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을 잃어도 무너지지 않는 진짜 주인공
Caution : 이 글은 결말을 포함한 스포가 담겨 있습니다.
영화 속에서 등장하는 특정 인물을 파헤쳐보는 캐릭터 집중 탐구입니다.
이번에 소개해드리고 싶은 캐릭터는 디즈니의 장편 애니메이션 <겨울왕국 2> 에 등장하는 안나입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성장 스토리를 완성시킨 이 인물에 대해 소개해 드립니다.
1. 이성과 감성
이 영화의 초반부에서 안나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해 보입니다.
엘사를 비롯해 과거에 어긋났던 관계들을 모두 제자리로 돌려놓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생활을 이루게 된 그녀는
이런 행복한 삶은 변치 않을 것이라며 희망의 노래를 부르죠.
나름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고는 하지만 알다시피 안나는 파워 긍정녀입니다.
어떤 문제가 발생해도 금방 해결할 수 있다고 믿으며 항상 밝은 미소를 띠는 쾌활한 여성입니다.
엘사와 달리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데도 거침이 없죠.
"안나, 치솟는 분노가 느껴져요."
"그래, 나 화났어!"
다만 그녀가 걱정하는 것은 항상 언니인 엘사입니다.
어딘가 모르게 항상 비밀이 많은 엘사는 안나와는 달리 감정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안나에게는 하나 남은 소중한 혈육이다 보니 엘사의 표정은 금방 읽지만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모험을 떠나고 여러 가지 일들을 겪는 과정에서도, 엘사와 안나는 사건을 마주하는 데 있어서 차이를 보입니다.
숲이 불길에 휩싸였을 때 엘사는 정령의 존재를 확인했기 때문에 불길 속에 있었지만,
안나는 그저 자신이 사랑하는 언니가 다치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불길에 뛰어듭니다.
"무슨 짓이야! 나 따라 불에 뛰어들다 죽고 싶어?"
"내가 걱정되면 언니도 불에 뛰어들지 마!"
부모님이 돌아가신 충격적인 비밀을 확인한 뒤에도, 엘사는 자책을 하고 안나는 위로를 합니다.
안나가 엘사에게 모든 책임을 지려고 하지 말라고 호소하는 것은,
언니를 걱정함과 동시에 아렌델에서의 엘사가 얼마나 중요한 인물인지를 각인시켜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어찌 보면 안나는 끝까지 대의를 바라보며 이성에 따라 판단하는 현실적인 인물로 보이기도 합니다.
2. 디즈니판 다크나이트
엘사와 멀어진 후, 올라프와 함께 바위 거인들을 피해 도망친 동굴 안은 안나에게 절망의 공간이 됩니다.
깊고 어두운 동굴 속에서 안나는 엘사를 잃었다는 소식을 접함과 동시에 올라프 마저 잃게 됩니다.
그녀가 사랑하던 크리스토프는 어디론가 떠나 행방을 알 수 없고, 친언니와 친구까지 한꺼번에 잃게 된 것이죠.
사랑은 변치 않는다고 믿었던 그녀의 믿음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안나, 변치 않는 게 있다고 말했었죠?
하지만 그 뒤로 모든 게 다 변했어요..."
사실 이러한 전개방식은 매우 놀라웠습니다.
디즈니 작품에서 이 정도로 딥 다크한 분위기가 연출된 장면을 처음 접했을뿐더러,
디즈니 역사상 가장 어둡고 절망적인 상황을 가장 긍정적이고 밝은 캐릭터에게 부여하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습니다.
올라프가 녹기 시작한 시점은 해가 진 한밤 중이었고,
안나가 동굴에서 탈출한 시점은 동튼 새벽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녀는 자신의 모든 것을 잃은 슬픔과 절망감에 밤새 울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대단한 인물은 끝내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며 일어납니다.
할 일이 모두 끝난 후에 자신이 어떤 상황에 놓일지 알면서도 결코 당장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옳다고 믿는 일이 남아있었기 때문입니다.
And with the dawn What comes then?
새벽이 오면 그 뒤엔 뭐가 올까?
When it's clear that everything will never be the same again?
모든 것이 다시는 예전 같지 않을 것이라는 게 분명해진다면?
Then I'll make the choice To hear that voice
그럼 난 선택하겠어 그 목소리를 듣는 일
And do the next right thing.
그리고 당장 해야 할 일을 할래.
안나가 동굴에서 처절하게 부른 노래는 The Next Right Thing 으로
Into the Unknown, Show Yourself 와 함께 공동 타이틀 곡입니다.
전체 가사를 들어보면 가히 충격적입니다.
그동안 겪어보지 못했던 절망을 마주하게 되면서
그녀가 느낄 수 없을 것만 같았던 깊은 좌절과 낙담이 유감없이 쏟아집니다.
삶이 끝났다며 절망하는 안나가 칠흑 같은 어둠을 마주하면서도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며 다시 일어서는데,
이는 우리가 흔히 접하는 주인공이 시련을 극복하는 모습이 아닙니다.
모든 일이 끝나면 자신의 처지가 최악에 놓인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저 지금의 감정을 억누르는 것뿐입니다.
왜 이 음악이 이 작품의 타이틀 곡이 될 수 있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고 생각됩니다.
디즈니 작품의 인물들 중에서 가장 능력이 없어 보였던 안나의 정신력과 책임감은
마법을 가진 엘사보다도, 세상을 구하는 다른 어떤 슈퍼 히어로들보다도
그 무엇과도 견줄 바가 아닌 것처럼 보였습니다.
3. 리더의 품격
이 작품의 후반부는 그저 안나를 위한 시간이었습니다.
홀로 바위 거인을 깨운 뒤 댐까지 내달리며 유인을 하고,
댐에서 목숨을 걸고 자신의 몸을 내던지며 해야 할 일을 해내면서 영웅적인 서사를 완성시킵니다.
이런 대단한 책임감으로 미뤄볼 때, 왜 그녀가 아렌델의 지도자가 돼야 했는지 암시해 주기도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작품 내에서 여러 장면들을 통해 안나가 아렌델의 지도자가 되는 것의 적합성을 부여하는데요.
아버지의 근위병인 매티어스 중위를 가장 먼저 알아보기도 하고,
난파된 부모님의 배 안에서 아렌델의 모든 배에는 방수가 된 사물함이 있다고 말하며 단서를 찾아내기도 하죠.
이처럼 아렌델 왕국의 시스템을 파악하고 있는 디테일한 모습을 보여주며 그녀의 세심한 모습들을 그려냅니다.
아토할란에서 엘사는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의 존재 근거가 무엇인지 알아내었고,
아렌델과 노덜드라의 문제 해결에 결정적인 역할은 안나가 해내면서
그들 스스로가 어떤 역할에 집중하고 있었는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이처럼 엘사와 안나가 서로의 위치를 찾아가는 이야기가 굉장히 인상적이었죠.
4. 외전
크리스 벅 감독은 이 작품으로 인해 겨울왕국 시리즈가 마침내 이야기의 완성을 이루었다고 설명했습니다.
두 작품이 연결되어 하나의 흐름으로 볼 때, 이 시리즈의 진짜 주인공은 안나라고 보여집니다.
결과적으로 전편과 속편 모두 문제를 해결했던 결정적인 인물은 그녀였기 때문입니다.
전편에서는 자신을 기피했던 엘사에게 무한한 사랑을 쏟아내며 엘사의 힘을 제어할 수 있게 해 주었고,
속편에서는 옳다고 믿는 일을 해내면서 감정을 내세우지 않는 이성적인 힘을 보여주었습니다.
<겨울왕국 2> 는 2013년에 개봉한 <겨울왕국 1> 이후로 6년 만에 개봉한 작품입니다.
부모님 손을 잡고 1편을 봤던 어린 관객들이, 6년의 세월 동안 함께 성장하여 청소년 혹은 성인이 되었기 때문에
디즈니에서 그 타겟을 대상으로 가장 도전적인 실험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그 실험은 안나를 가장 완벽하게 성장시킨 서사의 완성이라고 보여집니다.
언제나 밝고 사랑 넘치는 안나의 이야기를, <겨울왕국 2> 에서 확인해 보시길 바랍니다.
사진 출처 : https://www.disneystudios.com/#/newsdetail/new-trailer,-poster-and-images-for-frozen-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