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편소설
나는 태풍의 눈 속에 있다. 회전 도로에 갇힌, 기껏해야 두 해를 보낸 삼단 접이식 우산의 삶이란, 제품 소개만큼이나 '콤팩트'한 것이 아닐 수 없다.
몸을 부드럽게 감싸고 조였던 커버를 빠져나와 처음으로 맞았던 비의 감상은, 차갑고 아팠다. 사람으로 치면 이마나 팔뚝을 무례하게 툭툭 건드는 손가락― 그런 것 수백 개가 온몸을 짓누르는 불쾌감이랄지.
'(나를) 쓰는 이'가 차양 아래로 들어가 내 목을 쥐고 있는 힘껏 빗물을 털어냈다. 급하게, 대충 접힌 탓에 방수천과 우산살이 뒤엉켜 갑갑했고 중봉에 물이 스미며 녹이 슬까 찝찝했다.
빗물이 스미지 않는 천을 머리에 둘렀다고 해서 빗속에서 살다 죽어도 된다는 것은 불공정하지 않은지. 남보다 조금 낫다는 이유로 더 괴롭고 견뎌야 한다면 누군들 들고일어났을 텐데. 그런 이유로 나도 두손 두발, 아니 여덟 개 살을 모두 들고 있는 것은 아니다. 투지를 불태우기엔 나의 그것들은 온통 부러져 헤까닥 뒤집혔으니까.
쓰는 이는 우산을 햇빛에 보송하게 말리거나 방향에 맞춰 방수천을 예쁘게 접는 것 따위엔 관심이 없었다. 첫해의 장마가 끝날 즈음 나의 중봉이 펴지지 않자, 쓰는 이는 나의 모가지를 죽어라 당겼고―정말이지 목과 머리가 분리될 뻔했다―이내 컥 소리를 내며 펴진 나의 목엔 주름처럼 붉은 녹이 슬어 있었다.
쓰는 이는 여분의 우산을 챙겨 나갔고, 장우산들과 함께 우산 통에 처박힌 나는 첫 사용일 이후 종적을 감춘 방수 커버의 보드라움이 그리워 울고 말았다.
아, 너무 빨리 낡아버린 나의 삶이여!
그렇게 드물게, 나는 여분의 우산이 없는 날에만 쓰였다. 이번 태풍이 그런 경우로, 쓰는 이는 오랜만에 꺼내든 나의 목을 닭 잡듯 우악스럽게 당겼다.
"어우, 쇠 냄새."
한번 녹이 슨 우산은 자주 쓰이든 매사 박혀있든 빠르게 삭기 마련이다. 너무 늦게 알게 된 우산의 이치―.
손바닥을 킁킁대던 그는 살(煞)처럼 날아드는 강풍에 어쩔 줄 몰라 했다. 내 여덟 개의 살들도 고소해 했다. 태풍 속에서 허우적대던 쓰는 이의 눈이 인근 편의점을 향했다. 정확히는, 가게 안에 보란 듯 진열된 싸구려 비닐우산들을 향했다. 그의 의도를 알아채기도 전에 그는 내 목을 놓친 척 놓았고, 나는 바람에 휩쓸려 허공에 팽개쳐졌다. 인도를 구를 때, 살 끝에 물방울 모양으로 맺힌 팁들이 긁혔고, 화단 나뭇가지에 걸리고 도로로 가서는 차 앞 유리에 부딪히고, 차 바퀴에 밟혀 으스러졌다.
하늘과 땅 사이, 무수한 고난을 겪은 나는 비로소 회전 도로 한 가운데, 외딴섬에 내려앉게 된 것이다. 궂은 날씨에도 차량이 빽빽한 이곳은 그야말로 태풍의 눈이었다.
우산이라는 궂은 존재로 세상에 나와 삶에 감사한 적이 손에 꼽을지언정 삶이 끝나길 바란 적도 없기에, 나는 바퀴에 깔려 으스러진 살을 흔들며 흐느꼈다. 울컥울컥, 이렇게 쉽게 녹슬고 부러지는 삶이라니….
―그러다 당신을 보았다. 버스 창가에 앉아 턱을 괴고 멍을 때리던 당신. 호기심과 무료함을 담아 나를 응시하는 당신의 눈을.
나는 당신에게 애걸한다. 우산이므로 말할 수도, 통용되는 문자로 소통할 수도 없어 내 뜻을 전할 명확한 방도가 없지만, 지나고서 생각해 보면 구조요청이란 누구에게나 그런 것이지. 애처로운 마음이란 담백한 언어로 정돈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것은 우중에 우산이
빗방울을 온몸으로 퉁기며 보내는 구조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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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come cle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