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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ji Jan 12. 2023

컨테이너 같은 곳이 이곳의 학교라고?

6개월의 시간이 준 소중한 경험, 단연 영어

밴쿠버에 도착하여 사흘째 쯤 아이들이 다닐 학교에 가봤다.

학교 가는 길도 익힐 겸 개학 전임에도 불구하고 학교에 가봤는데 방학 중이라 안에는 못 들어가고 운동장과 주변만 둘러보았다. 학교 건물을 보고 어찌나 실망스럽던지.. 그냥 가건물 같은, 컨테이너와 비슷한 자재로 만들어진 2층짜리 작은 학교 건물을 보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난다.


우리 아이들이 한국에서 다니던 학교는 예쁜 빨간 벽돌과 튼튼한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최신 장비를 갖춘 멋진 건물이었는데, 여름엔 더위를 걱정하고 겨울엔 추위를 걱정해야 할 것만 같은 이 건물의 첫인상은 진짜 별로였다. 아이들도 보자마자 '여기가 학교야?'라는 첫마디를 내뱉었고, 실망감을 안고 우리는 내려서 둘러보기로 했다.

건물 뒤로 돌아서는 순간.. 건물의 허술함 따위는 생각도 안 날 정도의 어마어마한 크기의 잔디밭과 놀이터가 눈에 들어왔다. 푸른 잔디는 인공으로 심은 것이 아닌 진짜 잔디였고, 축구 골대 사이의 거리는 정말 멀어 보였다. 아이들은 보자마자 그네도 타고 미끄럼틀도 타고 나무 놀이터를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면서 한 시간 정도 놀다가 왔다. 그 순간 또 드는 생각.. '아, 나 공부시키러 온 게 아니라 자연 속에서 뛰어놀게 하려고 온 거였지.., 건물이 쓰러져가든 무슨 상관이랴.. 이런 곳에서 아이들이 매일을 뛰어놀 수 있는데..'

학교에 처음 간 날 놀이터에서 한 시간을 놀았다.

한 달 정도 이곳에서의 적응을 마치고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얼굴엔 긴장감이 한가득 이었고 나도 정말 걱정이 되었다. 사실 우리는 6개월만 다닐 수 있는 지역으로 오느냐 지역을 선택할 수 있는 폭이 좁았고, 짧은 기간을 학생으로 받아 준 이곳은 밴쿠버 시내와는 조금 떨어진 외각이었다. 한국인들이 많이 오는 지역이 아니라 더 걱정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다행이기도 했는데 첫날 보니 한국인도 몇몇 보였다.

두 달 만의 개학이라고 반가운 마음에 조잘조잘 떠들고 있는 외국 아이들 사이에 껴서 아무 말도 안 하고 조용히 바닥만 보고 학교에 들어가기를 기다리는 아이들을 보자니 왜 이리 마음이 무거웠던지.. 그날 집에 와서 하교시간을 기다리는 내내 나와 남편은 아이들 걱정으로 다른 것은 하지도 않고 마냥 시간이 지나길 기다리기만 했던 것 같다.


하교 때 아이들을 데리러 갔는데 역시나.. 얼굴이 밝다. 정말 재미있었다며.. 아직 친구들 이름을 정확히 기억은 못해내지만 뭐 하고 놀았는지 아이들과 어울렸던 이야기를 조곤조곤 풀어낸다. 역시 경험자들이 하는 말은 진짜 진리구나.. 아이들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던 그 말.. 특히 어릴수록 말보단 몸으로 노니 걱정 안 해도 된다는 그 말.. 여기 학년 체계가 한국보다 6개월이 빨라서 한국보다 1년 많은 3, 5 학년으로 들어갔는데 다행히 학업은 한국의 2, 4 학년보다 수월한 듯했고 그래서 감사하게도 학교 수업은 힘들지 않다고 했다.

개학 날 아이들을 맞이해 주는 학교


첫 경험은 늘 떨리고 두렵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나니 이후에는 아이들도 마음 편하게 학교를 갈 수 있었고 우리 부부도 아이들이 학교에 가면 우리 시간을 즐길 수 있었다. 다닌 지 한 달도 안 되어서 둘째는 친구 집에도 초대를 받고, 큰 아이는 동네에서 반 친구를 만나 농구도 하고 필드하키도 즐겼다.


사실 6개월만 학교를 다닐 예정이라 더 편하게 학교에 다닐 수 있었던 것도 있다. 학교에서 높은 성적을 받을 필요도 없었기에 학업 상관없이 학교는 그냥 재미있게 놀다 오면 되는 곳이었고, 실제로 학교가 지향하는 것도 그런 것이었다. 매 쉬는 시간과 점심시간에는 운동장에 나가서 놀아야 했으며, 비 오는 날, 눈 오는 날도 예외는 없었다. 큰 아이는 처음에는 같은 반에 있는 한국 친구와 먼저 친해졌으나 (한국말이 편해서 그런 것 같다.) 시간이 지날수록 현지 친구들이 더 많아졌다. 그러면서 아이들은 자연스레 영어도 습득하게 되었고 어느 순간이 되니 그냥 영어로 대화하는 것이 편하다는 얘기를 했다.


정말 바라던 바였다. 자연스러운 언어의 노출. 한국에서 큰 아이는 잠꼬대도 영어로 할 만큼 영어에 대해 거부감이 없는 아이였지만 둘째는 아니었다. 영어로 말하는 걸 부끄러워하고 영어는 공부라 느껴, 하기 싫어하는 모습도 보였었다. 그런데 여기 와서 크게 달라진 점이 있다면 단연 둘째의 생각이다. 영어를 공부가 아닌 그냥 의사소통의 수단이구나를 느끼게 된 것 같다. 한국어로도 말이 많은 성격의 아이는 아니지만, 이제 학교에서 친구들과 하는 대화 정도는 부담이 없이 말을 하고 있었다.


사실 6개월의 짧은 기간으로 아이들의 영어가 얼마나 큰 발전이 있었을까?

한국에서 학원을 다니는 게 훨씬 아이들의 영어 공부에는 큰 발전이 있었을 것이다. 내가 이 짧은 기간에 얻은 건 아이들의 다른 언어를 받아들임에 대한 자세와 생각이다. 실제로 영어의 어휘가 늘어났다던지 표현이 풍부해졌다던지.. 그런 건 잘 모르겠다. 하지만 영어가 그냥 일상이 되고 자연스러워진 것만은 확실하다.


큰 아이가 한국에 돌아가서 한 반년쯤 지났을 때 이런 말을 해서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엄마, 캐나다에서는 내 생각을 그냥 바로 영어로 말을 했는데 한국에 오니 이제 점점 내 말을 한국어로 머리로 생각했다가 그걸 영어로 바꾼 후 말을 하게 돼. 한국에 와서 그렇게 되어버렸어"


초등학교 5학년의 생각이다. 이 어린아이도 이걸 느꼈던 것이다.

지나고 나서 더 크게 와닿았다. 그 짧은 경험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크고 소중한 경험이었는지.. 나는 몸으로 부딪혀 보는 게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 정말 반가운 말이었다. 이걸 느껴봤으니 영어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마음가짐이 바뀌었으리라 확신한다.

그래서 그랬을까? 아이들은 한국으로 돌아가자마자 다시 캐나다로 가고 싶다고 계속 얘기했고 (물론 영어를 공부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얘기한 것이 아니란 건 잘 안다. ) 그래서 한국으로 컴백 후 1년 만에 다시 캐나다로 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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