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월 10일, 그러니까 새해 복 많이 받으라며 인사를 주고 받은 지 며칠도 지나지 않은 날 난생처음으로 응급실에 갔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작은 집에서 혼자 사시는 할머니의 뼈가 어느 날 이유도 없이 골절이 되었다.
왜, 노인들은 기침만 해도 뼈가 골절되는 경우가 있다더니 그 이유였나 보다.
그날은 다행스럽게도 마침 노인 요양 복지사가 방문하는 날이었고, 복지사가 문 턱에 걸려 넘어진 뒤로 혼자 일어날 수 없어 혼자 끙끙대고 있던 할머니를 발견하게 된 거다. 아무튼 골절된 뼈가 붙을 때까지 보호자가 있어야 하니 며칠간 근처 딸네 집에서 머물게 되었다.
나는 어김없이 할머니를 보기 위해 기차를 타고 청주에서 대전으로 향했다. 지금은 흩어져 살지만 내가 기어 다니던 때부터 청주에서 조부모와 우리 가족, 그리고 사촌까지 함께 대가족을 꾸려 살았으니 늘 시골집은 북적북적했다.
고모를 보러 갈 때면 그 집 소파에서 빈둥거리는 걸 좋아했다. 손님이라는 단어도 서운할 막역한 사이.
오늘은 특별히 나까지 포함하여 무려 고모, 사촌 언니 이렇게 셋이 나름 할머니의 보호자가 되어 혈압약을 타러 내과에 갔다. 병원 복도 끝에서부터 저벅저벅 걸어오는 고모의 어두운 낯빛, 갑자기 할머니를 큰 병원으로 모시고 가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는 거다. 골절이 그 사이에 더 심해졌나 의구심이 들어 고개를 갸웃거렸더니 빈혈 수치가 너무 낮은 게 원인이란다. 생각하지도 못한 의사 소견에 당황스러웠다.
오늘 아침까지 소파에 앉아서 밥도 잘 드시고, 베란다에서 꺼내 온 귤도 맛있게 드신 걸 다 확인했는데.
나한테만 비밀 얘기도 속닥속닥 하시는 걸 보고 마음을 좀 놨더니 이게 무슨 일인가.
여담이지만 우리 할머니는 나한테만 가끔 비밀 얘기를 해 주신다. 그런데 문제는 항상 건너편에 있는 사촌 언니 방까지 다 들리게 얘기하신다는 거다. 아무도 모르게 해야 한다는 것치고는 매번 당신의 목소리는 너무 컸다.
별다른 얘기는 아니고 당신 돈이 내복 주머니에 있으니 필요할 때 네가 좀 가져달라는 얘기를 해 주신다.
비밀 이야기가 끝나면 늘 그랬듯 서러움 시리즈가 시작된다. 글을 몰라 한평생 고생했던 서러움, 딸이 자기에게 소리를 지르며 얘기한다는 속상함. 할머니의 이야기 패턴은 이미 외웠을 정도로 반복적이지만, 그나마 처음 듣는 것처럼 반응해 주는 유일한 청취자는 나 하나다. 그렇게 말짱하던 할머니가 빈혈이라니, 골절 때문에 앉아만 있어서 증상을 몰랐던 게 이제야 발견된 거다.
응급실 보호자 대기실 옆 자리에서는 암 진단을 받은 소식이 들려왔고, 우리 할머니의 증상은 죽을병이 아닐 걸 알면서도 괜스레 마음이 가라앉았다. 응급실 모니터에 뜬 화면에는 할머니의 이름과 어린아이의 이름이 자꾸 눈에 밟혔다. 생生과 사 生를 넘나드는 장소에는 수만 가지의 복잡한 사연이 있다. 암 진단을 받은 엄마 앞에서 우리가 무너지는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는 보호자들끼리의 대화, 엉엉 우는 손녀를 달래는 할아버지. 노모가 환자인 줄 알았지만 대기실 밖에서 아파서 악 소리 지르는 젊은 딸까지.
진료실에 들어간 할머니를 기다리는 셋, 마침내 의사가 우리 셋을 불러 모았다. 오늘 당장 피검사, 위 내시경, 대장내시경을 해야 한다고 했다. 우리는 초조해졌다. 할머니 연세는 호적상 82, 실제 나이는 84.
그 여린 몸에 뭘 넣고 바늘로 찌른다는 게 상상이 안 됐다. 고모 말로는 가끔 하혈을 가끔씩 하셨는데, 단순히 항문이 찢어진 줄 알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고 하니 의사가 갸우뚱했다. 이 정도면 출혈이 꽤 심했을 거라고, 위 내시경 결과 위는 깨끗해서 다행이지만 피가 어디서 나는지 원인을 알아야 한다며 대장 내시경을 진행했다.
피가 소장에서 나면 거의 손 쓸 수 없으니 대장에서 나오길 기도하라고 말했다.
소장에서 나올 시 서울로 가든지 수술을 해야 하는데 이 연세의 어르신을 수술해 줄 의사가 없을 것이란다.
대장에서 출혈이 나기를 바라야 하고, 출혈이 났다 안 났다 하기 때문에 타이밍을 잘 맞춰서 발견하길 기도해야 한다고 했다. 우리가 기독교 신자인 걸 아는 건지 갑자기 많은 기도 거리를 안겨 주고는 진료실로 되돌아갔다. 인간이 해 줄 수 있는 건 진단과 수술이지만, 신체의 변수와 상황까지 고려할 수는 없는 것이다.
유일하게 보호자가 세 명이나 되는 우리는 쪼르륵 할머니의 대장 내시경을 보러 진료실에 들어갔다.
나는 살면서 대장 내시경 검사를 받아본 적도 없는 사람인데, 우리 할머니 대장을.... 아니 남의 대장을 이렇게 자세히 본 적은 처음이다. 아니나 다를까 모니터에 꽉 찬 대장은 피가 울컥울컥 빨갛게 고였고, 계속되는 자극에 할머니는 고통을 호소했다. 어르신들은 수면 마취를 할 수가 없다. 검사 중, 의식이 없어지면 안 되기 때문에 검사 중간에도 간호사가 할머니 이름을 부르며 눈을 떠 보라고 종종 의식을 확인했다.
보호자 대기실에서 초조한 마음으로 기도한 결과, 출혈이 나는 곳을 발견했다며 소리 지르는 방 쪽을 쳐다봤다. 감사하게도 출혈이 나는 곳을 발견했고, 임시방편으로 치료해 뒀지만 앞으로도 출혈이 나지 않기를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며칠 동안 중환자실에서 일반실, 일반실에서 집으로 퇴원하기까지 손에 땀을 쥐는 시간들이었다.
나는 할머니의 대장 내시경 모니터를 보며 남의 속까지 본다는 게 이런 걸까, 긴 인생이었겠지만 감히 당신의 모든 부분을 봤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적 나의 기저귀를 갈아주던 이의 대장을 보는 건 마치 서로의 가장 연약한 부분을 맞교환한 기분이었다. 진료받기 위해 웅크린 자세의 할머니를 보니 더, 더욱 작아 보였다.
이렇게 작아진 당신이 어떻게 나를, 그 뒤로 쪼르륵 세상에 나온 손주 네 명을 안고 업고, 키웠을까.
사이다 공장에서 주야로 일을 하고 돌아온 후로도 투박스럽게 집안일을 하던, 간경화인 우리 아빠를 살려 보겠다고 대가족이 살던 시골집을 팔아 연고도 없는 도시로 이사를 강행했던 사람이 맞나 의구심이 들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할머니의 굽은 등을 보며 생각했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고, 사람은 늙을수록 굽어지고 작아진다. 아, 모든 건 시간이 지나면 부러지는 연습을 하는 걸까. 서러움 속에도 꿋꿋하게 살아보리라고 꼿꼿하게 폈던 허리와 마음은 모두 굽어지게 된다.
젊은 시절, 순박하다 못해 사람들이 무시하던 할아버지 때문에 동네에서 가장 독하고 괄괄할 수밖에 없었던 우리 할머니의 말년이 평안하기를 바란다. 서러움 시리즈를 풀어놓는다면 난생 처음 듣는 것처럼 몇 번이고 또 들어줄 수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