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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프 위버 Feb 18. 2024

드디어 국화차와 책이 놓이게 된 협탁

어젯밤 침대 옆 협탁이 드디어 제 역할을 찾았다. 그 위에 국화차와 책을 놓았던 것이다.


그동안에 협탁 위에는 거의 항상 이것저것 올라가 있었다. 말끔하게 치울 때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저녁에 차를 올려놓는 호사를 누린 적은 없다. 내가 기억하는 한. 그런데 협탁이 제 역할을 찾은 것은 요즘의 정신적인 여유와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조급증에 자주 시달리는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바로 요즘 정리 정돈에 몰입한 결과이다. 브런치 작가인 은수님의 글을 비롯해서 많은 정리 관련 글에서 말하고 있는 것이 맞다. 정리정돈은 공간의 여유를 가져오고 정신적인 여유도 가져온다.


내가 갑자기 정리정돈에 빠진 것은 다름 아닌 다가올 이사 때문이다. 그런데 이사한다고 지금까지 내가 이렇게 정리정돈을 즐기면서 한 적은 없다. 집안정리를 즐기면서까지 할 수 있게 된 것은 이번 겨울방학은 논문을 쓰지 않아도 되기 때문일 것이다.


고향을 떠나 서울로 대학을 온 이후 이사를 참 많이 다녔다. 남들은 세집에서 7년 이상 살기도 하던데 나는 2년에 한 번 또는 4년에 한 번 꼴로 이사를 다녔다. 그때마다 늘 허겁지겁 스트레스받으며 최소한의 정리만 해치웠고, 이삿짐센터 분들이 당황하지 않을 상태라면 불필요한 오래된 물건까지 모두 다음 집으로 가지고 갔다. 그런데 논문이라는 큰 스트레스 요인이 사라지니 이사 전에 오래 묵은 짐들을 정리할 동기가 크게 발동한 것이다.


하지만 집안 구석구석 헤집고 다닐 의욕이 생긴 데는 하나의 요인이 있다. 4년 전에 비하면 내가 체력이 좋아진 것이다.


2020년 현재의 집으로 이사 온 후 코로나가 터졌다. 재택근무를 하니 시간적인 여유가 생겼다. 그 대신 “고령자”인데 활동이 줄어드니 노화의 징후가 나타나고, 위기의식을 느낀 나는 그다음 해부터 등산을 시작했다. 이제는 등산이 주는 심신의 혜택을 즐기며 등산에 푹 빠져 있다.  초보 수준이라서 아직 높은 산은 못 가지만 서울에 있는 산들을 다니고 있다. 케이테이프로 무릎을 고이고이 감싸고 하산할 때도 천천히 내려온다. 오래오래 산에 다니고 싶어서이다.


여전히 일을 한꺼번에 많이 못하고 일도 느리게 하지만 이제는 몸을 움직여 일하는 것을 기껍게 생각한다. 적어도 생각은 바뀌었다. 드라이 맡기던 옷도 라벨을 확인한 후 울샴푸로 손빨래를 할 정도가 됐다. 꾸준한 등산이 체력을 길러준 덕택이다.


그러니까 이사라는 계기와 등산이라는 신체활동과 논문이 빠진 방학이라는 이러한 요소들이 운좋게 합쳐져서, 나는 어젯밤 국화차를 마시며 독서를 하다가 협탁에 책을 내려놓고 잠자리에 드는 우아한 삶을 경험하게 된 것이다.


산에 가보니 산이 좋아 계속 가게 되듯이, 이사를 계기로 열심히 정리정돈해보고 정리정돈의 즐거움을 알았으니 이사를 간 후에 정리정돈을 잘하며 살 것 같은 야심찬 예감이 든다. 정말 그렇게된다면 협탁은 본래의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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