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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vn Jun 09. 2023

베트남에서 노마딩하기

쉬고 싶은 유목민을 위한 정류장, 다낭과 호이안

쉬고 싶은 유목민을 위한 정류장

베트남은 흔히 노마드들에게 짧게 머무는 여행지, 비자런 국가로 통한다. 옆나라 태국, 인도네시아에 방콕, 치앙마이, 발리 같은 각광받는 노마드 수도가 있는 데다가, 비자 발급이 상대적으로 까다로워 오래 머물기 어렵기 때문이다. 영어가 잘 통하지 않는 점은 덤.


그래서인가, 베트남 중부에 위치한 다낭호이안은 노마드계의 숨은 보석 같은 곳이다. 2주에서 한 달 정도 잡고 노마딩하기 좋은, 적당한 쉼터 같은 곳. 발리나 방콕보다는 여유롭고, 치앙마이보다는 할게 많고. 물가는 한국의 절반도 안 되는 수준에, 와이파이가 있는 카페가 많아 일을 하기에도 무리가 없다. 못해도 1-2천여 명의 노마드들이 12-1월쯤부터 몰리기 시작해 3-4월까지 피크 시즌이 이어진다(하노이나 호찌민시티보다도 인기가 많은 편).


나의 경우 절반은 호이안, 절반은 다낭에서 지냈지만, 두 도시가 차로 30-40분 정도 거리밖에 되지 않아 어디에 있든 두 곳 다 충분히 구경 가능하다. 여느 동남아 국가와 마찬가지로 이곳에서도 그랩으로 택시나 오토바이를 쉽게 잡을 수 있다. 혹은 스쿠터나 자동차, 자전거를 대여해 직접 돌아다녀도 된다. 숙소에서 렌탈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하고, 클룩으로 예약해도 되고, 도착해서 뚜벅이로 근처 렌탈샵을 찾아도 된다.


가깝지만 두 도시의 분위기는 확연히 다르다.



호이안, 따뜻하고 한적한 랜턴의 마을



한때 해상 무역이 활발했던 도시답게 남쪽 투본강 근처 올드타운에는 아기자기한 건물과 마켓들이 즐비하다. 프랑스 식민 시절 노랗게 칠했던 건물 벽은 현재까지도 그 관행이 이어져 호이안의 상징이 된 느낌이다. 테일러샵과 가죽 공방이 유명해 여행자들은 옷과 가죽 가방을 많이들 사간다.



낮 동안 근방 카페에서 일을 하고 있다 보면, 해가 질 쯤부터 곳곳에 환한 랜턴이 켜지기 시작한다. 뚜벅이로 걸어 다니며 랜턴 구경을 해도 좋고, 보트를 타고 강가를 한 바퀴 돌아보아도 좋고, 다리 건너 야시장에서 이것저것 주워 먹어도 좋다. 딱 호이안에 처음 온 며칠간은 이 풍경만 봐도 배가 부르고 흡족하다.


기왕이면 랜턴 페스티벌이 열리는 매월 음력 14일에 맞춰서 방문해도 좋다. 구경하는 사람들과 퍼레이드 행렬, 공연들로 투본강 일대가 한층 더 다채로워진다. 한국인 입맛과 통하는지 웬만한 베트남 음식들은 실패하지 않는다. 진짜 진짜 맛있음. 코코넛 커피, 에그 커피 등 커피 종류도 다양하다. 에어비앤비나 클룩에서 푸드 투어를 예약하면, 가이드와 함께 올드타운 일대를 돌며 곳곳에 숨은 현지 음식들을 체험할 수도 있다.


투본강과 북쪽 해변 사이 중간은 논밭 천지다. 토토로가 튀어나올 것 같은 농촌 한가운데 Hub Hoi An이라는 호이안의 유일무이한 코워킹/코리빙 스페이스가 있다. 노마드 커뮤니티에서 입소문을 꽤 타서 호이안이나 다낭에 오는 거의 모든 노마드들은 그곳을 거쳐간다. 비수기 시즌인 현재 분위기는 소수 정예 가족 공동체 느낌. 매일 오피스 옆 야외 테이블에서 커뮤니티 점심 식사가 열리고, 주중 저녁이나 주말에는 비치발리볼이나 농구를 하거나 당일치기 여행을 가기도 한다.


이런 파노라마 논 뷰를 바라보며 일을 하는 호사를 누릴 수 있다.
월요일 저녁마다 family meeting을 열어 멤버들끼리 이렇게 금주에 열 이벤트를 정한다.


Hub Hoi An 위쪽 해변가 일대에는 한적한 해수욕장과 카페, 레스토랑, 바들이 있다. 파도가 세지 않아 서퍼들도 없고 관광객들도 올드타운 돌기 바빠 잘 찾지 않는다. 발리에 사람 미어터지는 해변가만 가다 여기 오니 적응 안 될 정도로 한산했다(바닷가 전세 낸 날).


주의할 점, 호이안은 저녁의 도시다. 로컬들이 9-10시면 자는 얼리버드들이라, 웬만한 상점과 식당들은 진작에 문을 닫는다. 11-12시만 되어도 배달 가능한 음식점이 손에 꼽을 정도. 바도 올드타운 강 건너편 몇 군데 정도밖에 안 연다. 그러니 본인이 올빼미족에 파티피플이라면 오래 지낼 시 상당히 속상해질 수 있다.


미선 힌두교 사원 유적지, 코코넛 빌리지, 메모리즈 랜드 임프레션 쇼, 테달쇼 등 볼거리들이 넘쳐서 나의 경우엔 오히려 시간이 부족했다. 관광객이야 이 모든 걸 하루 이틀 만에 속성으로 끝내지만, 노마딩을 할 경우 일도 해야 하니 그만큼 스케줄을 느슨하게 잡을 수밖에 없다. 로컬의 전통이나 문화, 역사 체험에도 관심이 있다면 이런 액티비티들로 충분히 알찬 시간들을 보낼 수 있다.



다낭, 상반되는 매력이 공존하는 해변도시


다낭에 오면 촌구석 호이안보다는 좀 더 문명에 온 듯한 인상을 받을 수 있다. 어림짐작했던 이국적인 열대 휴양지보다는, 빌딩과 밭, 공원과 해수욕장, 인공 건물과 자연경관이 조화를 잘 이루고 있는 여유로운 '도시' 느낌이 더 강하다.



나의 경우 Nomadlist 지도를 참고해 My An 지역에 머물렀고, 결과적으로 매우 만족하며 지냈다. 가게들도 늦은 시각까지 문을 열고, 널찍한 카페들과 라이브 공연을 하는 바, 펍이 곳곳에 여럿 있다. 관광객이 너무 붐비는 곳을 사알짝 비껴가 평화로우면서, 해수욕장도 가까워 산책하기 좋다. 바다는 저물녘에도, 한밤중에도 물놀이를 하고 모래사장에서 하하 호호 수다를 떠는 인파들로 시끌시끌하다.


다낭의 노마드들은 주로 카페에서 일을 한다. 호이안처럼 대표되는 코워킹 스페이스가 없어, 노마드 커뮤니티에서 이따금씩 열리는 밋업을 통해 다른 노마드들과 교류한다. 코로나 터지기 직전까지 점점 트렌디해지던 추세였던 터라, 머지않아 제대로 된 코워킹 스페이스도 생기고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들어오지 않을까 싶다.


한국인 관광객이 워낙 많이 와서 그런가, 코리아 타운인가 싶을 정도로 한국어로 쓰인 스파, 식당, 마켓들이 많다(오죽하면 다낭시라고 부르겠냐고). 개인적인 소견으로는 다낭이 관광 측면에서 크게 특색 있는 도시라 느끼진 못했다. 핑크 성당이니, 마켓이니, 절이니 이런 건 솔직히 다른 지역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호캉스나를 즐기고 싶은 거라면 차라리 다른 동남아 섬으로 가겠다. 대부분의 관광객은 다낭에 머물며 호이안 당일치기를 하는데 나라면 그 반대로 할 듯싶다.


오히려 다낭은 단순 관광보다는 몇 주 정도 길게 머물러보기 좋은, liveable 한 도시다. 물가는 발리의 3분의 2 정도로 상당히 싼데, 도로가 널찍해서 걷기에도 편하고 운전하기에도 편하다. 그 4차선 넘어가는 아스팔트 도로에서 이따금씩 걸어 다니는 소를 목격할 정도로 자연친화적이다. 필리핀이나 태국에 비해 거리도 깨끗하고, 비슷한 분위기의 남미 해변 도시보다 훨씬 안전하다.


운 좋게도 다낭에 온 때마침 전 세계 8개 국가가 참여하는 국제 불꽃 축제가 열려 코워킹 스페이스 멤버들과 구경을 갔다 왔다(어쩌다 얻어걸린 축제). 다낭 주변 유명한 볼거리는 바나힐, 그리고 근교 랑코 베이와 후에 시티. 후에 시티를 갈 경우 가는 길에 경치 좋은 드라이브 코스로 알려진 하이 반 고개를 지나칠 확률이 높다. 시원하게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거나 드론 촬영을 하기 더없이 좋은 곳이다.


사람들 미어터지니 여기서 인생샷 찍겠다는 기대는 일찍 접는 게 좋다. 바나힐은 세계 최장 케이블카 타고 올라가 사람들 없는 곳 경치 구경하는 게 최고 재미다.






물가 싸고 인터넷 잘되고 볼거리 할거리 많은 환경은 필연적으로 노마드들에게 간택받을 수밖에 없다. 푸르른 논을 보며 해 질 녘까지 노트북 뚱땅거리다, 등불 환한 밤거리를 걷다가, 시원한 맥주 마시며 바닷가를 한 바퀴 돌고, 오픈 바에서 신나게 라이브 뮤직을 듣는. 여행을 통한 힐링이라는 게, 이런 일상의 소소한 여유가 아니라면 무엇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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