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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lin Mar 23. 2023

모네의 꽃밭에서 길을 잃어보세요

교환학생

태어나서 그렇게 많은 종류의 꽃밭 속에 갇힌 적은 처음이었다. 실제로도 꽃밭은 미로 같은 곳이었다. 

간혹 봄에는 길가에 피어난 꽃을 보고 봄이 왔다는 것을 알아차릴 뿐이었다. 그래서 동기와 지베르니에 가기로 결정했을 때까지만 해도 별 감흥이 없었다.

게다가 파리에서 휴대폰을 잃어버리고 난 직후의 바캉스였으니 어떤 마음으로 바캉스를 떠났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당시, 한국에서 아이폰 13 미니를 새로 사 두 손에 꼭 쥐고 프랑스에 왔던 어리석은 나를 원망했을 때였다. 꽃이 널린 글 속에서 더이상 이 얘기는 하고 싶지 않다. 이미 티켓을 끊어놓았으니 별 수 있을까, 겨우 진정된 마음을 안고 모네의 집으로 가는 미니 기차에 올라탔다. 여유로운 마을 사람들의 미소와 맑은 하늘을 시작으로 여행은 시작되었다.

나는 꽃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꽃을 보고 향유하며 설레는 사람들은 늘 타인이었다, 이를테면 우리 엄마. 그러니까 나보다 조금 더 로맨틱하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만 누릴 수 있는 감정이라고 생각했다. 누가 알았을까, 나는 모네의 정원으로 향했을 뿐인데 어이없게도 사방의 꽃에 잠식되고 있었다. 


지베르니는 스마트폰이 아닌 꽃에 눈을 돌릴 겨를이 없던 현대인을 동화 속으로 데려가 준다. 사방이 꽃 향기와 밝은 조명이 담긴 색채이기에 어떤 고민이 흐릴 수 있을까. 오히려 흐려지는 건 나의 복잡한 마음이었다. 그저 눈을 들어 보고 느끼고 맡는 시간으로도 부족했다.

숨 쉴 틈 없는 여행객 사이 닿지 않는 벽에 유유자적히 걸려있는 그림들을 하나씩 훑으며 계단을 오르고 내린다. 사진을 보니 때는 더워지는 계절이었고, 관광객들의 암모니아 향기에 고통 받고 있었던 기억이 난다.

일 분이라도 빨리 정원의 꽃 속에 코를 처박고 싶은 심정이었다. 

봄의 색깔로 칠해진 집 안과 밖은, 흑과 백으로 칠해진 아파트에 살다 온 나의 집과는 정반대였다. 

이곳에 살면 모두가 예술과 자연을 사랑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중학교 미술 시간 때, 각자가 그린 그림을 익명으로 칠판에 걸어놓으면 선생님께서 점수를 a,b,c,d로 평가했다. 미술에 재능이 없었던 나는 당연히 그 시간이 두려웠다. 점점 내 차례가 다가오고, 선생님께서 하셨던 평가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이건 볼 것도 없다, D. 그 이후로 나는 그림 한 장 그리는 것보다 글을 a4용지로 열 장 쓰는 것이 쉽게 되었다. 

그런 내가 이 집을 보고 처음으로 팔레트를 꺼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름다운 물감을 꺼내어 찍어 바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시력이 힘을 다 할 때도 마지막까지 모네의 시선이 닿았던 그 연못 앞에 서 있었다. 모네는 약 30년의 세월동안 수련 연못을 그렸다. 그는 수련을 이해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말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백내장으로 인해 뿌옇게 변해버린 눈으로 그린 건 다름아닌 수련이었다. 모네의 생명력과도 같은 시력이 사라지는 시점에서 가장 그리고 싶었던 풍경이 바로 이 연못이다. 그는 삼십 년이 걸리는 세월동안 연못을 이해했고, 나는 그런 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푸른 하늘 아래 연못에 비친 구름을 보며 모네를 생각했고, 그가 대작을 이뤘던 곳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겨우 한 번 지베르니를 가 봤을 뿐인데 이제는 길가에 피어난 꽃을 보고 봄을 느끼는 나를 발견한다. 

모네의 죽음 앞에서도 꿋꿋하게 일렁였던 연못의 물결이 그립다. 프랑스에 다시 돌아가게 된다면, 다시 한 번 모네의 꽃밭에서 길을 잃어버릴 자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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