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나부낀다. 멀리서 불어오는 미련들이 얼굴을 한번 쓸어내린다.
얼굴의 촉촉함이 날 떠나간다. 수분 가득 머금었던 그 시점들도 내 뒤로 지나간다.
지금 내 눈앞의 광엄한 햇빛이 모두를 감싸고 돌지만 정작 나는 너무 춥다.
딸깍이는 깜빡이와 내 눈꺼풀. 구석구석의 요소들이 어린 기억과 오버랩되어 자장가가 되어준다.
지금 이 느낌 그대로 내달리고 있는 푸른 숲에 파묻혀 숨을 멈추고 싶다. 살랑이는 풀이 나를 아무리 간질여대도 모른척하고 내 어깨에 기댄 잠을 핥고 싶어라.
시간이 얼마나 지난 걸까. 언제 올지 모르는 노을을 불안해하며 여전히 새파란 허공을 게슴츠레 주시하다 보니 무언가 내장 밑으로 살짝쿵 가라앉는다. 아직은 내일이 오기까지 멀었구나 라며 다시금 차창을 내리고 창에 얼굴을 걸쳐본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바람과 파도가 절벽을 깎아가듯 몸은 꾸준히 닳아간다. 그렇게 하릴없이 깎이다 보면 마치 나이테처럼 내부의 것들이 여러 색을 드러내더라. 나도 어차피 그리 될 것을 알기에 맞기 싫어진 바람에 맞서본다.
이제는 아파. 눈알과 입안에 가뭄이 터졌어.
질려버린 누군가가 말한다.
창문을 내려. 바람에 섞인 것들이 우리 둘의 콧속을 드나들고 햇볕이 너를 파고들테니.
그 말로 인한 찰나의 침묵이 지나가고 나는 내 공간을 틀어막는다. 미지근한 질식감이 다시금 자연의 향수를 불러일으켜도 아랑곳하지 않은 내색을 애써 얼굴에 내비치며 창문에서 겨우 고개를 돌렸다.
아직 반절도 채 오지 않은 도착점은 머리에서 지우는 편이 낫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