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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피엔스적 Aug 17. 2023

prologue 01. 담배

'참을 수 없는 가벼운 존재'

Edward Hooper 'A woman looks pensively out of a hotel room’s unseen window'


“담배 좀 있다가 필 수 없어?”

 

어릴 때 보던 영화 속 모텔의 싸구려 느낌은 사라졌지만, 조명을 가린 채 내게 등을 보이고 있는 저 사람의 뒷모습은 이곳이 마치 싸구려 여관처럼 느끼게 한다. 알몸으로 침대에 걸터앉아 다리를 벌린 채, 가끔 오른손 손가락에 끼워진 담뱃재를 탁상 위 재떨이에 툭툭 터는 모습. 희멀건 연기가 얼굴을 둘러싸고 번지는 모습. 어스름하게 켜둔 화장실의 불빛에 드리워진 그 사람의 그림자가 내 얼굴에 떨어지는 모습.

 

“뭐 어때.”

 

정말 뭐 어떠냐는 듯, 신경 쓰이는 게 하나도 없다는 심경을 단 세 글자로 표현해 내는 능력에 감탄이 나올 뻔했다. 이 사람, 정말 방금 전까지 뜨거웠던 사람이 맞을까.

 

“담배 펴도 괜찮다고 했잖아.”

 

“피는 게 괜찮다고 한 거랑, 지금 펴도 되는 거랑은 다르지.”

 

“지금?” 그는 또다시 아무런 동요 없이, 정말 궁금하지는 않다는 게 절실히도 느껴지게 소리를 냈다. 물음표가 붙어 있지만 ‘지금이 무슨 뜻이야’라는 물음보다는, ‘지금이란 걸 생각할 필요가 있냐’라는 대답에 가까운 소리다.

 

‘그래, 지금’ 이라고 대답을 할까 하다 말았다. 다음에 이어질 또 다른 대답이 두려우니까.

 

그에게 지금은 그냥 성욕이 해소된 개운한 순간인 걸까. 예전에 만났던 사람이 그렇게 말했던 적이 있다. 운동을 하고서 담배를 피우면 니코틴이 몇 배는 잘 스며드는 것 같다고. 온몸의 힘을 쏟아내고서 개운한 순간에 스며드는 니코틴의 감각이 좋아서 담배를 끊을 수가 없다고. 내 불만의 원인은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만 만나온 나에게 있는 걸까.

 

“갑자기 무슨 소리야.”

 

그는 나를 쳐다보지 않고서 담배꽁초를 재떨이에 문지른 후 화장실로 향했다. 곧이어 물줄기 소리가 들린다. 이럴 땐 참 깔끔하게도 잘 씻는 사람이다. 방금 있었던 우리의 흔적을 지우고라도 싶은 거처럼, 남겨두면 새겨질까 두려운 거처럼.

 

그가 화장실로 들어가면 난 할게 없어진다. 묘한 타이밍. 혼자 폰을 보고 있거나, TV를 틀거나, 뭘 하기에도 애매한 기분이 든다. 차라리 내가 먼저 씻으러 들어갈 걸 그랬나 싶지만, 언제나 선수를 뺏긴다. 왜 매번 내가 뒤처지는 걸까.

 

내가 먼저 선수를 칠 수 있는 일은 뭘까. 갑자기 빨리 이곳을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내가 앞서 할 수 있는 것 아닐까.


나름 신경 써서 고른 속옷을 다시 걸치고, 그가 좋아한다던 치마와 티를 입고서 빗으로 머리를 가다듬었다. 화장은 애초에 얇게 하고 만나기도 했지만 굳이 고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망가지지도 않아 대충 수습만 한다. 올이 나가버린 스타킹은 버릴까 하다 흔적을 남겨 두는 거 같은 찝찝함에 백에 넣어 버린다. 대충 정리하고 나니 들어올 때와 큰 차이가 나는 거 같지 않아 다행스럽다는 생각도 든다.


그가 나올 때까지 기다릴까, 인사라도 하고 가야 하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도 문득 들었지만 그러고 싶지 않다. 그 사람이 나에게 던진 말처럼, 나도 그를 신경 쓰지 않고 내 맘대로 하고 싶었다. 나는 빨리 여길 떠나고 싶다.

 

금요일 밤 11시. 불금의 밤을 이렇게 지나치는 게 아쉬울 수 있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무료하게 보냈다고 할 수 없는 이벤트였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거울을 보고 신발을 신고서 문을 열고 나가는 순간, 그가 물기를 털며 나온다.

 

“가는 거야? 오늘 같이 있는 거 아니었어?”

 

처음 듣는 당황한 말투.

 

“응, 나 갈게."

 

라고 말하며 닫히는 모텔방 문 뒤로 그의 말이 들린다.

 

“야, 너 번호도 안 알려 줬잖아! 우리 또 안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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