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닥터로 Jul 19. 2024

보잉과 더글라스의 전략적 갈림길

기업 혁신

Old Concept

창고 청소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책을 다시 보는 느낌이라고 할까? 아마도 누군가 작성했던 PPT 자료가 어찌하다가 내 구글드라이브에 들어가 있었다. 한때 유행했던 컨셉이고 딩시 매우 좋아해서 여기 저기서 많이 떠들었던 주제이다.


BHAG

경영 환경에서 기업의 지속적 성장과 혁신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 요소가 되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Jim Collins와 Jerry Porras가 제시한 'Big Hairy Audacious Goals' (BHAG) 개념은 주목할 만하다. BHAG는 단순한 목표 설정을 넘어 조직의 근본적 변화와 혁신을 추구하는 전략적 방법론이다.


소니의 창업자 이부카 마사루의 "우리는 두려움이 없었기 때문에 대담한 어떤 것을 할 수 있었다"라는 언급은 BHAG의 핵심을 잘 보여준다. 이는 단순히 야망적인 목표 설정을 넘어, 조직 문화와 사고방식의 근본적 변화를 의미한다. BHAG의 효과적 실행을 위해서는 'Core를 보존하고 지속하라'와 '진보(Progress)를 자극하고 지속하라'는 두 가지 원칙의 균형이 필수적이다. 이는 기업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끊임없는 혁신을 추구하는 역설적 접근을 요구한다.


본 에세이에서는 BHAG의 이론적 기반과 실제 적용 사례를 분석하여, 이 개념이 어떻게 기업의 혁신과 장기적 성장에 기여하는지 탐구한다. 또한, BHAG 실행 과정에서 나타나는 조직적 도전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전략적 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1952년 상업용 제트기 시장: 보잉과 더글라스의 전략적 갈림길"


Canva Image

1952년, 항공 산업은 중대한 기술적 전환점에 직면해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민간 항공 시장이 서서히 성장하는 가운데, 제트 엔진 기술의 발전은 업계에 새로운 가능성과 도전을 동시에 제시하고 있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보잉과 더글라스, 두 거대 항공기 제조사의 전략적 선택은 향후 항공 산업의 방향을 결정짓는 중요한 사례가 되었다.


보잉은 당시 군용기 생산에 특화된 기업이었다. B-17, B-29, B-52 등 주요 폭격기를 생산하며, 전체 사업의 80%가 미 공군에 의존하고 있었다. 그러나 보잉의 엔지니어들은 상업용 대형 제트기 개발이라는 대담한 제안을 내놓았다. 이는 기존 시장보다는 새로운 시장에 접근하려하는 전략적 선택은 기업에게 큰 도전이었다. 보잉은 상업 항공 시장에 경험이 부족했고, 또한 과거에 상업 시장 진입 시도에서 실패한 경험도 있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미국과 유럽의 항공사 (고객)들은 보잉을 여전히 폭격기 제조사로만 인식하고 있었고, 그들의 상업용 제트기 아이디어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B-17 Flying Fortress (출처: Wikipedia)


이러한 상황에서 보잉이 제트기 프로토타입 개발을 위해 제시한 투자 규모는 기업 순자산의 4분의 1에 달하는 1,500만 달러였다. 이는 당시로서는 엄청난 금액이었고, 실패 시 기업 전체의 존립을 위협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보잉은 이러한 상업시장의 무한한 성장성을 보고 경영진은 상업 민간항공 제트기 시장에 도전을 했다. 그러한 결정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일부 보잉의 경영진은 이 제트기가 군용 공중 급유기로도 활용될 수 있다는 가능성에 주목해서 실패해도 다른 곳에 쓰일 것이라는데 동의 했다.


반면, 보잉의 경쟁사인 더글라스는 매우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더글라스는 프로펠러 방식의 항공기가 앞으로도 상업 시장을 장악할 것이라 믿었다. 그들은 제트 항공기 시장의 잠재력을 회의적으로 바라보며, 기존의 기술과 시장에 안주하는 전략을 선택했다.


이 시기 항공 산업 전반의 분위기는 조심스러웠다. 어떤 항공기 회사도 상업용 제트기 시장의 존재를 확신하지 못했고, 대부분의 항공사들 역시 제트기 도입에 소극적이었다. 이러한 불확실성 속에서 보잉과 더글라스의 선택은 단순한 제품 개발 결정을 넘어, 기업의 미래를 좌우할 전략적 갈림길이었다. (참고: 제트기 최초도입은 Pan Am 항공사로 지금은 사라졌다)


보잉의 혁신적 접근


보잉은 상업용 항공기 산업의 가능성에 도전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기업의 주요 역할자로서 대담한 목표 수립을 의미했다. 이러한 접근은 보잉의 역사적 패턴과 일치한다. 1930년대에 보잉은 군용기 시장에서 주요 세력이 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P-26 군용기, 그리고 이어서 B-17 Flying Fortress 개발에 과감히 투자했다.


보잉의 이러한 혁신적 접근은 지속되었다. 727 항공기를 출시한 후, 이보다 성능이 더 뛰어난 단거리 제트기인 737을 개발했다. 1965년에는 기업 역사상 가장 대담한 사업 중 하나로 평가되는 747 점보젯 개발을 결정했다. 이는 대부분의 기업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큰 도전이었다.


더글라스의 보수적 전략


반면, 더글라스 항공기 회사는 피스톤 프로펠러 방식을 고수하며 보잉의 움직임을 관망하는 전략을 택했다. 이로 인해 더글라스는 시장 변화에 뒤처지게 된다. 보잉의 727이 출시된 지 2년이 지나서야 DC-9을 선보였고, 이는 보잉이 상업 시장에 진출한 후 상당히 늦은 대응이었다.


더글라스는 이론적으로는 보잉만큼 빠르게 Eastern Airlines의 도전에 대응할 수 있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했다. 그들은 DC-9, DC-10으로 제트기 시장에 서서히 진입했지만, 이미 앞서 나간 보잉을 따라잡지 못했다. 특히 DC-10은 보잉의 747과 비교해 동등한 시장 지위를 확보하지 못했다.


보잉의 혁신적이고 대담한 전략은 회사를 상업용 항공기 시장의 선두 주자로 만들었다. 반면, 더글라스의 보수적 접근은 회사가 시장 변화에 뒤처지게 만들었고, 결과적으로 보잉을 따라잡지 못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 사례는 급변하는 기술 환경에서 기업의 전략적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혁신에 대한 과감한 투자와 미래를 예측한 대담한 결정이 기업의 장기적 성공을 좌우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전략적 유연성의 중요성: 더글라스 항공의 쇠퇴와 합병


1960년대 말, 항공 산업은 급격한 기술 혁신과 시장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다. 이 격변의 시기에 더글라스 항공은 자사의 전통적 강점에 안주하는 전략적 선택을 했고, 이는 결과적으로 기업의 운명을 결정짓는 요인이 되었다.


더글라스의 보수적 접근은 초기에는 안정성을 제공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보잉이 707, 727, 737 등의 혁신적인 제트 여객기를 연이어 출시하며 시장을 장악해 나가는 동안, 더글라스는 점차 뒤처지기 시작했다. DC-9과 DC-10의 출시는 보잉에 비해 늦었고, 시장에서의 반응도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이러한 상황은 더글라스의 재무 상태에 심각한 영향을 미쳤다. 1967년, 더글라스는 생존을 위해 맥도널 항공과의 합병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맥도널 더글라스로 새롭게 출발한 회사는 상업 항공기와 군용기 부문을 모두 갖춘 종합 항공기 제조사로 거듭나고자 했다.


그러나 합병 이후에도 회사의 상황은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 MD-11 등 새로운 모델을 출시했지만, 이미 시장을 선점한 보잉의 제품들과 경쟁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1997년, 맥도널 더글라스는 오랜 경쟁자였던 보잉에 흡수 합병되는 운명을 맞이하게 된다.


더글라스의 사례는 기업 전략에 있어 몇 가지 중요한 교훈을 제공한다:


1. 혁신의 중요성: 기술 집약적 산업에서 지속적인 혁신은 생존을 위한 필수 요소다. 더글라스가 제트기 시대로의 전환을 지체한 것이 결정적인 약점이 되었다.


2. 시장 변화에 대한 민첩한 대응: 더글라스는 Eastern Airlines의 도전과 같은 시장 신호에 신속하게 대응하지 못했다. 이는 시장 점유율 하락으로 이어졌다.


3. 핵심 역량의 재정의: 더글라스는 프로펠러 기술에서의 강점을 제트 시대에 맞게 재빨리 전환하지 못했다. 기업의 핵심 역량은 시장 환경 변화에 따라 유연하게 재정의되어야 한다.


4. 전략적 파트너십의 중요성: 맥도널과의 합병은 생존을 위한 선택이었지만, 이미 시장에서 뒤처진 후의 대응이었다. 적시의 전략적 제휴나 파트너십이 필요했다.


5. 브랜드 가치의 지속: 보잉과의 합병 후에도 더글라스의 기술과 브랜드 가치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이는 장기간 축적된 기업의 무형 자산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결론적으로, 더글라스의 역사는 급변하는 산업 환경에서 전략적 유연성과 지속적 혁신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한때 업계를 선도하던 기업이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경쟁사에 흡수되는 과정은, 현대 기업들에게 전략적 민첩성과 미래 지향적 비전의 필요성을 일깨우는 중요한 사례로 남아있다.


"보잉의 BHAG: 위험을 넘어선 혁신의 여정"


보잉 사례는 기업이 어떻게 대담한 비전(Big Hairy Audacious Goal, BHAG)을 통해 혁신을 이루고 산업을 선도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탁월한 예시다. 이는 단순한 이익 극대화를 넘어서는 기업의 비전이 어떻게 장기적인 성공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입증한다.


보잉은 위험한 상황에 직면했음에도 불구하고 과감한 행동을 취했다. 이는 안셀과 그레고슨(2011)이 주장한 '전략적 담대함(Strategic Audacity)'의 개념을 실제로 구현한 사례다. 보잉의 경험은 위험과 고통이 종종 동반된다는 것을 보여주지만, 동시에 이러한 도전이 혁신과 진보의 원동력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안전지대'에 머무르는 것은 진보를 위한 자극을 거의 제공하지 않는다. 이는 레빈(1947)의 '해빙-이동-재동결' 모델과 연관지어 볼 수 있다. 보잉의 사례는 기업이 어떻게 기존의 안정적인 상태를 '해빙'하고, 새로운 도전을 향해 '이동'하며, 새로운 혁신적 상태로 '재동결'되는지를 보여준다.


보잉의 747 항공기 개발은 BHAG의 전형적인 예시다. 회사의 모든 자원을 투입할 정도의 몰입과 전념은 BHAG의 핵심 요소인 '대담함'과 '도전성'을 잘 보여준다. 이는 하멜과 프라할라드(1994)가 제시한 '핵심 역량(Core Competence)' 개념과도 연결된다. 보잉은 747 개발을 통해 자사의 핵심 역량을 극대화하고 새로운 역량을 개발했다.


747 개발 결정은 1960년대 말의 일반적인 기대와는 매우 다른 결과를 낳았다. 이는 슘페터의 '창조적 파괴' 개념을 실제로 구현한 사례로 볼 수 있다. 보잉은 기존 시장의 기대를 뛰어넘는 혁신적 제품을 통해 항공 산업의 패러다임을 변화시켰다.


이러한 접근은 기업이 단순히 수익 극대화만을 목표로 하지 않을 때 가능한 '고도의 비전적 행동(Highly Visionary Behavior)'의 결과다. 콜린스와 포라스(1994)가 주장한 '시계 만들기(Clock Building)' 접근법과 일맥상통한다. 보잉은 단기적 이익보다는 장기적 비전과 가치 창출에 초점을 맞췄고, 이는 결과적으로 지속가능한 경쟁 우위로 이어졌다.


결론적으로, 보잉의 사례는 BHAG가 어떻게 기업의 혁신과 성장을 이끌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는 위험을 감수하고 안전지대를 벗어나는 것의 중요성, 장기적 비전의 가치, 그리고 혁신을 통한 산업 리더십 확보의 가능성을 입증한다. 보잉의 경험은 현대 기업들에게 대담한 목표 설정과 그에 대한 헌신이 어떻게 산업의 판도를 바꾸고 지속가능한 성공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에 대한 중요한 교훈을 제공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