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8.1
이 공연이 아니었다면 스무 시간에 가까운 경유 비행으로 지친 몸을 이끌고 프라하에서 체스키 크룸로프로 곧장 내려올 필요가 없었다. 동선으로 보자면 프라하를 먼저 둘러본 다음 체스키 크룸로프로 내려왔다가 잘츠부르크로 가는 것이 아무래도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체코에 온 만큼 체코사람들의 정서를 진하게 느낄 수 있는 음악을 듣고 싶어서 축제 일정에 동선을 맞추었다. 대중교통편으로 닿을 수 없는 곳에 공연장이 있어서 축제 운영진에게 공손한 협박이 담긴 메일을 보내 스텝 차량에 동승해도 좋다는 허락도 받아내었다. 나 같은 사람들이 더 있었던지 결국 진행팀이 버스 한 대를 대절해서 체스키 크룸로프에서 성스러운 암석 교회까지 데려다주었다.
작은 시골 마을 교회에서 열리는 합창공연이었다. 이 날 공연에서는 작곡가 스메타나와 부르크너 탄생 200주년을 기념해서 체코 프라하와 오스트리아 린츠 출신의 합창단이 각각 노래를 들려주었다. 드보르작과 스메타나의 음악을 통해 체코의 민속음악에서 느껴지는 흥겨움과 애잔함은 이미 경험한 바 있지만 야나체크가 라임을 맞추어 합창곡을 만들 정도로 천착했던 체코어의 입말에서 느껴질 리듬감이 무척 궁금해졌다. 그는 한국으로 치자면 경상도에 해당하는 모라비아 지방 출신의 작곡가였는데 모라비아 지방의 사투리와 노래의 억양과 리듬에서 독특한 스타일을 길어 올린 음악가였다. 한국 사람들에게는 아마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1Q84’에 등장하는 신포니에타가 야나체크의 작품 중에서 가장 익숙할 것 같다.
합창단이 그의 곡 중에서 Kačena divoká (The Wild Duck)를 부르기 시작했다. 소프라노, 알토, 테너, 베이스로 이루어진 4부 혼성 합창단의 목소리가 때로 같이, 때로 교차하면서 교회 공간에 울림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K, Č와 같이 바람 소리를 내는 자음, 체코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며 흘러가는 몰다우(다뉴브) 강의 흐름을 닮은 Ž, V 같은 자음들이 이어지다가 매 어구마다 둥글게 품어주는 모음으로 마무리되기를 반복했다. 메이저와 마이너를 왔다 갔다 하며 이어지는 선율은 늦가을의 처연한 바람 한줄기 같기도 하고 프라하에서 체스키 크룸로프로 오는 길에 보았던 시골 풍경을 연상시키기도 했다. 알고 보니, 사냥꾼의 총에 맞아 다친 어미 오리가 남겨진 새끼 오리들의 운명을 애도하는 내용의 민요 가사였다. 야나체크도 니체만큼이나 동물의 고통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섬세한 감수성을 지닌 사람이었나 보다.
담담한 듯 애절한 선율을 듣고 나니 시린 강바람 앞에서 외투를 껴입은 듯 몸이 따뜻해졌다. 교회의 좁고 길쭉한 창문 사이로 보이는 하늘은 금방이라도 소나기를 쏟아낼 듯 짙은 먹색 구름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노래가 거듭될수록 교회 안은 합창단과 관객들의 열기로 가득했다.
박수가 이어지자 오스트리아 합창단이 앙코르곡을 부를 모양새를 취하더니 제단 앞에 마련된 무대를 벗어나 말굽 모양으로 객석을 에워쌌다. 지휘자 역시 단원들을 향해 몸을 돌렸다. 합창단이 노래 한 곡을 부르기 시작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합창단의 화성이 장화음이나 단화음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단원 한 사람 한 사람이 내놓은 음이 켜켜이 쌓였다. 거기서 협화음인지 불협화음인지 묻는 것은 이미 의미가 없었다. 음정들은 서로 어울리기도 하고 간섭하기도 하고 음정 사이의 경계가 점점 모호해진 채 섞이기도 하면서 교회 공간을 울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 관객인 내가 있었다. 선배 쇤베르크가 그랬고 존 케이지가 역시 그러했듯 현대 음악의 실험 정신이 충만한 이 예술가들 역시 단순하지만 자유롭게 즉흥을 펼치고 있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멈춤도 명료하고 자연스럽게 연주의 일부가 되었다. 단원들이 쌓아 올린 소리의 그라데이션이 순간 멈추었다 다시 쌓이기를 반복하는 순간 전율이 일었다. 눈을 감지 않을 수 없었다. 초현실 공간에 들어온 것 같았다. 엄마의 자궁 안에서 유영하는 태아가 소리를 듣는다면 이런 느낌이지 않았을까. 음정과 음정의 경계가 희미해지는 그 순간 따뜻하고 강렬한 에너지가 다가왔다. 마크 로스코의 그림을 볼 때 색과 색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그 지점에서 꿈틀거리는 에너지가 느껴지는 것처럼 말이다.
공연을 마치고 나오면서 지휘자에게 그 마지막 곡에 대해 물었더니 부르크너의 모테트(르네상스 시대 종교음악으로 쓰인 무반주 성악곡)한 곡으로 시작해서 중간부터 즉흥 연주를 한 거라고 말해주었다.
"Thank you for the special moment."라고 인사하며 교회 문을 나서니 소나기가 금방이라도 내릴 듯 축축하고 차가운 밤공기에 신선한 말똥 냄새가 섞여 코끝으로 밀려 들어왔다.
이런 냄새도 음악으로 표현해 줄 작곡가가 있지 않을까. 각종 콩쿠르에서 스타가 된 연주자들이 대중의 관심을 독점하다시피 하는 시대에 음악을 직접 만들거나 즉흥 연주를 펼치는 예술가들도 마땅히 받아야 할 박수갈채가 있음을 소리쳐 알리고 싶은 밤이었다. 몸은 몹시 피곤했지만 마음속에 촛불 하나가 켜졌고 아인슈타인이나 리처드 파인만까지는 아니더라도 물리학자가 되어 이 날 음의 향연을 경험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운 밤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