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u Jan 17. 2023

3. 팽이접기 사건으로 깨달은 것들

조용할 일 없는 우리의 하루  



종이접기를 하던 첫째 아이가 엉엉 운다. 반듯하게 접히지 않는다고, 종이가 자꾸 찢어진다면서. 조금 접고 아니다 싶은지 울고, 다시 접고 울고, 옆에서 지켜보는 나도 '잘하고 싶지만 안되서 속상한 마음'을 이해하기에 안쓰럽기도 하지만, 퇴근 후 더는 짜낼 힘이 없는 워킹맘에겐 달래는데 에너지를 써야함이 지친다.


 "괜찮아, 다시 접어보자, 잘 안되면 조금 쉬었다 해, 누구나 이런 과정을 겪는거야, 네모아저씨도 처음부터 잘 접지는 않았어." 이런 틀에 박힌 말들은 아이의 귓등에도 닿지 않는 것 같아 답답하다. 종이를 바꿔가며 코어를 세번이나 다시 접던 아이는 결국 나머지 부분까지 완성해서 팽이를 돌려본다. 종이접기가 맘대로 안될 땐 세상이 무너진듯 속상하다가도, 완성한 팽이를 보고는 어느새 기분이 좋아지는 너는 감정이 널뛰기하는 6세 어린이를 키우고 있다.


(너무 흥분해서 울 땐 내버려두는 편이다. 팽이접는 모습을 지켜보니, 안되서 울다가 진정된 후 다시 접고, 또 안되서 울고 그래도 다시 접고를 반복했다. 무심한 척 스윽 내버려두고 침대에 가서 책 읽고 있으니 '떼를 쓴다고 될 일이 아니구나, 엄마가 도와주지 않겠구나' 느꼈는지 기어코 혼자 접어낸다. 아이의 행동과 감정표현 하나하나 너무 민감하게 반응해주지 않을 필요도 있다는 것을 느꼈다.)


마침 새벽 시간에 읽고 있는 '아이의 마음에 상처주지 않는 습관' 책의 내용 중 감정에 관한 부분이 나왔고 어젯밤의 이 일이 떠올랐다. 그리고 생각을 정리해본다.













1. 아이는 이제 막 감정을 배워가는 중이다.


지금 아이는 하얀 도화지 같은 마음에 시시때때로 느껴지는 다양한 감정에 이름을 붙이고 배워나가는 중이다.  <아이의 마음에 상처주지 않는 습관 中>



아이는 색종이가 반듯하게 접히지 않아 속상한 감정을 감당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 속상함을 달리 표현할 방법을 몰라서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엉엉 울기'로 표현했다. 이 감정이 '속상함'이라는 것을 모를 수 있고 감정을 모르니, 그것을 표현하는 방법도 모르는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을 배워가는 중인 것이다.


화를 내야지, 내가 화를 내서 엄마를 힘들게 해야지 하는 흑심을 품고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하는게 아니라는 말. 어른들은 아이가 자기의 감정을 모를 수 있다는걸 모르는 것 같다.(어른도 자기 감정을 몰라서 힘든 세상인데 말이다.) 분에 못이겨 화를 내거나 옳지 않은 방법으로 감정을 표혀하면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고 혼을 낸다. 이걸 모를 수 있구나, 라고 이해한다면 아이의 행동을 좀 더 너그럽게 볼 수 있을 것 같다.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이 뭔지는 모르겠는데, 아무튼 눈물이 나고 짜증이 나고 소리를 지르고 싶어져."



아이는 나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었던건지도 모른다. 떼 쓰고 울 때 마냥 "울지마, 예쁘게 표현해, 예쁘게 말해야지(심지어 울면 산타할아버지가 선물 안줘)"라고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너무 겉으로 드러나는 표현 방식에만 집중해 아이의 진짜 마음을 읽어주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아이가 표현 방법이 서툰건 당연한거라 생각하고, 그 속에 숨은 진짜 마음을 알아주자. 그리고 나서, 그것을 올바르게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자.



"그럴 때, 너가 느끼는 감정은 속상함이야, 잘 안되서 속상하고 그 속상함을 표현하려다보니 눈물이 나는거야."


그게 엄마인 내가 해야할 일이다.




2. 감정과 행동 구분하기


책에서는 감정을 그대로 인정한 후, 감정과 행동을 구분하면 그것들을 각각 조절할 수 있다고 말한다.


step1. 아이의 속상한 감정을 공감하고 인정하기


"색종이를 찢어버릴 정도로 많이 속상했구나, 속상할 수 있어, 너가 큰소리로 엉엉 울만큼 화날 수 있어."


step2. 행동 조절하기


"속상하더라도 다음부턴 색종이를 찢어버리지는 말자. 엄마랑 방법을 생각해보자."


속상한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 종이를 찢어버린 자신의 행동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고, 그럼으로써 옳은 행동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다. 감정과 행동을 각각 조절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어제 색종이 사건때엔 step2. 행동 조절하기 단계는 하지 않았다. 위험하거나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속상한 감정도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하면서 감정을 다 쏟아내보는 경험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서이다. 다만, 아이가 어느 정도 자랐는데도 연령에 맞지 않는 지나친 행동으로 감정을 표현한다면, 감정과 행동을 구분시켜줘야겠다.

 


3. 그럼에도 무한 칭찬


한바탕 휘몰아쳤던 종이접기 폭풍이 지나가고 나란히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해주었다.


"은우야, 아까 종이가 맘대로 안되서 속상했지? 엄마도 이해해. 엄마도 어릴 때 그랬거든. 근데 어른이 되니 손도 더 커지고 종이 접는걸 많이 해봤으니까 너가 보기에 엄마가 잘 접는다고 생각할지도 몰라.


하지만, 엄마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접은 은우가 기특해. 노란 색종이를 두 장, 세 장째 접으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팽이를 완성했잖아. 그거 대단한거야. 정말 멋져.


그리고, 속상하고 화나면 눈물이 날 수 있어. 아까 은우는 속상함에 큰소리로 운 거잖아? 그렇게 울고 나면 기분이 좀 나아지니까, 우는게 나쁜 것만은 아니야."


가만히 내 이야기를 듣는 아이의 표정이 한결 편안해 보인다.

이 엄마는 너의 마음이 이해돼. 잘하고 싶은데 안되서 속상한 마음. 좌절은 6세 어린이에게도 아플만큼 쓰라릴거야. 그럼에도 적당한 좌절과 이런저런 에피소드들은 너를 더 성장시킬거라 믿어. 엄마는 칭찬과 격려 주머니를 가득 채워놓고 너가 좌절할 때마다, 그리고 그 좌절 끝에 작은 성공을 맛볼때마다 하나씩 꺼내줄게.



4. 너와 나 사이에 섣부른 약속은 금물


괜히 '팽이 세개 접기'라는 감당 안되는 약속을 했다가 세 개는 커녕 한 개만 겨우 접고 잠들었다. 아이에게는 순간 약속 안지킨 책임감 없는 엄마가 되었고, 나는 나대로 실컷 접어주고 생색도 못냈다. 접어줄 게 많다는 생각에 마음에 여유가 없어 아이의 투정과 화에도 쉽게 지치게 된다.


아이에겐 지킬 수 있는 약속만 하기

못할 것 같으면 안된다고 분명하게 얘기하기

뭐든 내 능력껏 하기


더이상 아이 입에서 "엄마는 약속도 안지켜!" 라는 말이 나오지 않게, 적당한 약속(?)만 하자.





어젯밤 팽이 사건으로 나는 많은 것들을 깨달았다.


작가의 이전글 2. 새벽에 일어나면서 얻게 된 7가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