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의 멕시코 여행을 마치고 오늘 새벽 1시쯤 집에 도착했다.
작은 배낭 하나씩 메고 떠난 미니멀 여행. 여행에는 정말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했다. 돌아오는 길에 가방에 더해진 건 면세점에서 아들을 위해 산 향수 하나뿐이었다.
보통 여행 마지막 날이면 아쉬움이 크게 남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일이 반갑지 않기 마련인데 이번 여행은 달랐다. 이상하게도, 내가 매일 살아가는 일상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이 좋았다.
365일 여름이 이어지는 뜨거운 태양 아래도 물론 매력적이지만, 비록 겨울이 길더라도 사계절을 온전히 느끼며 사는 삶이 얼마나 감사한지 새삼 깨달았다. 많은 캐네디언들이 살고 싶어 하는 밴쿠버와 빅토리아에서 온 관광객들이 흐리고 비 오는 자신의 도시를 피해 남쪽으로 왔다고 말하는 걸 들으며, 사람들은 늘 자신이 가진 것보다 다른 무언가를 찾아 떠나고 싶어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멕시코에 머무는 동안 에드먼턴에는 첫눈이 제법 내렸다. 그 한기, 모기 한 마리 없는 청량한 공기가 문득 그리웠다. 오늘 새벽 택시에서 내리는 순간, 집 앞 잔디밭과 지붕 위에 소복이 내려앉은 눈이 그렇게나 반가울 줄이야.
리조트에서의 프로그램도 즐겁고, 잠시 마음을 비우게 해주는 휴식도 좋았다. 하지만 바쁜 회사일 속에서 사람들과 부딪히며 하루하루 살아내는 나의 일상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음에도 감사했다. 날마다 일하고, 또 돈벌 수 있는 직장이 있다는 건 생각보다 큰 축복이다.
이제 대학교 4학년이 되어 우리 손이 거의 필요 없는 아들. 하루에 중간고사를 네 개나 치르느라 힘든 일주일이었다며, 새벽까지 엄마 아빠를 기다리고 있었다. 작은 향수 하나에도 기뻐하며, 우리가 일주일 동안 먹은 음식들을 꼬치꼬치 묻는 아들이 있는 집. 내가 머리를 기대고 자던 베개와 이불이 놓인 침대, 때로는 나와 하나가 되는 거실 소파. 모든 것이 다정하게 나를 맞아주었다.
그리고 일주일 동안 혼자 지내는 영진이를 늘 챙겨준 옆집 언니. 돌려드려야 할 반찬통만도 여덟 개다. 엄마가 있어도 이렇게 챙겨주기 쉽지 않은데, 영진이가 계속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 이런 귀한 이웃이 있다는 것도 감사한 일이다.
이번 여행 내내 모든 일정과 속도를 나에게 맞춰 준 남편. 함께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늘 그렇듯 내 곁에서 버팀목이 되어줄 사람이 있다는 건 말로 다 할 수 없는 위로다.
그리고 삼 개월 전 무지개다리를 건넌 사랑하는 돌돌이. 그 아이를 매일 산책시키고 돌볼 필요가 없었기에, 남편이 나와 함께 온전히 떠날 수 있었다. 어쩌면 이번 여행은, 돌돌이가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남겨준 선물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