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여성풍경
비행기가 이륙하는 순간은 아직도 긴장이 된다. 여기저기 여행 다니면서 비행기를 제법 타보았지만 하늘을 난다는 흥분감과 비행기가 흔들릴 때의 두려움은 여전하다. 이런 비행기를 조종하는 파일럿은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선망의 직업이었지만 여성 비행사는 아직도 매우 드문 편이다.
조선의 하늘을 처음으로 날았던 사람은 안창남(1901-1930) 비행사이다. 1921년 일본 도쿄 오쿠리 비행학교를 마치고 비행사 자격증을 딴 안창남은 1922년 11월 일본 비행협회가 주최한 도쿄-오사카 간 왕복 우편비행대회에서 일본인 비행사를 물리치고 우승하였다. 조선인 천재 비행사의 탄생으로 주목받으며 민족의 희망으로 떠오른 안창남은 1922년 12월 조선에서 시범 비행을 했는데, 이를 보려고 인산인해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이후 “떴다 보아라 안창남 비행기”란 노래가 유행할 정도로 국민의 영웅이 되었다고 한다. 안창남은 항일 독립단체 활동에 참여하며 활발하게 활동하였으나 안타깝게도 1930년 산시성에서 비행 훈련을 하던 중 추락해 29세의 나이로 요절하였다.
비슷한 시기 여성들도 하늘을 나는 도전을 시작했는데,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여성 비행사는 권기옥과 박경원이다. 처음에는 박경원이 최초의 여성 비행사로 알려져 있었으나, 2000년 즈음에 권기옥의 행적이 자세하게 알려지면서 권기옥이 최초 여성비행사로 공인받게 되었다.
권기옥(1910-1988)은 평양 숭의학교 졸업반이던 1919년, 3·1 운동에 참가하였다가 체포되어 3주일 동안 구류되는 등 민족의식을 갖춘 여성이었다고 한다. 또 대한민국 임시정부 공채 판매 및 군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어 6개월간 복역하기도 했다. 그러다 1923년 임시정부 추천을 받아 윈난 육군항공학교 제1기생으로 입학하였다. 1925년 중국군 혁명 장군 펑위샹(馮玉祥) 휘하 공군에서 한국 최초의 여자비행사로 복무를 시작하여 이후 10여 년간 중국 공군으로 복무하였다. 1937년 중일전쟁이 일어나자 충칭(重慶)에 있는 국민정부 육군참모학교의 교관으로 임명되는 등 비행사로서 독립활동을 지속하였다.
박경원(1901-1933)은 1922년 대구의 자혜의원 조산부 간호학교를 졸업하였으나 안창남의 비행을 보고 꿈을 키워 1924년 동경으로 가 1926년 10월에 일본비행학교 조종과에 입학하였고, 1927년 3등 조종사 면허를 취득하였다. 열심히 노력했는지 1928년 일본 비행경기대회에서 3위에 입상하였고, 그 해 7월에는 여성이 취득할 수 있는 최고 면허인 2등 조종사 면허를 취득하였다고 한다. 비행대회에서 입상하여 받은 상금으로 1931년에는 일본 군용기를 불하받는 등 일본에서도 활동 범위를 확대해 나갔으나, 일본에서의 행적이 친일적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박경원의 행로는 박경원이 자신의 비행기에 붙였던 이름인 2005년 ’ 청연‘이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기도 하였다.
1933년 박경원은 일본의 만주 점령을 ‘기념’ 하기 위해 제국비행협회가 박경원이 조선을 들러 만주에서 비행을 하는 ‘일만(日滿) 친선 황국위문 일만연락비행’이라는 행사를 기획한 때문이었다. 8월 7일 아침, 박경원은 일장기를 흔들고 푸른 제비라는 뜻을 담은 자신의 비행기 ‘청연’에 올라탄 후 시동을 걸었으나 1시간도 못되어 짙은 안개에 막혀 산중턱에 추락해 사망하였다. 논란이 있는 행적이기 하지만 박경원은 치열하게 하늘에 도전했던 것 같다. 가난한 집안의 딸로 태어나 하늘을 날았던 박경원은 “경계도 없고 신분 고하도 없는 창공을 날고 있노라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라고 말하곤 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비행을 꿈꾼 여성들의 행로는 달랐지만 꿈을 향해 도전했던 여성들은 이 둘만이 아니었던 것 같다. 1931년 신문기사에 소개된 여운전수 이정희는 숙명여고보를 중퇴하고 일본에 가서 3등 비행사 면허를 받은 경력을 갖고 있으면서 아세아자동차부의 운전수로 일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일보, 1931.10.19.)
해방 이후에도 하늘을 향한 여성들의 도전은 계속되었다. 공군 최초의 여성 조종사로 잘 알려진 김경오는 1949년 공군에 입대했다. 처음 선발되고 나서는 조종 훈련을 받지 못하고 기상 상황 보고나 정비 업무 등만을 담당했으나 전쟁 막바지인 1952년 단독 비행 조종 임무를 전달받고 임무를 완수했다고 한다. 자료를 조금 더 뒤져보니 하늘을 날았던 여성들의 기록이 눈에 띈다. 여성 최초 헬리콥터 조종사는 1981년 김복선 대위, 그리고 2007년 여성 최초 KF-16 전투기 조종사로 하정미, 국내 최초 민항기 여성 기장으로 신수진 씨는 1996년 대한항공에 여성 조종 훈련생으로 선발되어, 부기장 생활을 하다가 2008년 여성 기장이 되었다.
두려움이 많은 나 같은 사람에게는 경외심의 대상이 되는 멋진 여성들을 살펴보니 왠지 마음이 뿌듯해진다. 파란 하늘을 마음껏 나르는 꿈을 갖고 도전한 여성들의 긴 여정은 아직도 진행되고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권기옥’ ‘박경원’ 자료.
신여성의 행진곡 7: 취업난에 혼전하는 형형색색의 생활상, 조선일보, 1931.10.19.
김경오, <나는 매일 하늘을 품는 다한국 최초 여자 비행사에서 여전히 꿈꾸는 삶으로>, 넥서스 BOOKS,
2022.07.04.
‘대한민국 `여성 1호` 그들은 달랐다’ , 매일경제, 2008.8.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