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점은 다른데 도착하는 곳은 똑같다.
필요에 따라 물건을 만지작거리며 살아왔고
오늘도 다를 바 없이 필요에 따라서 나를 움직인다.
때론 호르몬과 습관이 이끄는 대로, 때론 이성과 냉정이 이끄는 대로.
그러고 있으면 내가 만지는 도구와 나를 가르는 점들이 옅어지는 게 느껴졌다.
세상이 사람을 낳고 우리는 물건을 낳아서인지
나는 내 주변의 갖가지 도구들과 닮아있었다.
우리는 물건에게 바라는 바가 있어 그것들을 만든다.
그렇다면 세상은 우리에게 바라는 것이 있어 우릴 만드는 것일까?
어떤 누군가가 우릴 방종케 하려 했기에 우리는 지금 여기서 숨을 쉬고 있는 건가.
행복도, 슬픔도, 대체 어디로 흘러가는 것이며
우리가 지표면 위에 뱉어내는 모든 먼지들은 종래엔 어디로 흩어질까?
이 모두는 왜 만들어졌을까?
끝도 없는 행복을 쫒고 관측되길 바라며 결핍을 등한시하기 위함만은 아닐 것임은 확실하니까
사람이 자신을 위한 도구를 만드는 이유가 명확하듯
우리에게도 생겨나게 된 데에 궁극적인 해답이 있었으면 좋겠다.
욕심이겠지만 꼭 그랬으면 좋겠다.
그래도 어딘가에는 슬픔과 행복에 대한 이유가 있었으면 좋겠다.
어떤 누구도 답을 줄 수 없기에
자기 자신만의 뜻을 뚝딱대며 살아나가겠지만
가끔은 화가 날 정도로 갑갑한 느낌이 드는 걸 삭히지 못하겠다.
이럴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사람은 잡생각이 많을수록 헤매게 되고 단순하고 가벼울수록 자리를 잡는다.
마치 도구처럼.
도구도 그러하듯이 사람 또한, 나 또한 복잡함을 들이밀며 살 필요는 없는 것일까.
이렇게 잠깐 지나가는 생각만으로만 저항하며 결국 흘러 흘러 살아가기에 쭉 그래왔던 것처럼 우리의 모습은 보존되는 것일까.
이렇게 글이 맺음말을 잃어버리게 될 때쯤이면
언제나처럼 밤이 찾아오고 이 감정 또한 잊히겠지만 적어도 내일까진 기억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