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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파인 May 15. 2023

여성기억 1930-03   왜 결혼하지 않는가?

시대를 사색하다

   

  2023년 우리나라는 점차 결혼하지 않는 사회가 되고 있다.  지난 20년 동안 저출산 문제가 국가적 화두가 되고 있는데 저출산의 원인은 다양하지만 2030 세대가 점차 결혼하지 않거나 늦게 결혼하는 만혼이 추세가 되고 있는 것도 관계가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2년 혼인·이혼 통계'에 따르면, 2022년 혼인건수는 19만 2000건이다. 1980년 한 해 혼인건수가 40만 3031건이고 1997년에 38만 8960건 그리고 2016년에 28만 1635건이었다가 점점 줄어 20만 건 이하로 하락하고 있는 것이다.  결혼을 하지 않으니 아이가 태어나는 숫자도 줄어드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평균 결혼연령도 점점 늦어져 2022년 남성 33.7세, 여성 31.3세이고, 통계청의 ‘2022년 사회조사 결과’에 따르면 20대 가운데 ‘결혼을 해야 한다’ ‘결혼하는 게 좋다’는 응답 비율은 2012년 57.7%에서 10년 만에 35.1%로 쪼그라들었다고 한다. 여러 가지로 생각해 볼 점이 많은 현재의 상황이다.     

 

  1933년 10월 <삼천리> 잡지에는 당대 대표적인 문인들이 참여한 흥미로운 좌담회를  소개하고 있다. 제목은 ‘만혼타개 좌담회, 아아, 청춘이 아까워라’이다. 이 좌담에는 이광수, 나혜석, 김기진, 김안서, 김동환 작가가 참여하고 있는데 지금까지도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는 근대작가들이다.

  기자는 종로 네거리에 30분만 서서 오고 가는 청년남녀를 보면 얼굴빛이 거칠고 몸가짐이 느릿느릿하며 기분이 우울해 보이는 이가 많은데, 이들 대부분이 결혼 아니한 남녀들이라고 서두를 꺼낸다. 결혼할 연령에 처해 있으면서도 독신으로 지내는 이 불행한 남녀들을 어떻게 구제할 방법이 없을지 고민하다가 좌담회를 열게 되었다는 것이다. 주요 질문은  어째서 결혼을 아니하는가 또는 못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이다.     


  먼저 이광수 작가는 이렇게 대답한다. “ 여자들 생각은 잘 모르겠으나 남자들로 말하면 첫째 저 혼자 살기도 어려운 세상에 아내까지 얻어가지고는 생활을 해나갈 도리가 생기지 않으니 미루고 미루다 혼기를 놓치게 된 것이라고” 답한다.


  나혜석 작가는 조금 다른 지점에 주목한다. “ 그런 점도 있겠지만 여성들은 선배들이 시집가서 사는 것이 대개 행복스럽지 못한 꼴을 많이 구경하니까 그만 진저리가 쳐서 애당초부터 결혼생활에 들어설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이라며 “통계적으로 볼 때 행복한 이 보다 불행하게 된 이가 더 많은 것 아니냐”라고 반문한다. 


  김억 작가는 성격의 조화보다는 외모나 학력 돈의 유무에 치우쳐 있는 결혼 풍조로 결혼이 탈이 나는 것이라고 비판하며, 김기진 작가는 행복하게 사는 부부도 많은데 단지 선배의 결혼이 나쁘게 보여 결혼을 회피한다고 보는 것은 당치 않다고 나혜석 작가의 견해에 반박한다. 그보다는 현재 적령기에 있는 청년남녀들이 결혼하지 않는 이유는 주의의 사정, 특히 경제적 이유라고 지적한다. 생활할 길을 잃어버린 사람이 늘어가고 있고 의식주 보장이 되지 않는데 어떻게 만혼의 폐해를 제거할 수 있겠냐고 반문하며 문제는 이 같은 근본에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 좌담회에서는 몇 살부터 만혼 그러니까 노총각 노처녀로 보아야 할지도 질문하고 있는데 대략 남자는 30세, 여자는 23,4세가 넘으면 만혼으로 보아야 한다고 대답하고 있다. 만혼의 기준이야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지만, 왜 결혼하지 않는가에 대한 1930년대 작가들의 생각은 지금 상황에 비추어 보아도 여전히 유효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불안정한 취업상황에서 치솟는 집값에 영끌하여 집을 장만했던 청년세대들은 이제 대출금리 상승, 전세사기 등으로 고통받고 경제적 자립에 대한 자신감을 점점 상실해가고 있다. 여성들도 변화하지 않는 성별 역할과 가족 및 양육 돌봄 등을 전담해야 하는 생활환경을 선택하기를 주저하고 있다. 또한 주변과 미디어의 각종 상담 프로그램에서 접하는 결혼 생활의 지난함에 접하다 보면 혼자만의 삶을 선택하는 게 불가피해 보이기도 한다. 


  1930년대 식민지 조선의 암울한 상황에 놓인 청춘남녀들의 초상이 왜 현재에도 여전히 반복되고 있는지 우울해진다. 결혼의 선택은 사실 개인적인 문제이고 자신의 삶에 비추어 다양한 생활방식을 선택하는 것은 문제라고 할 수 없다. 그런데 경제적 이유와 낡은 성별 가치관과 불평등, 개선되지 않는 사회적 시스템 때문에 결혼을 못하게 되는 것은 근본적으로 다른 문제이다.  왜 청춘들에게 결혼하지 않는가라고 질문할 것이 아니라 무엇 때문에 결혼을 선택하지 못하게 되는 것인지 문제를 발견, 해결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그런 기반 위에서 결혼과 자신의 삶에 대해 미래 지향적인 선택의 폭을 확대할 수 있도록 하는 것. 미룰 수 없는 시급한 우리 사회의 과제 아닐까!     


주 : “晩婚打開 座談會아아靑春이 아까워라!”  삼천리 제5권 제10, 1933년 10월 0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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