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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rry night Aug 03. 2024

카프카적 여행, 그 기이한 출발선에서

2024.7.31

지금 나는 헬싱키 공항의 카페에 앉아있다. 프라하로 가는 비행기를 놓쳐 다음 비행기를 기다리는 중이다. 인천에서 탑승한 헬싱키행 비행기가 늦게 도착했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왜 늦었는지에 대한 설명도 당연히 없었다. 그저 비행기를 놓칠 거라는 사실 만이라도 미리 알려주었더라면 화장실 가고 싶은 걸 억지로 참고 뛰지도 않았을 것이며, 뱀처럼 몇 겹으로 똬리를 틀고 있는 보안 검색 줄에서도 초조해하지 않았을 것이며, 나를 노려보며 계좌에 돈이 얼마나 있는지 꼬치꼬치 물어보는 헬싱키 입국 심사요원의 질문에도 좀 더 소상하게 대답을 했을 것이다. 커피를 마시다가 무의식적으로 왼쪽 머리에 손을 갖다 댄다. 아직도 욱신거린다. 여행을 떠나기 직전 길을 걷다가 어느 식당에서 메뉴를 적어 놓은 깃발 설치물이 넘어지면서 깃대에 머리를 맞았다. 아침에 부랴부랴 머리 엑스레이 사진 몇 장을 찍고 비행기에 탔다. 병원에서 만난 사무적인 태도의 의사와 무슨 말을 주고받았는지 하나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래, 세상은 설명되지 않고 예측할 수 없는 일들로 가득하다.   


갑자기, 그저께 집에서 보았던 초파리 한 마리가 생각난다. 유유히 내 눈앞을 휙 하고 스쳐 지나가더니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작년 어느 여름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거실 바닥에 흰 먼지 같은 것들이 많이 떨어져 있었다. 무슨 먼지가, 휴지조각이 이렇게 많이 떨어져 있나... 했는데 간밤에 알에서 깨어난 초파리 유충 수십 마리가 단체로 꼬물거리며 거실을 기어 다니고 있었다. 그 진귀한 풍경이 스멀스멀 떠올랐다. 설마, 이번에 그런 일이 다시 생기진 않겠지.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건 벌레야."

세렝게티 초원에서 사자나 하이에나 같은 맹수들을 쫓아다니며 다큐를 만든 어느 피디가 한 말이다.

맞는 말이다. 나 역시 집에서는 초파리 한 마리의 동태를 예의주시하다가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빈대를 염려하여 퇴치제를 챙기지 않았던가.


인간은 많은 곤충을 벌레라고 부르며 경멸하거나 해충이라 부르며 경계한다. 인간이 벌레를 피하는 것이 생존에 유리했기 때문에 이러한 혐오는 우리의 유전자에 각인되어 깊숙하게 저장되어 있다. 벌레를 좋아하는 것까진 아니더라도 덤덤해지려고 해 봐도 잘 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고 우리는 알고 있다. 각종 방법으로 벌레를 탄압하는 나 자신 또한 경제적 기능을 상실하게 되면  언제든 사회로부터 소외되어 한 마리 '충'의 신세로 전락할 수 있음을. 카프카의 소설 '변신' 속 주인공인 그레고르 잠자처럼. 나는 재빠르게 다른 누군가로 대체될 것이며, 이 세상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조금의 삐걱거림이나 망설임도 없이 돌아갈 것이다.


비행기가 아제르바이잔 상공을 날고 있었을 때 카프카의 단편집을 읽고 있었다. 좁은 좌석에서 거의 열네 시간을 견뎌야 하는 비행이 힘에 부쳤던지 옆에 앉은 부부가 푸틴 욕을 하기 시작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때문에 비행기가 직선으로 러시아 하늘을 가로지르는 항로를 택하지 못하고 빙 돌아서 가느라 비행시간이 늘어난 이 상황이 어이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 손에 쥐어진 단편 속 주인공은 아버지에게서 익사형이라는 선고를 받고 막 계단을 뛰어내려 강가로 달리고 있었다. 물론 그 황당한 판결(?)에 합당한 설명은 나오지 않는다. 책을 덮었다. 내가 보기에 더욱 말이 안 되는 것은 미사일과 각종 살상무기가 누군가의 일상과 생명을 파괴하는 지옥도가 펼쳐지고 있는 저 아래 세상의 소식을 스마트폰으로 빠르게 읽어 내려가면서  그 위를 살짝 우회해서 비행기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이 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이다. 전쟁과 기후위기가 점점 당연하고 익숙한 '새로운 정상'으로 받아들여지는 이천이십사년 초세계화 시대 우리 삶은 어쩌면 카프카적 상황의 연속일런지도 모르겠다. 설명되지 않고 이해되지 않은 채 불쑥 등장하는 카프카 소설 속 사건들처럼. 기이한 여행의 출발선에서 마시다 남은 커피를 다시 집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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