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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rry night Nov 15. 2023

모차르트를 치는, 이 순간을 사는 어른이 되기로 하다

아이에게는 쉽지만 어른에게는 어렵다는 모차르트. 소나타 13번 내림나장조 1악장을 연습해 본다. 하루치 걱정거리와 스트레스를 머리에서 모두 음소거하고 오직 눈으로 악보를 읽고 양손가락을 움직이고 그에 맞춰 페달을 밟고 귀로 소리의 조합을 느끼는 이 행위에 온전히 집중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명료한 선율과 리듬, 민트도 슈팅스타도 없지만 그 자체로 완벽한 바닐라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입안에서 녹일 때 나오는 도파민 같은 화음, 앙증맞은 트릴과 스타카토가 서로 손잡고 뛰노는 순진무구의 세계가 이내 사라지고 만다. 


원래 이름이 피아노포르테였다는 이 악기는 포르테 보다 피아노 소리를 내기가 무척 힘이 든다. 소리를 작게 내려고 하다 보면 손가락에서 힘을 빼게 되고 그러다 보니 손가락이 건반 위에 살짝 뜬 것 같은 상태로 음을 하나하나 완전히 누르지 않은 채 연주하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몇 년 전 피아노 레슨을 받다가 어떻게 하면 손가락에서 힘을 빼지 않은 채로 소리를 작게 낼 수 있을지 강사 선생님께 물었다. 그랬더니 소리를 얇게 내는 상상을 계속하면서 연주해 보라는 답이 돌아왔다. 야한 생각도 아니고 얇은 생각이라니. 난감했다. 한동안 칼로 오이를 얇게 얇게 채 써는 생각을 하며 연습을 했었다. 오랜만에 다시 손가락에 온 마음을 집중시켜 본다. 체조 선수가 발 하나 폭 밖에 되지 않는 평균대 위에서 온몸을 정교하게 만들어 사뿐하게 뛰고 날아 착지하는 상상을 하며 내 손가락에도 약간의 긴장감을 더해 건반 위를 달려본다. 뭉툭해지지 말고 얇아져라, 얇아져라 주문을 외면서. 


모차르트가 어른에게 어려운 이유는 아마도 잘 쳐보겠다는 욕심 때문이 아닐까 한다. 선율을 좀 더 부드럽게 표현하려고 페달을 과하게 사용하는 순간 바닐라 소프트 아이스크림의 순수함은 사라지고 느끼함이 올라오게 된다고나 할까. 과한 페달링이 아니라 레가토를 통해 음을 끊어지지 않게 이어서 연주하는 건 시간과 품이 드는 반복 연습을 필요로 하는 일이기에 게으름신이 슬며시 찾아와 ‘그깟 페달 밟아버려!’라고 속삭이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음을 잇지 않고 연주하거나 아예 스타카토로 표현하는 논레가토 부분도 레가토 사이에 섞여 나오기 때문에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 


과한 욕심도, 하루의 복잡다단한 사건들도 내려놓고 헬스장에서 근육 운동을 하듯 손가락 운동을 시작해 본다. 음이 끊어지지 않도록 손가락 체조선수들을 민첩하게 번갈아가며 움직여보고, 때로는 개구진 표정을 지어가며 건반 위를 폴짝폴짝 뛰어보기도 본다. 어쩌다가 신기하게도 맑은 소리가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면 그걸로 행복하다. 아직 충분히 연습을 하지 않은 구간에서 손가락이 꼬이면 하루치 피곤함이 손가락과 어깨에 내려앉는다. 그럴 땐? 악보를 덮는다. 샤워를 하고 잠들기 전 선우예권이 연주하는 13번 1악장을 듣는다. 다시 마음이 정화된다. 대리만족도 때론 인생에 필요하다. 


*커버 사진 출처: https://www.rawpixel.com/image/3304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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