안되는 점이 있다. 사실 지금까진 교육과정을 '듣기 위한' 과정이었고, 앞으로 6개월 간 월~금, 9~6시까지 종각으로 출근을 해서 교육을 들어야한다! 뭐...지금까지 이런 상황도 버텨왔는데, 너무나도 감사한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마음을 다시 다져본다.
지난 몇개월 간은 심적으로도, 육체적으로 힘든 시기였다. 위에 얘기했던 친구들과의 만남도 그렇고, 전에는 아무렇지 않았던 것들이 구멍난 마음 사이로 비집고 들어와 끈적하게 나를 괴롭혔다. 그중에서도 가장 바닥을 찍었던 때는 생일 다음날 코로나에 걸렸을 때가 아닐까 싶다. 해야할 일은 많고, 알바도 하루라도 더 나가야하는데, 황금연휴 기간 동안 꼼짝없이 집에만 갇혀있었다. 그러나 정작 나를 가장 괴롭힌 건 코로나가 아니었다.
올해 초 북적댔던 집들이를 뒤로 하고, 4월 중순에 위에 친구들을 만난 것 말고는,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아니 만날 수 '없었다.' 위에 얘기한 계획들을 실현시키기에도 시간이 모잘랐다. 당장에 아내와 데이트도 제대로 못했으니...그러다 보니 뭔가 점점 친구들과의 연결고리도 옅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낮아진 자존감 때문에 사소한 것에도 큰 의미를 두게 되고, 연락도 망설이게 되고, 이 상태로 누굴 만난다고 한들 우울한 얘기만 잔뜩 하게 될 것 같았다. 변화가 필요했다.
우선 마음부터 바꿔먹었다. 내가 아무리 욕심을 내도 결국 가져갈 수 있는 건 두 손에 쥔 것 뿐이다. 놓친 것들을 아쉬워하기보단 손에 쥔 것을 소중히 하는 법을 배우기로 했다. 여전히 날 찾아주는 이들에게 더욱 감사하고, 친구들과 만나진 못하더라도 연락부터 잘 해보기로 했다.
다음으로, 마음을 다잡는 방법을 상기하기로 했다.
이 영상이 마음을 다 잡는데 참 도움이 됐다. 그 중에서도 "꿈이란 것은 남에 비해 성공하는 것도 아니고, 남과 비교하는 것도 아니고, 남에게 자랑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꿈은 '나 스스로가 기특한 것'이다."라는 말이 참 와닿았다. 내가 겪었던 우울함은 그저 내가 생각한 세상의 잣대에 나를 비교해서 생긴 것이 아니었나 싶다.
그리고 요즘엔 책도 이것 저것 읽는데, 대부분 자기계발 관련 책이다. 대신, 이전처럼 능률적인 사람이 아니라 '행복한 것에 집중하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다. 즐거운 마음으로 책에서 제시한 방법을 하나둘씩 실험을 해보는 중이다. 공부를 어제는 1시간 반을 했는데 오늘은 30분 밖에 못했어도, 자책이 아니라 '총합 2시간'을 공부한 내 자신을 자랑스러워 하는게 더 좋은 것 같다. 한번에 확 바뀔 수는 없지만, 이런 식으로 하나둘씩 마음이 정리되고 있음을 느낀다.
지금의 나에게 있어 음악은 꽤 복잡 미묘한 존재다. 예전과 같이 좋아하긴 하지만, 마음껏 내 음악을 표현하고 싶다는 마음에 간혹 답답할 때가 있다. 여전히 나에겐 창작욕이 존재한다. 이걸 어떤 식으로 해소해야할 지 고민이 많았다. 처음엔 소설을 써보려고 했는데, 뭔가 생각보다 어려움이 많았다. 중학교 때 소설가가 되고 싶긴 했지만, 아직은 소설을 쓸만한 환경은 아닌것 같다.
그런 도중에 평소 자주 구경하는 힙합 사이트 게시판에서 팬 매거진을 만든다는 소식을 들었다. 괜히 일을 만드는 것 아닌가 해서 하루 이틀 혼자 고민해보다가 결국 연락을 했고, 팀에 합류하게 되었다. 나 나름대로 어떤 주제로 쓸 지 고민을 좀 하고 있었는데, 예상 외로 기회가 빨리 찾아왔다. 처음 써보는 종류의 글이지만, 생각보다 괜찮은 것 같다.
필명은 내 인스타 아이디에서 따와서 'WAVE'라고 지었다. 앞으로 칼럼 형식으로 여러 글을 쓸 것 같다. 재밌게 봐주시고, 피드백도 마음껏 해주시면 좋겠다!
전문을 보고 싶은 이들을 위해 구글 드라이브 링크와 구독 페이지를 첨부한다. 월간으로 힙합,알앤비 이슈를 다루니 많관부!
https://drive.google.com/file/d/10mUIJXD6Z20h0ys_PVKTYlSOOdmKijYS/view
https://khlhomofficial.gumroad.com/l/issue1
몇 달전, 호기로운 마음으로 운동을 다시 시작했다. 하지만 자꾸 걷거나 뛸 때마다 이유 모를 무릎 통증이 생겨 이내 운동을 중단할 수 밖에 없었다. 한의원도 가보고, 물리치료도 받아보고 해봤으나 치료 또한 지지부진했다. 한참 고민한 끝에 내가 내린 결론은 '자세가 잘못됐다!'는 것이었다. 자세를 교정해야겠다는 생각에 유튜브를 뒤적거리기 시작했고, 이내 적절한 영상을 찾아서 '제대로' 걷는 방법을 다시 익히기 시작했다. 열심히 따라하고 있는데, 생각해보니 영상을 보며 집 안을 빙빙 돌고 있는 내 모습이 제법 웃겼다. 29살에 다시 걷는 법을 배운다니! 하지만 그 기초적이고 단순한 행동들이 쌓여서 내 무릎에 데미지를 주고 있었던 걸 생각하면 마냥 웃을 수는 없는 노릇이였다.
어쩌면 꿈을 잃은 내게 가장 필요했던 건, 단순하게 '다시 걷는 방법'인지도 모른다. 내가 살아오며 뻗었던 무심한 발걸음에서, 이젠 조금 더 정성껏 한 발씩 걸어나갈 때가 온 것 같다.
+) 티스토리에 동시 연재 중! 과거 글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