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환학생
앙제역에 도착한 후, 숨차게 끌어왔던 캐리어를 두고 역 앞의 풍경을 보았다. 막막함의 시작이었다.
운전 면허증을 반납해야 할 나이의 마담은 마중을 나오지 못했고, 혼자 택시를 잡아 홈스테이 집으로 가야 했기 때문이다. 걱정 어린 눈앞에 서 있는 외국인 택시 기사들은 전부 똑같이 생겼다. 다른 건 차 크기뿐이었고, 누가 더 혹은 덜 친절한지, 외국인이라고 길을 돌아서 가는 건 아닌지 분간할 수 있는 일말의 능력도 없었던 나였다. 어쨌든 하나는 골라 타야 했기에 불란서 냄새나는 가죽 시트에 몸을 맡겼다. 안 그래도 푸근한 느낌의 소도시인 앙제에서, 낯선 택시의 창 밖은 더 굽이 진 시골길을 오르고 있었다.
택시비 10유로와 꽃, 작은 유리컵에 담긴 꽃 한 송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등이 굽은 마담은 웃으며 나를 환대해 주었다. 비유하자면 어느 책에서 본 전형적인 프랑스 시골집의 형태였다. 아침에 일어나면 라디오로 샹송을 켜고, 작은 찻잔과 모서리 부분을 한 입 베어 먹은 프렌치토스트가 놓여있을 것 같은 분위기의 집 말이다. 사실은 한국에서 미리 구글맵으로 검색했을 땐 두 개의 집을 보았다. 예상은 적중했다. 설마 이 집이겠어? 했던 그 집이었다. (어떤 의미인지는 글을 읽다 보면 알게 될 것이다)
홈스테이 구조는 마담은 1층에, 그 옆으로 작은 계단을 올라가면 2층에 홈스테이 학생들이 살 숙소가 나온다.
낡은 현관문을 열면, 짐을 두고 여행을 떠난 학생의 작은 방 하나가 나온다. 낮인데도 불구하고 빛이 잘 들어오지 않는 복도를 걸으면 오른쪽에 작은 방 두 개, 집을 못 견디고 떠난 중국인 한 명, 후에 내 동기가 들어가 살 방이다. 왼쪽에는 내가 머물 큰 방 하나가 나온다. 재미있는 것은 내 방이 이 집의 스위트룸이라고 할 수 있다.
복도를 지나쳐 왼쪽으로 코너를 돌면 작고 지저분한 부엌, 부엌 세면대가 막혀 설거지했던 작은 화장실이 나오고, 쭉 직진하면 중국인이 살던 오른쪽에 방 하나와 비교적 큰 욕실이 나온다.
마담이 만들어 준 파이이다. 누군가 나를 위해 직접 무엇을 만들어 주었다는 사실에 감동에 한 입 베어문 순간, 미각이 고장 난 줄 알았다. 혀를 꺼내 손빨래하듯 다시 빨고 싶은 심정이었다.
누가 작정하고 독을 타지 않으면 웬만한 음식은 맛있게 먹던 23년 인생에서, 먹고 헛구역질이 날 정도로, 도대체 무슨 재료를 쓴 건지 밤잠을 설치도록 궁금했던 파이였다.
마담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된다. 누가 보면 짝사랑 상대인 줄 알 만큼, 그녀는 그녀에 대해 쓸 말이 많아지게 만드는 사람이다. 좋게 끝난 인연은 아니지만 꽤 좋게 시작된 인연이었다. 그 시기, 고통 중에 있던 나에게 미안한 얘기지만 마담은 나에게 고난과 동시에 남들에게 썰을 풀 수 있는 에피소드를 많이 제공해 주었다.
바야흐로, 이 커피 머신은 내가 홈스테이에 처음 도착했을 때 마담이 나에게 선물로 준 기계이다.
사실 나는 커피를 마시지 않지만 커피 포트가 필요했다. 유럽에 간다고 하면, 아침에 차 한 잔 마시는 여유로운 아침을 누가 원하지 않을 수 있나? 이메일을 한참 주고받은 우리는 서로의 니즈를 파악했다.
2월의 새벽은 해가 뜨기도 전. 찬바람이 두들겨 패는 것을 온몸으로 감당하며 버스에 올라타 등교했고,
학교가 끝나면 친구들과 centre-ville에 갔다. 바에 가서 이야기를 나누고, 프랑스의 옷가게는 어떤 아이템들이 있을지, 혹은 주머니 사정 때문에 식료품이 조금이라도 저렴한 마트를 찾고 싶어서 대형 마트라고 하는 곳이라면 여러군 데 들렀다.
마담은 본인과 시간을 보내지 않는 나에게 서운함을 느꼈고, 서운함은 못된 마음이 되어 나를 미워하기 시작했다. 낡은 집이니 옆 방의 방음은 물론, 복도에서 속댁대며 말하는 소리는 당연히 볼륨 95%로 들렸다.
그녀는 나의 친구에게, 내가 너무 소심하고 말을 못 해서 자기와 시간을 안 보내는 것 같다며 나를 순식간에 어벙이로 만들었다. 복도에서 대놓고 나의 험담이 들리는데, 어찌 그 사람을 당황시키지 않을 수 있겠는가?
문을 박차고 나간 나는 내가 왜 소심하냐며 마담에게 따지듯이 물었고, 마담은 당황했다.
거기서부터 우리의 관계는 틀어지기 시작했다. 마담은 a 학생에게 b 학생의 험담을, b 학생에게 c 학생의 험담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학생들의 마음속에서도 멀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가끔씩 선물로 주는 그 수제 파이로 그녀는 나의 마음속에서 영영 멀어지게 되었다.
집이 낡다 보니, 감성은 있었으나 먼지로 인해 피부에는 치명적이었다. 급기야 피부과까지 방문하게 된 나는 집을 옮기기로 결심했다. 솔직히 얘기하자면, 낡은 화장실 세면대에서 설거지하는 내가 너무 안쓰러웠다.
같은 돈을 주고, 누구는 호화로운 집에서 살고 누구는 빛도 안 드는 집에 산다는 게 홈스테이의 큰 단점이다.
그래도 이 집에서 쌓은 추억들을 생각하면 마담이 덜 미워진다.
친구와 한식이 먹고 싶어 처음으로 만든 닭볶음탕 (싼 닭을 사서 비린내가 나긴 했지만), 마음이 미로의 한가운데 놓여있을 때는 에어팟을 귀에 꽂고 집 밖을 나서며 산책했던 큰 운동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문화적 차이로 인해 많은 오해가 있었지만 길치였던 나에게 큰 도움이 된 착한 중국인,
이 집에서 수많은 인사와 향신료 냄새를 나눴던 중국인과 베트남 학생들, 처음 centre-ville까지 나를 데려다주었던 흑인 친구 덕분에 좋은 기억을 캐리어에 가득 남아 미련없이 떠날 수 있었다.
나의 첫 숙소였던 마담네 홈스테이, 파이 한 조각같은 추억을 안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