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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사 Apr 21. 2024

유리렌즈


혼탁한 필터를 뚫고 이따금씩 어딘가의 표면에 맺히는 렌즈가 하나 있다.

겨우 한 방울에 불과한 감정의 투시

그럼에도 그 한 방울은 원래부터가 세상의 빛을 보기 어렵게 설계되어 있다.

다만 나한테는 해당되지 않는다.


어렸을 때 난 눈물이 많았었다

그리고 지금도 많다. 쉽게 내보이는 눈물에서 이제는 남들은 보지 못하게 되었다는 점만 다르다.


그것은 유리체를 뚫고 나와 빛을 흡수하였다.

이윽고 뚜렷한 상이 맺혔다.


난 결국 글을 읽고 글을 쓰고

그림을 보고 그림을 그리고 싶을 뿐

그 두 가지만을 위해서라면 어떤 것도 느지막하게 내어줄 수 있다.

그러나 세상에 그 두 개만이 나에게 웃어줄 수 없기에 나는 시편時便을 포용하고 만다.


그래. 잠깐이다. 숨을 삼키며 이것들을 유예하며 살아간다.


결국 또 무언가를 뚫고 나온 볼록렌즈가 여기까지 당도했다.

역시 쉽게 감동하고 깊게 기약해버리고 만다.

이것이 내가 살아가는 이유라고 오만하게 단정 짓는다.

여기는 여러 것들이 못났기에 아름다운 것들이 더욱 부각되고 그 반대의 경우도 부지기수이다. 어찌 이리도 고상한 설계일까 감탄하고 만다.


그렇다면 역시 포기하지 않아야겠다.

단 한 겹뿐일지라도 내 유리체에 렌즈가 묻었으니까.

혼탁하고 촘촘한 필터를 어렵사리 뚫어내어 당도한 유리와 같이 투명하고 맑은 렌즈. 밋밋한 칠색의 가시광선의 한계가 이 렌즈를 뚫다가 여러 갈래로 갈라진다. 난 그것을 빛이라 부르겠다. 그런 보통에서 벗어난 빛을 잠깐이라도 맛보게끔 해주는 눈물이란 것을

그저 가볍게 손으로 훑어 내버릴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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