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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맨부커 Feb 13. 2024

그래요. 나는 교육행정직 공무원입니다.

나는 네가 오늘 아침에 한 일을 알고 있다.

감기증세가 있는 딸을 병원에 데려가기 위해 조금 일찍 조퇴를 해서 유치원으로 갔다. 평소처럼 얌전하게 학부모 대기공간에 서있었다.


잠시 뒤에 딸의 손을 잡고 나오는 담임선생님의 얼굴에는

찐 웃음이 가득했다.  오늘 무슨 좋은 일이 있으시나? 텐션이 좋으신데~ 생각하려던 찰나였다.


아버님 안녕하세요 ㅎㅎ 오늘 공주님이 기분이 안 좋아요. ㅎㅎㅎ 선생님은 잠시 말을 잇지 못한다. 겨우 숨을 고르고 난 뒤 ㅎㅎㅎ 간신히 말을 하신다. ㅎㅎㅎ 아빠가 오늘 아침에 엄마 양말을 신겨 줬다고 하네요. ㅎㅎㅎ 숨이 넘어가신다.  네에? 나는 순간 머리 회전이 빨라지고 유체이탈을 경험하며 아득한 기억 저편 아침 상황으로 돌아간다.

가만있어보자. 그래 아침에 뭔가 양말 신겼을 때 조금 이상하긴 했어.  뭔가 산타클로스 양말처럼 공간이 많이 남더란 말이지~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요즘 애들 유행하는 스타일인가 했지. 엄마 양말이라고는 전혀 생각도 못했네~ (참고로 아침마다 입을 옷과 양말은 와이프가 소파에 미리 준비해 두고 나는 딸에게 입히는 담당이다.)


~ 맞네요~~ 아침에 양말이 약간 이상하긴 했어요 ㅎㅎㅎ

담임선생님과 나는 서로를 쳐다보며 활짝 웃는다.

암튼 이런 기분 좋은 깜짝 이벤트?? 는 보약이다.

자주 있으면 안 되겠지만...ㅎㅎㅎ

오후 3시,  학부모와 선생님의 관계 이전에 고단했던

두 직장인의 하루 피로가 찐~웃음소리에 실려 저 멀리 사라진다.


인사를 하고 나와 딸아이를 차를 태우고 나서야 묻는다.

공주님 오늘 아빠 때문에 기분이 안 좋았어요?

아니야, 괜찮아, 아빠도 실수한 거잖아, 다음에 잘하면 되지.

ㅋㅋㅋ 그래 참 많이 배운다. 부모도 자식 덕분에 성장한다.

 

딸아이는 아침 유치원 등원 버스에 내리고 나서 신발을 벗고 교실로 들어간 순간부터 양말이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고, 그 후로는 걷기에도 다소 불편하고 움직일 때마다 신경이 쓰였을 것이다. 친구들이 한마디 했을 수도 있고~

한창 떼쓸 나이에  하루 종일 아빠를 원망하는 마음이 들 수도 있는데  불구하고 딸아이는 그런 아빠를 쿨하게 용서해 줬다.


직장에서 업무 처리할 때, 우리는 상대방이 내가 가진 기준과 원칙에 안 맞게 일을 해오면 과연 저렇게 쿨하게 괜찮다고 다음에 잘해오면 된다.라고 상대방 입장에서 말을 하고 배려를 해준 경험이 많이 있을까? 이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상대방도 나처럼, 오늘처럼 아주 바쁜 아침이었을 것이다.

정신없이 애들 챙기고, 간신히 마감기한에 맞춰서 나름 최선을 다해서 제출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보고서 대신에 자녀 일기장을 제출하지는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서로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보는 게 어떨까?


딸아이 덕분에 직장생활 12년 만에 큰 깨우침을 얻었다.

책에서 얻는 지혜도 좋지만, 삶에서 직접 건져 올린 찐 경험은  언제나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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